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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간, 새로운 체제로 가는 길목의 혼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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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미래의 범죄들>

 

영화 <미래의 범죄들> 포스터. ⓒ누리픽쳐스

 

스스로를 행위예술가라 칭하는 사울 텐서는 외과의사 출신의 파트너 카프리스와 함께 자신의 몸을 이용해 공연을 한다. 그런데 그 행위예술이란 것이, 공연이라는 것이 가히 충격적이다. 카프리스가 사울의 배를 가르고 장기를 꺼내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쇼였으니 말이다. 사울이 알 수 없는 장기가 수시로 생겨나는 가속 진화 증후군을 앓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울과 카프리스는 사울의 장기를 등록하고자 국립장기등록소를 찾는다. 위펫과 팀린 단 둘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장기를 등록하고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그들은 곧 사울의 새로운 장기들을 보고 반해 버린다. 따로 또 같이 사울과 접촉하며 불법적인 대회를 직접 주최하기도 하고 사울의 쇼의 극렬 팬이 되기도 한다.

한편 사울에게 신종범죄수사대 코프 형사가 찾아와선 사울을 통해 독성 플라스틱을 먹는 미치광이 집단을 감시하고 통제하려 한다. 그들의 행위, 즉 비인간적인 행위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이유다. 그런가 하면 바로 그 미치광이 집단을 이끄는 랭 도트리스가 사울에게 접근해 그의 쇼를 통해 자신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진화를 설파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특수한 몸으로 행위예술을 펼칠 뿐인 사울에게 온갖 이들이 접근해 이용해 먹으려는 형국이다. 사울은 단지 자신을 죽이는 자신의 몸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할 뿐인데 말이다.

 

순수한 예술, 그리고 정치적 세력들

 

이른바 '바디 호러(기괴하게 변형된 인간의 신체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공포의 하위 장르)'의 창시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이 8년 만에 돌아왔거니와 바디 호러 장르로는 자그마치 23년 만이라고 하여 큰 화제를 뿌린 영화 <미래의 범죄들>이 현지 개봉 2년 만에 국내에 상륙했다. 안 그래도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가 코로나 시국에 제작되었으니 곧바로 수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식으로 볼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면 행운이겠다.

영화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바디 호러 작품답게 기괴하기 짝이 없다. 엽기적이거니와 역겹기까지 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감독이 다분히 의도했을 테니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영화 속 근미래의 배경에는 새로운 장기가 생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증을 못 느끼거나 통증을 흥분의 요소로 느낄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으며 급기야 플라스틱을 먹는 사람도 출몰한다.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기형 인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한 것이다.

와중에 사울 텐서와 카프리스는 순수한 의도로 예술을 펼친다. 시대의 변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특수한 몸을 이용해 사람들이 환호하고 또 흥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려 한다. 그의 순수함이 가닿은 이들 중에 다름 아닌 국립장기등록소의 위펫과 팀린이 있는데, 그들은 사울의 몸 아니 장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말이다. 국가에 속한 공무원으로서 해선 안 되는 생각이자 일이니까.

그런가 하면 사울에게 접근하는 정치적 세력들이 있다. 인간의 진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인간을 플라스틱을 먹을 수 있는 몸으로 만들려는 의문의 집단이 접근하는가 하면, 이른바 플라스틱 종자를 감시하는 신규범죄수대도 접근한다. 두 집단은 서로를 대척점에 두고 사울을 이용해 한 발 빠르게 원하는 바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간, 새로운 체제로 가는 길목에서 사울의 쇼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게 없으니 말이다. 그런 한편 사울의 쇼는 다분히 예술적인 목적을 띄지만 다분히 정치적이다.

 

인간의 진화 vs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

 

그렇다, <미래의 범죄들>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바디 호러'라는 외피를 벗겨내고 제목부터 훑어 내려가면 굉장한 영화로 거듭난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자못 끔찍할 뿐 메시지 자체는 철학, 과학, 역사, 정치 등을 버무린 초호화 고급이다. 하여 메시지부터 접근하면 끔찍한 것들이 우아해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 속 사울과 카프리스가 말하는 '행위예술'이 그 자체로 와닿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기분이 이상해지고 묘해지는 경험을 할지 모른다. 

영화가 상상하는 '미래의 범죄들'은 급속도로 변하는 인체를 두고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시도하는 모든 행위다. 새롭게 생겨나는 장기를 등록하지 않으면 범죄이고 고통을 못 느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며 흥분하려 하면 범죄이며 소화기관이 변해 보통 사람들에겐 독인 플라스틱 바를 만들어 먹어도 범죄다. 급격하게 변하는 신체를 자신이 직접 통제하고 관리하려 할 뿐이지만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행위라면 범죄로 취급받는 것이다. 그러니 사울이 '예술'이라며 자신의 장기를 훼손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한편 굳이 장기등록소에 가서 새로운 장기를 등록하려는 것도 이해가 간다. 

국가는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을 범죄자 취급한다. '인간의 범주' 운운하지만 실상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국가'가 발악하는 것처럼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이젠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반면 사울과 카프리스는 순수 예술로 승화시켰고, 위펫과 팀린은 국가 소속으로서의 관리와 통제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예술 광적인 모습을 오가고 있으며, 랭이야말로 새롭게 도래하는 시대를 최전선에서 이끌고자 하는 야망이 있다.

결국 외면만 달라질 뿐 미래도 현재, 과거와 별다를 바가 없다. 모든 게 너무나도 빨리 바뀌는가 싶다가도, 터무니없이 빨리 사라지는가 하면, 대립하고 소통하고 암약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인간 세상이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누군가는 인간의 진화라고 보고 누군가는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본다. 그런가 하면 이리도 복잡다단하면서도 체계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이 이 세상에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덧 80대에 들어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차기작을 손 뽑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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