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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나는 찍히는 대신, 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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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포스터. ⓒ영화사 진진

 

리 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프랑스 파리에서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자유분방하게 예술계 사람들과 어울렸는데, 영국 초현실주의 미술가 롤런드 펜로즈와 사랑에 빠져 그를 따라 런던으로 향한다. 그녀는 1920년대 미국 패션지 보그 모델로 활동하며 피카소, 장 콕토, 만 레이의 뮤즈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랬던 그녀가 “나는 찍히는 것보다 찍는 일이 좋다”라며 사진작가로 전향했었는데, 전쟁이 터지자 런던 대공습을 사진으로 남기더니 한 발 더 나아가 유럽 대륙의 최전방에서 종군기자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영국이 받아줄 리 만무했지만 그녀는 미국인이라 가능했다. 하지만 전장에서도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기 일쑤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그녀는 생말로에서 최초의 네이팜탄 폭발을 기록하고, 독일군에 부역한 프랑스 여성의 공개 모욕을 기록하며, 부헨발트와 다하우 강제 수용소의 참상을 기록한다. ‘여성 종군 기자’로서 리 밀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층위를 나눌 필요도 있을 것이다.

 

여성 종군기자로서

 

종군기자 하면 ‘로버트 카파’가 떠오른다. 스페인 내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중동전쟁과 인도차이나전쟁까지 사진에 담은 20세기 최고의 저널리스트다. 그런가 하면 그 유명한 레프 트로츠키, 윈스턴 처칠,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잭 런던, 심지어 앨 고어도 종군기자로 활동한 바 있다.

그렇다면 리 밀러 이전의, 그러니까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는 누구일까? 자그마치 19세기 중반에 이탈리아 독립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한 마거릿 풀러다. 그녀는 최초의 페미니스트로도 유명하다. 그러니 여성과 종군기자의 합은 태생부터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하겠다. 여성으로서 온갖 어려움을 이중, 삼중으로 헤쳐 나가야 하니 말이다.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는 부제까지 친절하게 달아줬지만 원제는 <LEE>다. 그 어떤 수식어도 없이 그저 이름 하나만 떡하니 놓은 것. 그녀, 그러니까 리 밀러에겐 보그 모델 출신이라니, 저명한 사진작가라느니, 여성 종군기자로 활약했다느니 하는 수식어가 굳이 필요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지옥의 한가운데로

 

영화는 리 밀러의 삶을 다룬다기보다 그녀를 도구로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 같다.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던 시대에 한계를, 선을, 벽을 넘어서려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미국인이었고 소위 잘나가는 동거인도 뒀기에 전쟁 중임에도 충분히 편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녀는 지옥의 한가운데로 갔다.

거기서 얘기는 달라진다. 그녀에게 더 이상 ‘여자가‘ ’여자로서’ ‘여자임에도’ 등의 수식어를 붙일 이유가 없어졌다. 전투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강제 수용소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으니 말이다. 전쟁이 아니라 ‘전쟁 범죄’가 자행된 그곳. 사진작가로서, 종군기자로서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숭고한 인류애로 중무장한 채 뛰어든 건 아니다. 온나라가, 전 세계가 죽음이 상존하는 곳으로 딸바꿈해 버린 상황에서 사진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간 건 친구들이 끌려갔을지 모르기에 그들을 찾으려는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남긴 기록물은 인류 역사에 길이남게 되었다.

 

나는 찍히는 것보다 찍는 일이 더 좋다

 

영화는 그리 잘 만들어진 편은 아니다. 1990년대부터 마틴 스콜세지, 미셸 공드리, 스파이크 리 등의 거장과 함께 협업하며 영화계에 큰 획을 남긴 촬영감독 엘렌 쿠라스의 연출 데뷔작인 <리 밀러>에는 케이트 윈슬렛, 알렉산더 스카스카드, 마리옹 꼬띠아르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딱 거기까지만이다.

극 중 리 밀러를 통해 전해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 특히 홀로코스트의 참상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충분히 전해지고도 남았다. 2000년대 초반의 HBO 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만 봐도 A부터 Z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지했듯 ‘여성으로서’의 주체적 메시지도 강렬하고 강력하게 보여지지도 않는다.

남은 건 그녀가 사진작가로서, 종군기자로서 진짜 기록을 남겨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다. 그렇다, 그녀는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찾았다. “나는 찍히는 것보다 찍는 일이 더 좋다”라는 의미를 비로소 정립했다. 하여 그녀는 20세기 가장 위대하고 또 중요한 종군기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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