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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그들은 테러의 현장을 생중계하며 정녕 '진실'만을 쫓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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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9월 5일: 위험한 특종>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언론 보도와 관련해 윤리 강령이 존재한다. 진실을 추구하고 사회정의를 지향하며 인간적 연대 속에서 자유를 촉구하고 인간을 존중한다. 공정성, 객관성, 균형, 편견, 개인정보 보호, 공익 등의 단어로 대체할 수 있겠다. 지켜야 할 게 상당히 많거니와 언론 보도 자체가 굉장히 윤리적이다.

생방송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다루고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편집이 들어가지 않는 날것 그대로니까. 그렇다면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생방송으로 보여주는 건 어떨까. 그것도 역사적, 종교적,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얽히고설킨 급박한 상황이라면.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면.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이 방송 역사, 올림픽 역사, 중동 역사를 영원히 바꿔 버린 1972년 9월 5일의 그때, 제20회 뮌헨 올림픽의 비극 '뮌헨 올림픽 참사' 당시를 생중계한 미국 ABC 방송사 스포츠팀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데는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올림픽 도중 선수촌에서 들린 총소리

 

1972년 9월 4일, 뮌헨 올림픽 방송을 위해 파견된 미국 방송사 ABC의 스포츠팀은 신입 프로듀서 제프리에게 다음 날을 맡긴다. 그렇게 시작된 9월 5일 새벽, 선수촌 쪽에서 총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여기저기 확인해 보니 총소리가 맞다. 제프리는 스포츠 사장 룬과 운영 책임자 마빈을 부른다.

룬은 발 빠르게 대처한다. '우리의 이야기'라며 뉴스팀에 넘기지 않고 직접 취재해 방송하기로 결정, 선수촌 내로 한 명을 급파하고 선수촌 근처로도 급파한다. 제프리의 아이디어로 스튜디오 카메라를 옮겨 현장을 생중계하기로 한다. CBS에 연락해 방송 위성 사용 시간대를 조정한다.

알고 보니 선수촌 내 이스라엘 선수, 코칭스태프, 심판 11명을 인질로 잡은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에 구금 중인 팔레스타인 포로 234명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을 ABC 스포츠팀이 유일무이하게 생방송으로 송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름 아닌 검은 9월단도 이 방송을 보고 있다는 확인된 소식이 들리고 이어서 인질들이 모두 살아 나왔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식이 들리는데… 

 

테러의 현장을 생중계한다는 것

 

뮌헨 올림픽 참사는 현대적인 테러리즘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바 그 중요성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로부터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심지어 전쟁으로까지 비화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의 반목과 테러와 전쟁의 뿌리는 더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1972년 9월 5일이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여 그동안 무수히 많이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참사가 다뤄졌는데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 같은 식으로는 처음인 것 같다. 거의 모두 급박한 당시와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작전, 그리고 그들의 반목을 역사적으로 들여다보며 해석하려 했던 반면 이 작품은 바로 그 '급박한 당시'를 생중계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객관적으로.

스포츠팀이 마치 경기를 생중계하듯 급박한 현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니, 신선하다. 수많은 이를 TV 앞으로 불러와 눈을 뗄 수 없게 할 것이다. 문제는 그 '수많은 이'에 테러리스트들도 속해 있다는 것. 자칫 인질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런데 인질들이 모두 무사히 석방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누구보다 빠르게 알려야 하는데 확실하지 않다. 모두 무사한지 아닌지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실 vs. 진실로 얻어지는 부가가치

 

언론 보도 윤리 강령을 다시 들여다본다. 진실, 사회정의, 연대, 자유, 인간존중… ABC 스포츠팀의 테러 현장 생중계는 '진실'만 천착했다. 그러면 될 줄 알았다. 언론인으로서 진실 말고 쫓을 게 있나 싶었다. 나머지는 애초에 그들의 영역이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은 진실을 추구했는가? 순수하게?

'진실' 자체가 너무 알고 싶어 쫓는 것과 '진실을 쫓는 행위'로 얻어지는 부가가치를 욕망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공통적으로 진실을 쫓지만 이후를 생각하느냐 아니냐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위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극 중에서 운영 책임자 마빈이 진실을 쫓는 쪽이라면 사장 룬은 진실을 쫓아 뭔가를 얻고 싶어 하는 쪽이다. 프로듀서 제프리는 어느 쪽일까? 눈에 띄고 성공하고 싶다면 후자 쪽을 지향해야 한다는 건 불 보듯 뻔할 텐데 말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이라 잘 알려져 있는데 뮌헨 올림픽 참사는 테러리스트들 모두 체포, 사살되었지만 경찰 한 명과 인질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으로 끝났다. 서독 경찰의 진압 작전 실패가 결정적인 요인, 하지만 ABC 스포츠팀의 생중계가 일말의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9억 명에 달하는 시청자들의 알 권리는 보장되었지만, 11명 인질의 살 권리는 보장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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