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수연의 선율>

열세 살 소녀 수연은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컸다. 이젠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었다. 보육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살려면 보호자가 필요하다. 함께 살자고, 엄마한테 잘 말해 보겠다고 약속한 친구가 갑자기 배신한다. 수연은 평소 할머니와 다니던 교회 목사 부부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그런가 하면 할머니의 친구 분께도 부탁드려 본다.
수연의 바람, 희망,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동정의 시선과 도움의 손길을 보낼지언정 실질적으로 보살피며 함께 살아가는 보호자가 되진 않으려 한다. 수연은 교회 복도 게시판에서 어느 입양 가족의 브이로그 광고를 접한다. 한 부부가 일곱 살 아이를 입양했는데 한 명 더 입양할 계획이란다.
유리와 태호 부부, 그들이 입양한 선율이라는 소녀. 선율은 언어장애를 갖고 있다고 했다. 수연은 먼저 선율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선율은 말을 잘하는 건 물론이고 굉장히 똑똑한 아이였다. 자신을 입양한 부부에게 애처롭게 보이려는, 그래서 그들이 자신을 버리지 못하게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수연은 자못 충격을 받았으나 빠른 시일 안에 보호자가 필요했기에 부부의 환심을 사고자 최선을 다한다. 결국 그들의 눈에 띈 후 그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데 성공하는데… 수연은 과연 뜻한 바를 이룰 것인가? 선율이라는 아이는 언제까지 이중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스스로 살 길을 찾고 만드는 아이들
스스로 보호자를 찾아 그(들)의 마음에 들고자 눈치를 살피고 마치 면접을 보듯 옷차림새에 신경 쓰고 표정을 가다듬은 후 말을 예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수연의 모습은 영악하기 이전에 안쓰럽다. 왜 중학생도 되지 않은 아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세상은 왜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가.
그런데 선율을 보면 영악함의 크기가 훨씬 큰 만큼 안쓰러움의 강도도 훨씬 크다.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아이, 똑똑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는 보호자를 찾아 그들의 마음에 들고자 언어장애가 있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스스로를 둔갑시킨다. 영화 <수연의 선율>이 주는 불편한 충격의 파고가 꽤 강력하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들의 세계 따위는 없다고 누가 그랬는가. 아이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고 만들어 간다. 세상이, 아니 어른들이 그들에게 반드시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탈 없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고 법을 만들어 놓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을 테다.
돌이켜 보면, 언제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몸은 성인이 되고 제도로서 성인이 되었다지만, 마음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것도 같다. 통과의례라고 할 만한 걸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도 같다. 그런데도 정말 어른이면 뭐든 잘할 수 있고 맞는 일을 하는 반면 아이라면 뭐든 잘할 수 없고 맞고 틀림이 뭔지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타인을 돌보며 어른이 되어 가는 아이들
영화의 후반부는 또 다른 충격을 안긴다. 수연을 받아들인 부부, 그렇게 수연은 뜻한 바를 이뤄 단란한 가족의 일원이 된다. 즉 보호자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일이 일어난다. 부부가 수연 그리고 선율도 내팽개친 채 야반도주를 한 게 아닌가. 브이로그 속 완벽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은 전부 가짜였던 것.
수연은 충격을 받을 새도 없이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선율을 생각해야 했다. 혼자서 가 버릴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수연은 자신도 미성년자가 보호자가 될 순 없지만, 선율을 챙기고 보살피고 돌본다. 보호자를 찾으려던 열세 살 수연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간다.
그런가 하면 선율도 수연을 돌본다. 수연이 악몽을 꾸며 괴로워할 때 선율이 밤새 곁에서 보살펴 주는 것이다. 일곱 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만, 충분하다. 보호자를 찾으려던 선율 역시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간다. 어른이라는 건 결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시기도 중요하지 않다. 환경에 따른 의지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수연과 선율은 안타깝고 안쓰럽다.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된다는 건 일반적으로 어른의 나이임에도 결코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유리와 태호 부부 같은 이들보단 낫다고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이거니와 특수한 경우이니 만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그러니 '보호'라는 제도를 만들어 놓은 만큼 제대로 보호해 준 다음 '돌봄'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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