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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폴 토마스 앤더슨의 가장 대중적인 반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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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폴 토마스 앤더슨은 가장 미국적인 영화를 만드는 미국 감독이다. 1990년대 중반 데뷔한 이래 주기적으로 꾸준히 작품을 내놓았는데, 시네필들에게 찬사를 받지 않은 적이 없다. 하지만 유럽에서 큰 사랑을 받았고 오스카에선 받아주지 않았다. 일반 관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그가 50대 중반에 이르러 많은 걸 아우르는 작품을 내놓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등과 함께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명백한 정치 영화다. '혁명'이라는 단어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채운다. 2025년 현재 사장되다시피 한 그 단어이자 개념을 말이다. '아직도 혁명을 말하는 사람이 있나?' 싶은데, 나아가 '혁명을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는?' 하고 뜨악한다.

그런데 폴 토마스 앤더슨, 그러니까 PTA는 이 작품으로 중대한 결심을 한 것 같다. 그동안 그의 작품들은 난해하다고 일반 관객에게 외면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많은 걸 걷어낸 채 솔직하고 담백하게 일직선으로 달리는 모양새다. 비평과 흥행 양면을 모두 신경 쓴 티가 역력하다. 결과는 성공적, 그의 필모 최고 오프닝을 갈아치웠고 평가도 아주 좋은 편이다.

절치부심한 워너 브라더스가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흥행성과 작품성 보증수표를 떠나보낸 후 제대로 된 후계자를 찾았다고 할까. 한국에서도 화제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혁명은 죽지 않았다, 모습만 바뀌었을 뿐

 

밥은 급진 폭력 혁명 조직 '프렌치 75'의 핵심 멤버로 폭탄 전문가다. 캘리포니아의 수용소를 급습해 이민자들을 대거 탈출시킨다. 한편 조직의 리더 퍼피디아는 지휘관 스티븐 대위를 성적으로 모욕한다. 이후 밥과 퍼피디아는 연인이 되고 프렌치 75는 광범위한 테러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그들은 딸 윌라를 낳는데, 대뜸 퍼피디아가 혁명을 이어간다고 떠나 버린다.

16년이 지난 후, 박탄 크로스에 거주 중인 밥은 마약에 절어 사는 반면 딸 윌라는 자립적인 10대로 성장했다. 한편 스티븐은 대령으로 진급해 미국-멕시코 국경의 군을 통솔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인 우월주의 비밀결사대에 초대받는다. 문제는 그곳이 인종 간의 관계를 금지하고 있었던 것. 그는 과거 퍼피디아와 성관계를 맺었고 그때 윌라가 생겼다고 인식해 그들을 쫓는다.

윌라는 학교에, 밥은 집에 있었는데 다행히 아직 활동 중인 프렌치 75의 개입으로 각각 살아남는다. 이후 윌라는 디앤드라가 비밀 수녀원으로 데려가지만 결국 스티븐에게 붙잡혀 죽음이 멀지 않은 순간으로 치닫는다. 한편 밥은 윌라의 가라데 사범 세르지오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지역 이민자 공동체 리더이기도 한 그는 성심성의껏 도움에 응하는데… 밥과 윌라는 무사히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혁명의 불씨는 계속 살아 있을까?

 

결국 남는 건 사랑, 가족이라는 또 다른 혁명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끝없는 전쟁'이라는 의미의 관용구를 제목으로 채택했다. 여기서 전쟁 또는 싸움은 혁명과 동일어로 밥과 퍼피디아가 활동한 프렌치 75 이전의 세대부터 이어진 생존 투쟁을 일컫는다. 트럼프 2기 시대인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고로 이보다 더 시의적절할 수는 없을 테다.

하지만 주지했다시피 혁명은 사장되었다. 먹고사는 데만 해도 힘든데, 나를 돌아보고 남을 살피고 세상을 바꾸려는 데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럼에도 혁명은 ‘혁명’이라는 이름만 아닐 뿐, 곳곳에서 따로 또 같이 활동하며 여전히 현실을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이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다.

다만 이 작품은 혁명이 아닌 '가족'을 말하고 있다. 외형상 아빠 밥이 딸 윌라를 찾는 이야기다. 혁명이 살아 있었을 과거의 숙적이 혁명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아이 윌라를 납치해 혁명이 사라진 현재에서 찾아 나섰다. 아이를 찾으려는데 혁명의 산물이 가로막으니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한때 혁명의 핵심 단원이었던 밥에게 '혁명'은 더 이상 의미 있는 단어나 개념이 아니다.

그에겐 윌라가 태어난 후부터 윌라가 혁명과 다름 아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그에게 과거 혁명은 가장 중요한 대상이었을 뿐이고 지금 가장 중요한 대상은 가족이라는 것이다. 혁명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에 따른 자유 의지와 희열이 중요했다. 이제는 가족이야말로, 윌라야말로 그의 모든 것이다.

혁명에서 가족으로, 다시 혁명으로 치환되는 과정이 이토록 긴박감 있고 또 매끄러울 수 있나 싶다. 하여 이 영화는 다시 가족이 아닌 '혁명'을 말한다. 혁명에서 가족으로, 대를 이어 다시 혁명으로 옮겨가는 과정 자체가 혁명의 길이다. 근본적인 변혁은 쉽고도 어려운, 어렵고도 쉬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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