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자전거 탄 소년>
벨기에가 낳은 세계적 거장 다르덴 형제(장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1990년대 중반 극영화에 데뷔한 후 2~3년마다 쉼 없이 영화를 내놓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시켜 수상까지 이어졌기에 '칸의 거장'이라는 칭호가 이상하지 않다, 아니 적당하다.
그들의 연출 스타일은 리얼리즘에 기반하는 바 벨기에 사회의 불안정한 이면을 들여다보는 데 천착한다. '밑바닥'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어쩔 수 없아 맞닥뜨린 도덕적, 윤리적 딜레마에 집중해 서사를 풀어나간다.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유명 배우는커녕 전문 배우조차 거의 기용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2011년 작 <자전거 탄 소년>에선 유명 배우 세실 드 프랑스를 기용했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를 결정적 장면에 사용했다. 여지없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건재함을 알린 바 있는 이 작품, 우리나라에선 이듬해 초 개봉했었고 13년 만에 재개봉하며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감동 어린 사회파 리얼리즘 명작을 목도하자.
아빠를 잃은 소년, 소년을 보살피는 여인
11살 소년 시릴은 보육원에서 생활 중인데 한 달이 지나 아빠 기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막무가내로 행동한다. 하지만 아빠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시릴은 다음 날 등교했다가 몰래 빠져나와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빠는 이미 한 달 전에 방을 뺀 상태, 그리고 자전거의 행방도 묘연하다.
보육원에서 온 선생님한테 붙잡히는 시릴, 그 과정에서 우연히 만난 사만다가 시릴의 자전거를 되찾아주고 주말 위탁모까지 되어준다. 시릴은 사만다를 단지 아빠를 찾는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황당한 상황에 처한 시릴의 입장에선 모르는 어른의 도움을 그 정도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빠의 일터로 향하는 시릴과 사만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시릴에겐 다신 찾아오지 말라는 협박과 사만다에겐 시릴을 맡아 키워달라는 부탁. 시릴은 큰 충격을 받고 자해를 시도하기도 한다. 급기야 질 나쁜 친구를 사귀기까지 하는데… 그의 삶은 어디로 향하는가. 누가 그를 구해줄 수 있을까. 사만다의 시릴을 향한 마음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가.
11살 소년이 존재를 부정당했을 때
11살이라는 나이, 이제 막 10대라는 문턱에 들어서 사춘기라는 터널을 통과하고자 준비하고 있을 그 나이에 엄마 없이 하나밖에 없는 아빠가 자신을 대놓고 버리려 한다. 극 중 시릴의 얘기지만 누군가의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빠는 자전거를 팔아 급전을 마련했다, 그것도 시릴이 가장 좋아해 마지않는 자전거를 말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빠한테 눈앞에서 절연을 당한다는 것,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드니 널 더 이상 키울 수 없고 다신 찾아오지 말라는 부탁 아닌 협박 말이다. 어린 시릴에겐 존재를 부정당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에 향응하는 행동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심경으로 단순히 안타깝다는 말로 그칠 게 아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부모라면 응당 자식을 키워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다. 힘들다면 도움을 청해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시릴의 아빠는 시릴에게서 도망치고 찾아온 시릴을 내쫓는다. 그런데도 특별한 제지를 받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아이를 버리는 게 '개인의 자유'를 발현하는 거라고 말하진 않겠지 싶다가도 관련되어 정부의 규제가 없거나 나이에 따라 규제의 차등을 둘 수도 있겠다 싶다. 정말 그렇다면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타파하는 개인
사만다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주인공이라서만은 아니다. 그녀는 시릴의 동네 미용실을 운영하는 젊은 처자인데, 그야말로 우연히 맞닥뜨린 시릴의 사연을 듣고 그에게 자전거를 되찾아 주고 주말 위탁모를 하며 아빠에게까지 같이 찾아가 준다. 뿐만 아니라 시릴이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게 지도하기도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천사 같은 캐릭터다. 과연 현실에서 그녀 같은 사람이, 비슷하기라도 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더욱이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지 말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비칠 수도 있겠으나 이 동화 같은 영화에선 그저 대단하고 고맙고 예뻐 보일 뿐이다.
결국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시릴의 아빠가 아들을 버리는 행위 자체는 개인적이지 않은가. 이후의 대처가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비화된 것이고. 한 사람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한 사람을 살려내는 건 거기서 그치지 않고 퍼져나갈 것이다. 연쇄 작용을 일으켜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일조할 것이다.
하여 <자전거 탄 소년>에서 시릴이나 사만다는 극 중에선 지극히 현실적인 동시에 극 밖에선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적합한 캐릭터다. 사회파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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