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잠자리 구하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살면서 태반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많은 걸 다 기억하고 있다면 미쳐버릴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고 또 이왕이면 기억했으면 하는 행복한 순간들도 있다. 나쁜 기억들도 당연히 태반이 기억에서 사라질 텐데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는 순간들도 있을 테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기록이다. 글, 사진, 영상 등으로 그 순간을 남기는 행위다.
물론 기록을 남기는 게 항상 기억에 도움을 주진 않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기억을 취사 선택하는 것처럼 기록은 그 자체로 이미 취사 선택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떠올리게 도와줄 뿐 기록에 의존해 기록이 곧 기억인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될 테다. 기억은 조작'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기록은 조작'된'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잠자리 구하기>는 기억이 아닌 기록이 주다. 아니 거의 모든 것이다. 감독이자 주 화자이기도 한 홍다예가 고등학교 시절의 학교, 교실, 거리, 집에서 친구들과 또는 혼자 있는 때를 찍었다. 성적이 전부여야 했던 시절, 대학 진학이 모든 것이었던 시절, 대학만 들어가면 모든 게 끝날 것 같던 시절의 이야기.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인생은 계속된다.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인생은 계속된다
작품의 감독이자 주인공 홍다예의 초등학교 시절 꿈은 사회복지사, 중학교 시절 꿈은 국제 NGO 활동가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진학하려는 대학교와 과는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타인을 도와주는 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할까. 이 작품의 초반부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배경으로 입시 비판임이 분명한데 그 또한 타인을 도와주는 일의 일환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렇다면 제목이 이해가 간다.
'잠자리 구하기'라는 제목, 잠을 청하는 곳이 아니라 곤충 잠자리 말이다. 날개가 찢긴 듯 물에 빠져 허우적 대는 잠자리, 홍다예가 구하려는 잠자리의 모습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그렇게 발현시키려 한다. 하지만 꿈을 이루는 건 요원하다. 서울대학교뿐만 아니라 지원한 모든 대학에서 떨어졌고 재수를 해야 했다. 그녀는 하기 싫었으나 부모님은 1년을 더 투자해 보라고 했다.
힘겨운 입시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그녀는 급격히 지쳐갔다. 재수 생활 동안 우울증에 걸렸고 죽음을 생각했다.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 그녀가 죽음을 생각하는 게 너무 쉽고 하찮게 보였다.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구해야 할 터였다. 결국 그녀는 인류학과가 아닌 한국종합예술학교에 진학해 영상업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런 와중에 고등학교 시절 친구, 재수 시절 친구, 그리고 사회인이 된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아 왔다. 그들 중 가장 친한 친구와 멀어지기도 했는데, 그녀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자신의 가치를 찾다가 또 친구에게 하소연하며 관계의 가치를 찾다가 오래지 않아 그녀가 지쳐버린 것이다.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녀를 휘몰아쳤던 걸까.
성장하지 못하는 기록에서 끄집어내는 감정의 기억
작품을 보면 온갖 욕이 가감 없이 나온다. 욕이야 안 해 본 사람 없고 안 할 사람 없을 만큼 삶에 밀접하니 만큼 그 자체로 큰 의미를 띠진 않지만, 이 작품에선 나름의 의미를 띨 수 있다. 감독이 과거의 기록을 들여다보며 굳이 감정의 기억을 꺼내든 것이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가 싶다. 기록과 기억을 이어주는 감정의 진실.
주지했다시피 작품은 청소년기의 막바지에서 시작해 청년기가 한창인 시절까지 10년 가까이의 시간을 다룬다. 그녀 그리고 그녀들의 변화를 지켜보면 참담하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변할 거라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당연히 나이가 먹으며 청년이 되어 몸은 변했지만 정신은 여전히 청소년이었다.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 작품이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세계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손꼽히는 야마가타 국제 다큐 영화제를 위시로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들에 초청되어 큰 호평을 받은 건 작품이 보여주려는 바에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기록에서 감정의 기억을 끄집어내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있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텐데, 그 시절을 이렇게 보여준 이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오묘한 감정이다. 나이를 더 먹으면서 겪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에 파묻히다 보면 그 시절을 새카맣게 잊기 마련인데, 또 기억나도 무시하기 마련인데 작품을 보니 그 시절이 그 시절로만 보이지 않는다. 한순간 그 시절로 돌아갔다 오니, 여전히 나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것 같고 지금도 성장하는 게 맞나 싶어 주저한다.
하여 그 시절의 나를 응원할 순 없으니 지금 그 시절을 겪고 있는 이들을 응원한다. 모든 게 다 잘될 거라고 말할 순 없으나 지금 그 자리에 머무르진 않을 거라고 말이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변하진 않을 거지만 충분히 선택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정말 다채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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