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20세기를 주름잡았던 액션 스타 중 하나인 멜 깁슨은 1990년대부터 연출에 발을 담갔다. 유명한 작품들로 <브레이브 하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아포칼립토> <헥소 고지> 등이 있다. 모조리 역사적 이야기들로, 철저한 고증과 함께 폭력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개봉 20주년으로 재개봉 후 1년 만에 최초 개봉일에 맞춰 재개봉했다.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비기독교인이라도 들어봤음직하다. 하지만 잘 알진 못하고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 동산, 유다의 배신, 총독 본디오 빌라도, 골고다 언덕, 십자가형, 죽음과 부활로 띄엄띄엄 나열하는 정도다. 하지만 예수의 수난, 죽음, 부활은 예수의 상징이자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2000년대 중반 작품으로, 1950~60년대 블록버스터급 대작들인 <십계> <벤허> 등 이후 명맥이 끊겨 버린 대중적 종교영화를 부활시켰다. 실감 나는 폭력과 고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것이다. 굳이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전파할 필요도 없다.
최후의 만찬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과월절을 기념하는 만찬 다음 날 새벽 겟세마네 동산, 예수가 기도를 드리고 옆에 몇몇 제자가 함께 있다. 곧 유대인 제사장의 사병들이 들이닥쳐 예수를 잡으려 한다. 결국 잡히고 마는 예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앞으로 끌려간다. 하지만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는 걸 저어해 이리저리 나름대로 노력한다.
예수를 헤로데왕에게 보내 알아서 하게끔 하지만 다시 돌려보내지고, 가장 흉악한 살인마 바라빠를 데려와 예수와 둘 중 누구를 풀어줄지 선택하라고 했지만 유대인 제사장을 비롯 유대인들이 바라빠를 풀어주라고 한다. 하여 빌라도는 예수에게 태형을 명하고 풀어주려 하지만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듯한 분위기였다. 빌라도로선 더 이상의 폭동을 좌시할 수 없었다.
결국 십자가형을 명 받는 예수,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무겁디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한다. 와중에도 끊임없는 채찍질로 쓰러지기를 수차례 반복, 얼떨결에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옮긴 시몬 덕분에 언덕을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건 더욱더 심한 고통과 죽음뿐…
지극한 종교 영화이자 대중 상업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측을 아득히 뛰어넘는 박스오피스 성적으로 유명하다. 북미에서만 3억 7천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전 세계적으로 6억 2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역대 R등급 북미 흥행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지만 해외에서도 적잖게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단순히 교인들만의 영화가 아닌 대중 상업 영화로서도 힘을 발휘했다는 이야기다.
멜 깁슨 감독의 연출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타 연출작들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더 직접적이고 사실적이며 실감 나게 폭력을 묘사하며 눈을 감아 버리고 싶은 한편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하물며 그 대상이 인류의 역사를 영원히 뒤바꾼 예수 그리스도라면 누구라도 궁금해서 한 번쯤 보고 싶을 것이다.
영화는 앞뒤 없이 막바로 예수가 유대인 제사장의 사병들에게 잡혀가선 로마 총독 앞에서, 헤로데왕 앞에서, 살인마 바라빠 앞에서 온갖 모욕을 당한 후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는 태형을 받곤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까지를 보여준다. 알고 보면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이고 모르고 보면 고통에 함께 몸부림칠 것이다.
예수의 수난을 최대치로 재현한 가장 완벽한 예
영화는 기록에 남아 있는 '예수의 수난'을, 역사 고증을 가장 잘하는 사람 중 하나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제대로 재현하려는 시도였다. 그럼에도 실제 예수가 겪은 수난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고 하니, 비기독교인으로서도 감정이 심하게 요동친다. '예수'라는 상징성 다분한 호칭이 아닌 보통의 무고한 선량한 일반인이라고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극 중 예수에게 주로 폭력을 가하는 이들은 로마의 말단 병사들인데, 이성적으로 형벌을 집행하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유희를 즐기고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고 할까.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씌워 죽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충분히 악마적인 행동이라 할 만한데 그들의 죄조차 모두 떠안는 예수라니, 더 할 말이 없다.
이런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싶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잔인하고 폭력적이지만 바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울지 않기가 힘들고, '종교 영화'라는 상당히 마이너하고 마니악한 장르지만 '전 세계적으로 대성공한 대중 상업 영화'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보고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의 소유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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