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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이상한 여자'라는 소문이 난 그녀는 정말 '이상한 여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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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

 

영화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 포스터. ⓒ ㈜플레이그램, 태양미디어그룹

 

대학로의 작은 극단 드림시어터컴퍼니에서 신입 단원을 뽑는다. 연출, 프로듀서, 최고참 배우가 함께 면접을 본다. 가지각색의 후보생들 가운데 한 명이 도드라진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출신의 혜리, 한국 최고의 대학교 출신인 것도 눈에 띄지만 극단에 지원한 계기가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라니.

재미없어지면 그만두겠다고 해도 뽑지 않을 이유는 없다. 몇몇 신입과 함께 극단 생활을 시작한 혜리, 톡톡 튀는 듯 맑은 듯 독특함을 이어간다. 연출 해영은 그녀의 독특함에 영감을 받고 프로듀서는 그녀의 독특함이 거슬리며 후원회장 형석은 그녀의 독특함에 끌린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지만 말이다.

한편 혜리는 극단 바깥에서 우연히 극단 선배 은정을 만나 예술, 극단, 배우 생활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눈다. 회식 때마다 담배를 피우는 혜리를 쫓아 나와 일방적으로 대화를 거는 형석과 대조적이다. 그런가 하면 해영은 각본 작업으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지만 생각만 많아질 뿐 써지질 않아 힘들다.

 

'이상한 여자'라는 페르소나

 

영화감독, 영화배우, 연극 제작자, 연극배우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해 온 정형석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영화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가 최초 공개 이후 2년 만에 정식 극장 개봉을 통해 우리를 찾아왔다. 작은 극단에서의 일을 다루고 있어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시적인 이야기는 만들기 힘든 만큼 언제나 괜찮다.

제목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는데, '페르소나'와 '이상한 여자'가 제목과 부제로 있으니 이질적이다. 일단 '이상한 여자'는 주인공 혜리를 가리키는 말이겠다. 그녀가 스스로를 이상하다고 여길지는 알 수 없으나 외부에선 그녀를 이상하다고 여기니까. 그런데 '페르소나'는 생뚱맞은 느낌이다. 얼핏 알기 힘들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의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 벗었다 하는 가면을 말하는데, 보통 실제와는 다를지 모르나 타인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말하고 영화계에선 감독이 자신의 분심처럼 생각하는 배우를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생뚱맞은 게 아니라 매우 적절하다 할 것이다. '이상한 여자'가 혜리의 진면목 아닌 페르소나일 테니까.

 

극단 안의 페르소나와 극단 밖의 진면목

 

혜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가. 재미로 극단에 들어왔고 연출 방향에 의견을 제시할 줄도 알며 회식 자리에서 내키지 않으면 술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구는 '역시 서울대생이네'라며 추켜 세우고 누구는 '서울대생이라고 그런 거야?'라며 괜히 깎아내린다. 그럼에도 그녀는 할 일을 성실하게 해내려 한다.

한편 그녀는 극단 밖에서 자못 편안해 보인다. 산책 중에 우연히 만난 극단 선배와 대화를 나눌 때나 역시 우연히 만난 외국인 친구 올레나와 대화를 나눌 때 보면 극단에서와 달라 보인다. 서로의 신상을 모른 채 또는 묻지 않은 채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때문일까? 즉 가면을 쓴 채가 아니라 진면목에 가까운 민낯으로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러니하게 극단 안의 그녀가 페르소나, 극단 밖의 그녀가 실제에 가까울 것이다. 왜 아이러니하는가 하면, 극단 생활이 보다 목적적으로 삶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더 오랜 시간 생활하니 이왕이면 더 편안했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한다. 내가 진면목을 내보이기 전에 이미 상대가 색안경을 쓴 채 나를 바라보고 나는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

 

자유와 예술을 진심으로 대하면

 

혜리는 비록 독특한 면이 있어도 상서롭지 못한 소문이 돌 만큼의 '이상한 여자'는 아니다. 그녀를 시기 질투하고 아니꼽게 바라보는 이들은 본인이 그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의 틀에 박혀 변화를 모색하지 못하니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둔다. 그러니 혜리처럼 이른바 튀는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본질에 관심을 갖되 현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이라면 그녀의 페르소나 아닌 진면목에서 많은 영감을 받을 것이다. 그녀는 진정 '자유'를 꿈꾸며 '예술'에 대해 진심 어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극단에서 보이는 그녀의 독특한 행동과 말은 그녀의 진면목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어느 누가 진심으로 자유와 예술을 꿈꾸겠는가.

영화는 혜리의 페르소나와 진면목을 오가는 와중에도 해영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 연극협회장을 두고 벌이는 암투와 밀회와 협력의 모습 등을 간간이 비춘다. 모두 페르소나와 진면목을 오가는데, 해영의 경우 앞과 뒤가 똑같지만 타인이 보면 꽉 막혀 보이고 협회장을 두고 벌이는 일들을 보면 온갖 페르소나들이 난무하는 집합소 같다.

누구나 진면목보다 페르소나로 타인을 마주한다. 그러다 보면 진짜 나는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리기도 하는데, 가짜 나도 진짜 나도 모두 '나'라는 걸 알면 별 문제가 없을 줄 안다. 고이지 않고 변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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