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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화려한 삶과 비극적 죽음 이면에 그녀를 진정으로 위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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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마리아>

 

영화 <마리아> 포스터. ⓒ판씨네마

 

인기, 외모, 연기력, 영향력 등 사실상 모든 면에서 독보적인 톱스타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안젤리나 졸리, 하지만 정작 그녀의 작품을 유심 있게 지켜본 기억은 많지 않다. 아무래도 여전사 이미지가 강하고 그에 맞게 액션 영화들이 유명하기 때문일 텐데, 감독으로 진중하고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와중에 안젤리나 졸리 최고의 연기력을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 <마리아>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선 넷플릭스 아닌 극장 개봉을 택했다. 이 작품은 칠레 출신의 '유명인 전기 전문 감독'으로 거듭난 파블로 라라인이 연출을 맡았다. 일명 '하이힐을 신은 여성 전기영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 <재키> <네루다> <스펜서> 등 훌륭한 전기영화를 내놓은 바 있고 최근작 <공작>마저 피노체트가 흡혈귀로 나온다. 실화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재해석을 가져다 붙이는 데 능하다. <마리아> 역시 유명인 '마리아 칼라스'의 실화를 가져와 자신만의 재해석으로 극화했다. 그녀가 죽기까지 일주일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녀의 일대기를 결정적인 장면 위주로 보여준다.

 

마리아 칼라스의 마지막 일주일

 

마리아 칼라스는 1977년 9월 16일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숨을 거둔다. 그로부터 일주일 전, 그녀는 매 순간이 힘들다. 의사의 처방 없이 무분별하게 약을 먹으니 마음은 편해지고 그나마 잠을 잘 수 있지만 환영이 보인다. 사실 실제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의사가 찾아와 경고할 정도다, 죽을 수도 있다고.

마리아는 다신 무대에 오를 생각이 없지만 노래는 다시 부르고 싶어 주기적으로 체크를 받는다. 목이 노래를 부를 만한 상태인지 아닌지 말이다. 희망이 보이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싶을수록 그녀의 몸이 견디지 못한다. 노래를 부를 때면 옛 전성기 적의 무대가 떠오르고 그렇지 못한 현실과의 괴리감에 괴로워하다 약을 찾으니 말이다.

그녀는 자서전을 집필한다는 이유로 맨드랙스라는 리포터의 인터뷰에 꽤 성심성의껏 응한다. 그녀로선 이례적인 행보다. 한편 그녀가 혼자 지내는 대저택에는 집사 페루치오와 가정부 브루나가 항상 함께하고 있다. 그녀가 말하길 그들은 그녀의 아빠이자 엄마, 오빠이자 언니, 아들이자 딸이다. 그들 모두 잘 알고 있다, 마리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화려한 삶과 비극적인 죽음 

 

리아 칼라스에게 붙은 수식어는 '불멸의 소프라노' '세기의 프리마돈나' 등 화려함의 극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소프라노를 한 명만 고르라면 아마도 그녀이지 않을까 싶다. 자그마치 1950~60년대가 전성기였으니 세기의 한가운데 활동했음에도 세기를 대표할 정도니 아이콘으로서 마리아 칼라스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엿볼 수 있듯 그녀는 빠르게 내려온 전성기 이후 비극밖에 남지 않은 삶을 살았다. 불같은 성격에서 비롯된 불화, 부정적인 모양새의 사생활 스캔들, 급격히 안 좋아진 목소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말년에 그녀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온갖 약을 마구잡이로 복용했는데, 비록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만 몸에 큰 무리를 불렀고 환영도 보였다.

영화는 그러나 쉬운 선택, 즉 마리아 칼라스라는 희대의 아이콘이 어떤 모습의 롤러코스터 인생을 살았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인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기준으로 과거를 수시로 오가며 현재조차 실제와 환영을 수시로 오간다. 상당히 불친절하고 때때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녀를 진심으로 위한 사람들

 

영화 <마리아>가 보여주려 한 건 의외로 따로 있다. 마리아 칼라스의 화려한 전성기 때 함께한 이들이 아니라 비극적 마지막을 함께한 이들을 조명하려 한 것이다. 아무래도 환영일 게 분명한 리포터 맨드랙스는 그녀와 진솔하게 인터뷰하며 때때로 그녀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라고 닦달한다. 그녀 또한 그가 환영인 걸 아는 듯 자서전을 지으려 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한편 그녀의 대저택에서 기거하며 그녀를 세심하고 극진히 보살피는 집사 페루치오와 가정부 브루나는 영화의 핵심이다. 마리아 칼라스가 화려함을 잃지 않게 보필하면서도 아무한테도 보인 적 없는 그녀의 진짜 모습까지도 편견 없이 돌본다. 그들 덕분에 그녀의 마지막이 그래도 덜 비극적이고 때때로 행복할 수 있었다.

마리아 칼라스는 잘 못 나갈 때 만나 자신을 한껏 도와준 사업가 메네기니와 결혼했지만, 사랑에 솔직했는지 최고의 디바로서 갖춰야 할 모습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는지 선박왕 오나시스와 사랑에 빠진다. 그가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키와 결혼하며 세기의 스캔들로 점철되었기에 비극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녀가 세상을 너무 쉽게 보고 얕본 게 아닐까.

이로써 파블로 라라인의 '하이힐을 신은 여성 전기영화 3부작'이 막을 내렸다. 하나같이 작품성과 연기력이 괜찮았기에 아쉬운 감이 있는데, 그의 다음 전기영화를 기다려 본다. 또 어떤 매력적인 이들의 삶을 재해석하여 우리 앞에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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