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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몸과 마음을 지원해 주는 반려 로봇으로 그가 하려던 추악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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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컴패니언>

 

영화 <컴패니언> 포스터.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먹구름 속을 헤매는 듯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살아가던 아이리스는 슈퍼마켓에서 우연히 만난 조시와 사랑에 빠진다. 이후 아이리스는 조시에게 매달리는 듯한 모양새로 그가 세상의 전부인 양 믿고 의지한다. 그런가 하면 조시는 그녀야말로 자신의 완벽한 반쪽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그들은 외딴 호숫가의 별장으로 향한다.

조시의 친구들 캣, 일라이와 그들의 연인이 함께했다. 그런데 캣이 문제였다. 그녀는 말을 막 하곤 했는데 특히 아이리스에게 그랬다. 나이 많은 러시아 유부남 부자 세르게이의 돈만 바라고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준다는데, 아이리스도 다를 다 없다는 듯이 말하는 게 아닌가. 그 밖에도 그녀에게 경계심을 내비치는 친구들, 그래도 조시가 있으니 괜찮다.

다음 날 아침 조시와의 호숫가 데이트로 호수에 먼저 간 아이리스는 세르게이에게 성폭행 위협에 이어 목숨까지 위협받자 엉겁결에 그를 죽여 버리고 별장으로 돌아온다. 상황이 급박해지려던 찰나 조시가 아이리스를 재우고 의자에 묶어 버린다. 그러곤 친구들과 공모한 후 아이리스를 깨워 충격적 소식을 전하는데…

 

그녀는 언제 어떻게 왜 그를 죽이게 된 걸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두 번의 순간이 있다. 첫 번째는 조시를 만난 날이었고, 두 번째는 그를 죽인 날이다."라는 아이리스의 내레이션으로 첫 장면을 여는 영화 <컴패니언>은 첫 사건이 일어나는 직후 결정적인 반전을 선사한다. 세르게이를 죽인 후 잠에서 깨어난 아이리스에게 조시가 하는 말, "넌 로봇이야. 섹스를 도와주고 정서를 지원해 주는 로봇 말이야.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야."

미국 TV 코미디 시리즈들의 각본가로 활동한 드류 행콕의 영화 연출 데뷔작 <컴패니언>은 극초반 아이리스의 내레이션이 처음과 끝이다. 즉 아이리스가 조시를 만나서 죽이기까지의 이야기다. 자연스럽게 궁금증은 '그녀는 언제 어떻게 왜 그를 죽이게 된 걸까'다. 연출, 특히 각본에 매우 자신감 있는 흐름이다.

그런가 하면 영화의 초반부에 결정적인 반전이 매우 손쉽게 밝혀진다. 아이리스가 몸과 마음을 지원하는 '반려 로봇'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녀가 왜 그렇게 조시에게 매달리다시피 했는지, 캣이 왜 그녀에게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말했는지, 조시의 친구들이 왜 그녀에게 묘한 경계심을 보였는지 설명된다.

 

문제는 세르게이의 죽음이다. 그것도 아이리스가 자신을 지키고자 엉겁결에 그를 죽였다는 것. 그런데 그녀는 로봇이 아닌가? 또한 주인이 조종할 수 있고 온갖 제약 때문에 문제 행동을 일으킬 수 없다는데. 그렇다면 조시가 해킹하여 그녀로 하여금 세르게이를 죽일 수밖에 없게끔 했다는 것이다.

 

연인 사이의 가스라이팅과 빙퉁그러진 남성상

 

영화는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 돋보인다. SF, 범죄, 스릴러, 블랙 코미디까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또한 반전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초반부에 전부 보여준 후 앞뒤로 흩뿌려놓은 퍼즐을 맞춰 나가는 모양새를 취한다. 이야기를 풀어감에 있어 반전을 도구이자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반전은 메시지를 전하는 용도로도 쓰이는데, 조시가 아이리스의 모든 걸 컨트롤하는 모습에서 연인들 사이에 이뤄지는 가스라이팅 문제가 따라온다. 조시는 아이리스에게 은연중에 "넌 나 없으면 안 돼, 나 아니면 넌 아무것도 아냐"라는 식으로 주입했을 테고 아이리스는 자연스레 주입당했을 것이다.

나아가 영화는 스스로를 학대하며 열등감에 시달리는 조시가 돈 많은 러시아인 세르게이를 마피아라고 확신한 후 죽어 마땅한 놈이라 여겨 유일하게 통제 가능한 아이리스로 하여금 죽이게 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 시대 빙퉁그러진 남성을 비판한다. 자신을 학대할 정도라면 나쁜 남을 죽이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인가.

 

최첨단 시대의 윤리 감각과 윤리 의식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거니와 남성에게 몸과 마음으로 변함없는 '충성'을 다하는 아이리스는 여성을 향한 성적 대상화 문제를 드러낸다. 아무리 삶을 다방면으로 편하게 할 수 있다지만 여성을 그런 식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 요량이 없을 것이다. 남녀차별의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니 말이다.

한편 조시의 친구 중 일라이의 연인 패트릭도 사실 로봇인데, 그들은 남성 동성 커플이다. 조시와 달리 일라이는 패트릭을 진심으로, 그러니까 패트릭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한다. 이른바 성소수자가 로봇을 이용하는 법을 보여준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음껏 표출할 수 있으니까.

로봇의 시대,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감에도 윤리 감각과 윤리 의식이 중요하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 발전, 성장만 외치며 도외시되고 필요 없어지다시피 한 바로 그 윤리다. 발전이 최고치에 오른 때, 윤리는 유일한 폭주 제어장치의 역할을 할 것이다. 하여 제어장치는 로봇이 아닌 인간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게 아닌가도 싶다. 윤리를 제대로 깨우치고 인식시켜놓지 않으면 AI의 시대를 온전히 버텨내기란 쉽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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