[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열대의 묵시록>

병원도 없고 포장된 도로도 없는 브라질의 어느 외딴곳이든 사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공동체 의식과 삶의 의미를 알리는 복음주의 교회가 늘고 있다. 지난 40년간 브라질의 복음주의 신자 비율은 5%에서 30% 이상으로 증가했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종교적 변화 중 하나다.
하지만 신앙과 신자들의 관대함을 바탕으로 한 복음주의가 몇몇 지도자들에 의해 전례 없는 정치 세력으로 변화하고 있다. 반낙태, 반동성애, 반마약, 반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실라스 말라파이아 목사가 그 중심에 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여러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 좌파의 룰라 다 시우바를 지지했다가 우파로 갔다가 급기야 극우까지 갔다. 마침내 자이르 보우소나루에 이른다. 그는 2016년부터 브라질의 깊은 증오들에 목소리를 내며 명성을 얻었고, 대통령이 되고자 기독교적 민족주의자 정체성을 채택한다. 2018년 대선 중 군중 속에서 칼에 찔린 후 생존했고 그렇게 한 군인(보우소나루)과 종교적 추종자들의 결합이 확고해진다.
보우소나루와 종말론 정치
보우소나루는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다'라는 성경 구절을 가져와 내세우며, 보우소나루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열대의 묵시록>은 복음주의와 극우 정치의 잘못된 만남이 브라질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룰라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천착해 온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해 나갔는지 들여다본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 백신을 사거나 보건 조치를 시행하는 대신 새로운 기도를 하며 새로운 약속으로 신성한 계약을 다시 세우는 해결책이 제안된다. 그렇게 70여 만 명이 돌봄을 받지 못하고 죽어 갔다. 전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사망 수치였다. 사랑과 용서를 설파한 예수님이 공감력 없는 정부에 이용당한 예다. 섬뜩하고 무시무시하다. 한편 <요한 묵시록>은 복음주의적 근본주의 운동에 핵심이 되는 책이다. 전쟁은 평화로, 자유로 이어지고 더 큰 악과 싸우기 위한 필요악이다.
복음주의 권력의 탄생과 미국의 그림자
앞서 언급한 실라스 말라파이아 목사는 브라질에 제국을 설립했다. 사업가이자 인플루언서이자 소유주로 문화 전쟁에 참전하기 시작했고 정치에까지 광범위하게 관여한다. 대통령과의 대화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으로 급기야 대법원에 오직 복음주의자들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인구의 30%에 해당하는 복음주의계에 밑 보이면 끝'이라는 생각을 심었다.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60년대 남아메리카 '해방 신학'에 맞서 미국의 복음주의와 반공 자본주의 결탁 세력이 일거에 상륙한다. 브라질은 극심한 불평등을 동반한 잔혹한 자본주의 실험장이 되었다. 수백 만의 사람들이 복음주의 신앙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는데, 연결고리에 반공주의가 있었다.
<요한 묵시록>의 해석은 평화 기반의 예수 강림이었는데, 1827년 아일랜드의 젊은 목사 존 넬슨 다비가 뒤바꾼다. 하나님이 타락한 세상에 진노할 것이고 상황은 계속 악화될 테니 평화를 기대하고 노력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여 타락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예수가 빠르게 재림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운동이 탄생했다.
선거, 쿠데타, 그리고 이후
2018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는 하나님의 도구를 자처했으나, 2022년 대선에선 하나님의 권능을 거머쥔 것처럼 행동했다. 대선이 마치 성전인 것처럼 포지셔닝한 것이다. 한편 룰라는 교회는 기도하러 가는 곳이지 표를 구걸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1차 투표의 패배 후 복음주의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보우소나루는 자신이 이기지 않으면 이의를 제기할 것을 분명히 한다. 하여 대법관을 압박하면서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 결선 투표 당일, 연방 고속도로 경찰이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쿠데타 시도를 한다. 노동자당원들에게 해코지한다. 그럼에도 투표 결과 룰라가 브라질 제39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한동안 혁명은 왕을 몰아내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세속 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의 혁명은 반대 방향으로 가려 한다. 룰라의 당선 후 보우소나루를 위시한 세력이 혁명을 부르짖는 한편,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반민주적인 시위를 계속하는 한편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대법원에 침입하는 등 쿠데타를 시도한 게 단편적 예다.
브라질의 예는 극단적이지만, 미국이나 한국 같은 대표적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자행되었던 반민주주의적 사건들의 면면을 보면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과연 역사는 발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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