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쉬리>
강제규 감독의 <쉬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기념비적인 작품' '대한민국 영화는 <쉬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등의 수식어로 유명하다. 세기말 1999년 초에 개봉해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전국 600만 명 흥행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작품 이후 매해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흥행 대작이 나오기 시작했다.
26년 전 흥행 대작이니 만큼 역대급 출연자들로도 유명하다.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김윤진이라는 이제 더 이상 한 영화에서 보기 힘든 이들이 주연을 맡았고 박용우, 김수로 등이 조연으로 얼굴을 비췄으며 황정민, 장현성, 이종혁 등이 단역급으로 나왔다. 스타급 주연 배우들이 단역급으로 출연한 예전 영화들을 보는 재미다.
<쉬리>는 첩보 액션과 로맨스 멜로의 절묘한 조화가 일품인데, '쉬리'가 본래 조선 토종어지만 분단의 운명을 함께하고 있다면서 첩보 액션의 중심이 되는 작전의 이유를 보여주는 한편, 한쪽이 죽으면 다른 한쪽도 따라 죽는 물고기 '키싱구라미'는 극 중 유중원과 이명현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 사랑은 모두의 응원을 받는 사랑일까, 금지된 사랑일까.
남파 특수대의 어마무시한 임무
한국의 특수정보기관 OP의 최정예 요원 유종원과 동료 이장길은 암살 사건을 수사하던 중 일급 정보를 제보하겠다는 무기밀매상 임봉주와 접선하지만 눈앞에서 피살당한다. 그 정교한 솜씨를 보고 북한의 특수 8군단 정예 첩보 요원으로 최고의 저격 솜씨를 뽐낸 바 있는 이방희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음을 직감한다.
한편 북한에선 박무영 소좌가 특수 8군단의 비밀 특수대를 이끌고 남파해 CTX를 탈취하는 한편 이방희와 접선한다. 유종원과 이장길도 이방희가 임봉주를 암살한 사건에서 CTX의 정체(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최신식 액체 폭탄으로 어마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한다)를 알게 되고, 북한의 남파 특수대가 CTX를 탈취한 현장으로 출동해 전말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유종원은 결혼을 약속한 이명현과 사랑을 속삭이며 심신을 케어받을 수 있는데, OP 내에 첩자가 있다는 확신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국장과 유종원, 이장길 세 명 중 하나가 첩자라는 것이니 서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최무영에게서 직접 전화가 오더니 서울 시내 10곳에 CTX를 설치했다고 하는데… 이 위기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남북 첩보 액션의 시작점
지난 25년간 판권 문제로 재개봉은커녕 OTT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 영화, 드디어 판권 문제가 해결되어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역사상 최악의 침체기에 들어선 한국 영화계에 <쉬리>가 재개봉으로 선보인다는 건 의미가 굉장히 크다 하겠다. 이 작품의 외적인 상징성이 충분히 발휘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다시 극장을 찾는 기폭제로 작용하길 바란다.
<쉬리>는 지금도 여전히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남북 첩보 액션'의 시작점이다. 당연하게도 이후 다양하게 변주되었는데 이 작품은 단순 명료했다. 남파한 북한 특수요원의 활약(?)을 막으려는 남한 특수요원 이야기. 하여 시종일관 박무영, 이방희 등 북한 특수요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영화의 재미를 상당 부분 책임진다.
외려 남한 특수요원 유종원이 로맨스 멜로를 책임진다. 극 중 박무영이 유종원에게 토해내는 '북녘의 인민들은 못 먹고 병들어서 길거리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어!'와 대조되는 모양새다. 나아가 유종원은 여기저기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에 비해 결정적인 활약은 미미하니 더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탄생
할리우드 역사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1975년작 <죠스>가 있다면 한국 영화 역사에는 강제규의 1999년작 <쉬리>가 있다. '최초의 블록버스터'로 알려져 있는 작품들인 바 엄청난 물량공세와 더불어 엄청난 흥행력을 선보였다. <죠스>는 전미 흥행 2억 달러를 넘겼고 <쉬리>는 서울 200만 명을 넘기며 극장가의 풍경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재밌을까, 그 가치를 유지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액션 장르가 아니라면 오히려 예전 것들이 훨씬 더 대단한 경우가 있는데 블록버스터라면 응당 액션이 가미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쉬리>는 지금 봐도 적어도 스케일 면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특히 시내 총격씬이나 경기장 추격씬 등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액션 영화에도 감정을 움직이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는 걸 몸소 보여준 <쉬리>, 사람이 쉽게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먹먹해지는 별난 경험을 한다.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할 텐데, 여전히 다를 바 없는 분단 현실에서 탄생하는 괴물들과 개인적이지 않아 더욱 서글픈 악연들이 계속해서 얽히고설키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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