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투게더>

10년을 함께한 커플 팀과 밀리. 결혼은 미뤄둔 채 동거만 이어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시골로 이사하지만,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지인들 앞에서 밀리의 깜짝 청혼은 팀의 망설임으로 무산되고, 둘 사이엔 어색한 공기가 짙게 깔린다.
시골에서의 삶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밀리와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팀은 여전히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마음은 점점 멀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 도중 폭우를 만나 길을 잃고 구덩이에 빠져버린 두 사람. 꼼짝없이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기묘한 일이 시작된다.
팀은 밀리에게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끌림을 느끼기 시작한다. 단순한 욕망이 아닌, 마치 서로의 내면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버릴 듯한 압도적인 흡인력. 곧 밀리 역시 같은 감각에 휘말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물리적으로 ‘붙어버린다’.
식어가는 사랑, 붙어가는 몸
작년 2024년부터 '바디 호러' 장르의 영화가 급격히 늘었다. '몸'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는 데 이만한 장르가 없을 텐데, 시대의 조류와 합치하는 것 같다. 공포-고어의 하위 장르인 만큼 자주 보기 힘든 게 당연한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신작과 <서브스턴스>의 성공으로 조금 더 쉽게 찾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여기, 바디 호러와 로맨스가 훌륭하게 결합된 영화 한 편이 찾아왔다.
영화 <투게더>는 짧고 간결하며 누구나 알아들음직한 제목으로 말이암아 큰 틀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바디 호러' 장르 자체가 '몸'을 철저하게 파헤치기에 보기보다 상당히 철학적인데, 이 영화도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더욱 재밌을 것이다. 거기에 로맨스적 측면도 가미되어 있으니 일찍이 보기 힘든 류다.
관계가 식으니 자연스레 서로의 몸과 마음이 멀찌감치 떨어진다. 어느 한쪽에서 다가가기가 힘든 게, 오랜 세월 함께한 만큼 오히려 다른 한쪽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다.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모종의 이유로, 알 수 없는 끌림으로 몸이 붙어 버린다면?
서로의 몸이 붙는 것 자체는 상상도 하기 힘들다. 우선 치명적인 고통이 수반될 것이니까. 붙는 것 자체가 아니라 붙은 걸 떼어내는 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렇다, 서로의 몸이 붙는 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떼어내야 한다는 걸 뜻한다. 붙은 채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관계도 마찬가지다. 너무 떨어진 채 살아갈 순 없겠으나 붙은 채 살아갈 수도 없다.
영화는 이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온 연애와 관계의 진실을 드러낸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 남는 건 서로에게서 도망치듯 떨어져야만 하는 고통, 혹은 영원히 하나가 되고 싶은 불가능한 열망이다. 오래된 연인에게 찾아오는 권태는 곧 서로의 몸과 마음이 멀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순간, 둘의 몸이 떼려야 뗄 수 없이 합쳐진다면? 〈투게더〉는 이 기상천외한 설정을 통해 '사랑과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파고든다.
한 명이 죽을 것인가, 완전한 하나가 될 것인가
훌륭한 발상이다. 멀어진 관계의 연인에게 서로의 몸이 붙어 버리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게 말이다. 극단의 상황이 주는 서스펜스가 긴장감을 최고조로 올리고 손에 땀을 지며 지켜보게 한다. 이제 다시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끌리는데, 문제는 떼어내기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해 본다. 내가 그들 중 하나라면, 그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 해야 할 건 둘 중 하나다. 영원히 함께가 되든지 영원히 떨어져 있든지. 이를테면 둘이 몸이 계속 붙고 융합되고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 명이 목숨을 끊는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서로를 향한 끌림은 영원할 테니까.
관계도, 연인도 비슷한 것 같다. 함께 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바에 아예 헤어져 남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이였으나, 헤어지면 다신 볼 수 없고 연락도 할 수 없고 아무런 관계도 아닌 사이가 되어 버린다. 영화는 이 슬픈 아이러니의 어딘가를 들여다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 영화는 단순한 고어물이 아니다. 멀어진 연인의 몸이 합쳐진다는 설정은 충격적인 동시에 묘하게 낭만적이다. 긴장과 혐오, 사랑과 열망이 뒤엉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제작비 대비 월드 박스오피스에서 선전 중인 이 작품이 한국에서도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투게더〉는 '몸과 사랑, 관계와 공포'를 동시에 사유하게 만드는 드문 영화다. 바디 호러 전성기에 찍힌 이 강렬한 마침표는 오래 기억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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