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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3402명의 죽음을 불러온 사이버 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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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제로 데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로 데이> 포스터.

 

단 1분간 미국 전역의 전력과 통신이 끊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사이버 테러로 3402명이 부지불식간에 사망한다. 그리고 전 국민의 셀폰으로 '이 일은 또 일어날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전송된다. 전미를 뒤흔든 충격과 공포, 에블린 미첼 대통령은 사태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고자 초헌법적 권한이 부여된 '제로 데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저명한 검사 출신의 전직 대통령 조지 멀린을 위원장에 앉힌다.

멀린은 재임 당시 양당에서 지지를 받았고 재선을 포기하며 정계에서 은퇴한 후에도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제로 데이 위원회를 이끌 인물로 제격이지만 그 자리는 독이 든 성배와 다름 아니었다. 그럼에도 멀린은 받아들였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일을 한다. 그런데 계속 압박을 받으니 초헌법적 권한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러시아의 소행으로 확신한 뒤 수많은 이를 잡아들이고, 멀린을 적대하는 유명 정치 유튜버 에버 그린의 선동에 흔들려 그를 잡아들이기도 한다. 이에 국회는 제로 데이 위원회를 견제하는 감사위원회를 구성해 위원장에 멀린의 딸 알렉산드라 하원의원을 앉힌다. 전 국민이 반으로 쪼개진다. 그런가 하면 멀린 본인은 환청이 들리고 환각이 보이는 등 치매 증상을 보인다. 대혼란의 미국은 어디로 흘러 가는가?

 

사이버 테러와 초헌법적 권한

 

지난 세기와 이번 세기에 걸친 거장 로버트 드니로가 최초로 드라마에 얼굴을 내비친 것만으로도 화제를 뿌리고 나아가 시청할 가치가 충분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로 데이>는 기대에 부응하기에 충분한 만듦새를 선보였다. 제목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을 노려 기술적으로 공격했을 때 아직 패치가 나오지 못해 대응할 시간이 없다'라는 걸 뜻한다.

그야말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대응할 새가 없이 전격적으로 공격하고 공격받은 셈이니, 이후의 대응책으로 영장 없이 체포 가능한 초헌법적 권한을 부여한 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비록 민주주의의 기본권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만큼 긴박하게 위중한 상황이다.

몇십 년 전이 아닌 현대에선 비현실적이라고 코웃음 칠 만한데 진짜 그런가?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포고령 불복종 시 영장 없는 체포, 구금, 압수수색 후 처단'할 수 있다고 했다. <제로 데이> 속 초헌법적 권한의 '제로 데이 위원회'와 겹쳐진다. 문제는 현실이 더 비현실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현실과 픽션의 비상계엄 원인과 성격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사실.

 

현실과 픽션 간 비상계엄 성격과 이유

 

<제로 데이>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누구나 인정하는 명명백백한 이유가 있다. 단 1분의 사이버 테러로 3000명 이상이 죽었고 이후의 삶도 크게 불편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은 어떤가? 종북과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명분이었다. 명명백백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종북과 반국가 세력 따위에게 약탈당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의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제로 데이> 속의 행동 양식은 대통령이 아닌 전국민적 지지를 받는 전 대통령이 위원회의 수장에 앉고 제아무리 초헌법적 권한이 있더라도 국회는 건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실제에선 곧바로 국회에 계엄군이 출동했다. 이밖에도 헌법 및 범령 위반이 명백해 보이는 지점들이 있다. '초헌법'의 범위를 마음대로 상정한 것.

21세기 한복판, 세계적인 선진국 반열의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혼돈의 블랙홀을 만들어, 국가와 국민을 수렁에 빠트리고, 국가의 모든 면을 크게 후퇴하는 짓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망가졌다는 근미래 배경의 대체역사 영화나 소설에 나올 법하다. <제로 데이>를 보며 차라리 위로를 받아야 할까?

 

누가, 왜 사이버 테러를 저질렀는가

 

이제 '누가' 그리고 '왜'가 남아 있다. <제로 데이> 속 끔찍한 사이버 테러를 도대체 누가, 왜 저질렀는가. 러시아 등의 외부 세력? 아니다. 미국 내부 세력? 맞다. 나라가 끔찍하리만치 극단적으로 나뉘어, 국회에선 법안이 통과될 기미가 없고 미디어에선 온갖 극단적 선동가들이 날뛰고 있다. 이 정국을 타개하고자 올바른 목소리 하나를 내세워, 즉 '독재'를 펼쳐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다.

그들이 내세우는 건 정치적 올바름의 제대로 된 쓰임. 그리고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일단 정치 규합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불특정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것. 이런 식으로 가면 세상은 망하고 말 거니까 말이다. 근현대 역사를 처참하게 수놓은 독재자들의 논리가 일치한다. 혼란한 세상을 수습하기 위해선 올바름을 지향하는 본인(들)만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영화 속이든 현실 속이든 이런 일이,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언제고 일어날 수 있고, 당연히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제로 데이 어택을 당해도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는 대응력 그리고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 대응력을 갖추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세상은 살 만하고 망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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