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포제션>

제2차 세계대전 중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격변 속에서 성장하며 예술적 자유를 찾아 폴란드와 프랑스를 오간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타협하지 않는 예술혼을 불태웠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파괴의 순간을 경험해서였을까,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파격적이고 실험적이며 전위적이었다. 괴랄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의 대표작은 1981년작 <포제션>이라 할 만하다. 프랑스의 국민 배우 이자벨 아자니와 뉴질랜드의 국민 배우 샘 닐이 열연했는데, 그들이 말하길 인생에서 가장 힘든 촬영이었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밖에도 이 영화를 둘러싼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1980년대 초의 서베를린을 배경으로, 당대 특수한 정치 쳬제를 들여다보는 한편 보통의 부부가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그렸다. 이자벨 아자니가 분한 안나를 둘러싼 충격적 사항들이 많은데, 이른바 촉수 괴물의 등장은 말을 잊게 한다. 나아가 그것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까지 나아가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혼, 빙의, 그리고 ‘촉수 괴물’
1980년대 초 서베를린, 첩보원 마크는 전쟁에서 막 돌아왔다. 그런데 아내 안나가 심상치 않다. 마크를 몰아붙이는 한편 불안에 떨며 부부 생활의 지난한 현실을 힘들어한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한다. 마크는 쿨하게 받아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안나의 외도 상대 하인리히를 직접 찾아가는 마크, 하지만 오히려 된통 당하고 돌아온다. 급기야 사립탐정을 고용해 안나의 뒤를 캐는 마크, 하지만 사립탐정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좌충우돌 끝에 안나의 또 다른 외도 상대와 맞닥뜨리는 마크, 말도 안 나오는 충격적인 조우는 어디로 어떻게 향할 것인가.
한편 마크는 아들 밥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다가 안나와 똑 닮은 유치원 교사 헬렌과 마주친다. 외적으로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와중에 친절하고 다정하고 상냥한 그녀의 심성에 매료된다. 둘은 심정적으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렇게 마크와 안나, 안나와 마크는 파국을 맞이할 것인가? 그 파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냉전의 분단 도시, 사랑의 붕괴를 비추는 거울
1961년 베를린에 장벽이 생긴다. 베를린의 서쪽과 동쪽을 나누는, 냉전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구조물이었다. 하여 이제까지 한곳에서 같은 정체성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이 갈라섰고 서로 만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벽은 30여 년간 존재했다. 영화 <포제션>은 1980년대 당시 베를린이라는 특수한 정체성을 은유적으로 풀어냈다.
안나가 어느 날 갑자기 미친 것처럼 소리 치고 몸부림 치며 마크에게 이혼을 통보하는데, 그녀 자신도 스스로를 악마라고 말하는 한편 어쩔 수 없다고 말하니 뭔가가 더 있는 것 같다. 비록 베를린 장벽을 동독이 세웠으니 그 뒤에는 미국과 소련이 전 세계를 양분하며 치고박는 냉전이라는 괴물이 있었듯이 말이다.
제목 '포제션'은 빙의, 소유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안나에게 뭔가가 빙의한 듯, 나아가 마크도 큰 영향을 받는 만큼 '빙의'의 의미가 우선적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미친 시대였다. 미치지 않고서야 미친 시대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안나, 그리고 마크의 모습은 당대를 비추는 자화상이나 지금도 통용되니 안타까울 뿐이다.
미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사람들
안나와 마크 부부의 피 튀기는 싸움, 이른바 부부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부부 생활을 지독하게 은유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잘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싫다는데, 뭐 어쩔 것인가? 마음을 돌릴 뾰족한 수가 있는가? 애걸복걸해봐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미 끝나버린 관계를 재확인할 뿐이다.
앞서 제목 '포제션'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빙의 말고 '소유'에 천착해 볼 필요가 있다. 안나는 본인이 더 이상 마크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에게도 자유가 있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으며 이제 비로소 누려보겠다는 것이다. 아이에게서, 남편에게서, 가족에게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찾겠다고 말이다.
그녀는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그녀가 상정한 진정한 자신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한 그녀가 진정한 자신을 찾는 방법도 궁금하다. 그 물음에 영화의, 감독의 답변이 신박하다. 이렇게 시작해 이런 식으로 전개되어 이렇게 끝나는데,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해석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괴랄하면서도 불친절하고 끊임없이 앞만 보고 질주하면서도 고요와 공허가 공존하는 영화가 이 영화 전후로 있었나 싶다. 앞으로도 있을까도 싶다. 정치적 반목과 부부 싸움은 영원히 계속될 테니 이 영화의 힘도 영원히 강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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