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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첫사랑의 입맞춤과 첫 욕망의 불협화음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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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소녀의 성장통>

 

영화 <소녀의 성장통> 포스터. ⓒ도키엔터테인먼트


새롭게 합창단에 합류한 16세 소녀 루치아, 지휘자 선생님의 통제 아래 합창단의 일원이 되려 노력한다. 합창단이라는 게 한 명만 흐트러져도 전체가 흐트러지지 않는가. 와중에 루치아는 또래 여자친구 아나마리아에게 반한다. 그녀의 입술에 푹 빠진 것.

합창단은 치비달레의 우르술라회 수녀원에서 집중 리허설을 하기로 한다. 조용한 곳에서 집중하면 잘될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공사 중이었고 수녀원임에도 불구하고 남자 인부들이 득시글거렸다. 한편 루치아는 엄마한테 혼났는데, 친구들은 다 바르는 립스틱을 발랐다는 이유였다.

수녀원에 도착해 집중 리허설을 시작하는 합창단, 루치아는 아나마리아와 친해진다. 아나마리아는 활발하고 관능적이며 성에 개방적이었는데 그 덕분에 그들은 쉽게 친해졌지만 성 관념에서 차이를 보였다. 어느 수녀의 말씀에 루치아가 감회된 것이었다. 그렇게 둘의 사이는 애매해지고, 어느 때 루치아는 젊은 남자 인부가 알몸으로 수영하는 걸 사진으로 찍고 마는데…

욕망과 신념 사이, 혼란스러운 눈뜸

16살이면 마냥 어리다고만 보지 않는다. 충분히 2차 성징을 시작했을 나이기도 하고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법적으로 어른 취급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어른이라고 할 수도 없는 나이다. 보호자 없이 홀로 세상을 살아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참으로 애매한, 경계에 있는 나이라 하겠다.

슬로베니아에서 건너온 영화 <소녀의 성장통>은 제목 그대로 16세 소녀 루치아의 성장통을 그렸다. 그녀가 새로 속하게 된 합창단이 수녀원으로 집중 리허설을 떠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주요 소재로 작용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성에 관한 일들 말이다.

아나마리아는 특유의 관능을 앞세워 루치아의 성 관념을 일깨우려 한다.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 본능적으로 해보라는 것. 그녀의 말마따라 키스, 섹스는 심지어 건강에도 좋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그들은 키스도 나눈다. 하지만 아직 초경도 시작하지 않았고 성에 제대로 눈 뜨지도 못한 루치아에겐 너무 빨랐을까.

그들은 함께 우연히 수녀의 고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가 말하길 하느님이 모든 걸 충만히 채워주시기에 본능이 발현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키스, 섹스처럼 성에 관한 것들도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루치아는 감화되고 아나마리아는 콧방귀만 뀔 뿐이다.

합창처럼, 삶처럼 흔들리는 정체성

하필 합창단인 이유가 있을 테다. 혼자 아무리 잘한들 단원들과 수준을 맞추려 튀지 않아야 하고, 혼자서만 뒤떨어지면 어떻게든 실력을 끌어올려 단원들과 수준을 맞춰야 한다. 다양한 취향과 능력과 특성을 가진 수많은 이가 마치 하나인 듯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누군가 튀면 반드시 티가 나게 되어 있다.

성에 눈뜨기 시작한 루치아는, 그러나 너무 상반된 모양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니 혼란스럽기 그지없고 곧 합창할 때 나타나기 시작한다. 또 하필 아나마리아와 선생님과 엮이니 제대로 자리 잡기가 더 힘들다. 그런 면에서 루치아의 성장통을 그리는 데 합창단을 배경으로 한 건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루치아는 성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목격하고 실행에 옮기니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을 텐데, 그런 모습 자체는 결코 이상한 게 아니다. 또한 아나마리아처럼 몸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거나 수녀님처럼 몸을 성스럽게 생각하는 건 맞지도 틀리지도 않은 취향이자 신념 차이일 뿐이다. 그녀로선 훌륭한 모양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이 사회는 합창단에 가깝다. 모난 사람이 정 맞는다고 하지 않는가. 다양성을 획일화하는 게 더 쉽고 한쪽만 선택하는 게 더 쉬우며 '나'라는 존재가 묵살당해도 수그리는 게 더 쉽다. 그럼에도 부디 루치아가 자신만의, 다양성에 기반한 정체성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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