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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구조조정'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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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해야 할 일>

 

영화 <해야 할 일> 포스터. ⓒ명필름

 

2016년 어느 항구 도시의 한양중공업, 강준희 대리는 인사팀으로 발령 난다. 그는 행복해 보인다. 아이도 생겼고 회사 대출을 받아 집도 마련했으며 곧 결혼할 예정이다. 능력도 인정받았으니 인사팀으로 발령이 난 것일 테고 말이다. 그런데 인사팀으로 오자마자 그가 해야 할 일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회사가 채권단의 압박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강 대리는 팀장 정규훈 부장의 지시에 따라 사수 이동우 차장과 함께 150명의 정리해고자 기준을 정하려 주말에도 출근해 밤낮없이 일한다. 마침내 최상의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고, 근로자 측 대표자들을 뽑는 한편 희망퇴직을 받아 그들에게 먼저 제안하기로 한다. 하지만 회사 측은 이미 정리해고자를 마련해 뒀고 뒤늦게 인사팀에 전달한다. 황당하고 당황스럽지만 따라야 한다.

이제 강 대리는 이 차장, 정 부장과 함께 회사가 나가길 바라는 이들이 정리해고자가 될 수 있게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강 대리의 경우 직전 부서의 상사와 선배 중 한 명을 내보내는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인사팀 전원이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안면몰수하고 해야 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모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구조조정 앞에 조성될 이성과 감정의 난장판

 

개인적으로 작은 회사만 다녀봐서 그런지 '구조조정'의 칼날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한 적이 없다. 그저 뉴스, 책,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접해 봤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를 감독의 의도보다도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박홍준 감독은 조선사 인사팀에서 몇 년간 재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다고 한다. 하여 사실적이면서도 디테일하다.

영화 <해야 할 일>은 독립영화이자 노동영화다. 상당히 마이너하다는 말이다. 선입견이 발동되는데, 척박하고 치열한 노동 현실을 다분히 작가주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을 게 분명해 보인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 색다르다. 구조조정이 시작되는 회사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사 측을 대표하는 인사팀 직원이다. 거의 접해 보지 못한 고민을 엿볼 수 있겠다 싶다.

강 대리에게 부과되는 괴로움의 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구조조정을 시행해야 하는 입장도 난감한데, 애써 만든 합리적인 방안은 폐기 처분되고 사 측이 제시하는 불합리적이고 불법적이기까지 한 방안을 따라야 하는 것도 모자라, 회사에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이를 잘라내야 한다니 이쯤 되면 더 이상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반면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다양하다. 청춘을 오롯이 바쳐 일했다며 자신이 뭘 잘못했다고 쫓겨나야 하는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동자, 후배들에게 양보해야 할 때라는 말에 수긍하고 자진 퇴직하는 노동자, 언제 또 구조조정이 시작될지 모르니 불안에 떨며 지내느니 위로금 준다고 할 때 나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노동자 등이다. 그들은 감정을 앞세우는 편이다. 그러니 이 회사의 구조조정 앞에는 이성과 감정이 뒤섞이는 난장판이 조성될 예정이다.

 

결국 노동자들끼리의 싸움, 그럼에도 해야 할 일

 

영화는 인사팀으로 대변되는 사 측과 노동자 측을 균형감 있게 그려내려 했다. 어느 한쪽을 소위 '나쁜 놈'으로 만들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사 측은, 아니 인사팀은 기존 구성원들을 내보내는 구조조정 이후 신입이 들어와야 수십 년 계속되는 회사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하고 대다수 노동자 측은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이 없다.

물론 이런 시선은 감내해야 할 게 많다. 어렵고 험난한 방향이기도 하다. 아무리 중도의 파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선명성을 제일로 친다. 어느 쪽인지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좋게 말해 균형감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책임 또는 갈등 회피라고 폄하당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방향성에 동감한다. 좀 더 거시적으로 봐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 인사팀은 사 측을 '대리'할 뿐 '대변'하지 못하고 또 안 하려 한다는 점에서 결국 입장이 다를 뿐인 노동자들끼리의 싸움이다. 위에선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이니 말이다. 

보다 영화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내가 강 대리의 입장이라고 생각했을 때 너무나도 난감하고 괴로울 것 같다. 혹자는 인사팀 직원으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뭐가 힘드냐고 말할 수 있겠으나, 가면 갈수록 해야 할 일의 성격과 방향이 사 측 아닌 한 명의 직원으로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고 차마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리기에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이 쪽팔리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저분들의 가족 생계까지 걸려 있는 일자리를 빼앗는지' 의문도 생기는 것이다.

영화는 '구조조정'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들의 이야기에서 중국엔 해야 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결국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밖에 없고 팀은 팀이 해야 할 일을 할 수밖에 없으며 회사는 회사가 해야 할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따로 또 같이 치열하게 이해관계를 따지며 이성과 감정들이 부딪히는 와중에 각자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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