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이매큘레이트>
어렸을 적 죽음의 문턱에서 7일 동안이나 사경을 헤매다가 살아 돌아온 경험이 있는 세실리아, 그녀는 커서 수녀가 된다.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수녀원이 신도원 수 급감으로 문을 닫자 테데스키 신부의 소개로 이탈리아까지 온다. 순수한 믿음을 가진 그녀, 하지만 이탈리아의 수도원은 분위기가 수상쩍기 이를 데 없다. 순수한 믿음만으로는 잘 지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세실리아는 정결, 청빈, 순종 서약으로 이뤄진 서원식을 받고 진정한 수녀로 거듭난다. 그렇게 수도원 생활에 적응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오바이트로 의사에게 검진을 받았더니 임신이라는 게 아닌가. 수녀로서 당연히 정결했는데, 이곳에 오기 전에도 성교를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임심을 했는지? 그러자 추기경, 신부, 원장 수녀 할 것 없이 기적이라며 그녀를 성녀로 추앙한다.
수녀로서 임신한 것도 이상하기만 한 일인데 이후 그녀는 임신 후 이빨과 손톱이 빠지고 주위에서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단순히 임신에 따른 특이 증상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임신했어야 한다고 외치던 이사벨 수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편 절친으로 거듭난 그웬 수녀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선동하려다가 잡혀간다. 이후 세실리아는 수도원의 비밀을 하나둘 캐기 시작하는데…
전형적인 수녀 공포물이어서
일명 '수녀 공포물'은 꾸준히 우리를 찾아온다. 오랫동안 깊숙이 감춰졌던 수녀원의 추악한 비밀에서 촉발된 처연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편이다. 기분 나쁜 으스스함이 분위기를 형성한다. 영화 <이매큘레이트>도 비슷한 결이다. 제목은 'Immaculate'의 음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순결하고 흠결 없다는 뜻인 한편 가톨릭에선 무원죄 잉태를 의미한다.
다만 마리아의 예수 잉태가 아니라 마리아 자신의 잉태를 일컫는다. 하지만 영화에선 마리아의 예수 잉태로 전환시킨 게 분명하다. 문제는 무원죄, 즉 성관계 또는 그에 상응하는 기술 없이 아기를 잉태했다는 사실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그래서 불길하고 불안하고 불쾌하다. 급기야 세실리아는 자신의 뱃속에 있는 아기가 절대로 자신의 아기일 수 없다고 말한다. 악마라고 된다는 말일까?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눌 수 있다. 비밀에 싸인 으스스한 수녀원에 와서 적응해 나가는 세실리아, 어느 날 갑자기 잉태해서 기적의 성녀로 추앙받는 세실리아, 충격적 비밀을 알아채고 탈출하고자 자신을 놔버리는 세실리아. 굉장히 전형적이다. 몰랐다가 알게 되고, 아무것도 아니었다가 뭔가가 되고, 들어오고 싶었다가 나가려 하고, 하지 않았다가 하게 되고.
전형성이 다분하기에, 특별함을 찾기 힘들고 공포영화로서도 더위를 날릴 만한 짜릿함을 찾기 힘들며 머리를 띵하게 하는 엄청난 반전도 찾기 힘들다. 그런가 하면 오히려 전형성이 다분하기에, 나름 긴장을 풀고 자못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 비록 스토리에선 구멍들이 보이지만 미술이나 음악 등으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악랄한 선택의 순간들
수녀원 하니 가톨릭을 떠올릴 테고 종교적으로 추악한 비밀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지만, 영화는 종교를 분위기를 만드는 수단 정도로만 사용했다. 진정 추악한 건 다름 아닌 '인간'으로, 종교라는 이름하에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 한다. 추악한 비밀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니 '수녀원'의 추악한 비밀이 아니라 수녀원 '사람들'의 추악한 비밀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영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는데, 자세히 말할 수 없는 세실리아의 수녀원 탈출 과정이다. 물론 그녀는 추악한 비밀을 보고야 말았고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꼭 그런 선택을 했어야 했는가 하면 마땅한 답을 찾기 힘들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한 짓과 하려는 짓도 그렇지만 그녀가 그들에게 한 짓도 용서받기 힘드니 말이다.
인간이라는 게 참으로 얄팍하다. 물론 삶의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기에 올바르거나 올바르지 않거나, 당장을 위한 것이거나 눈앞의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과거의 망령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거나 앞으로 나아가려거나 할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구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잘못된 선택들 혹은 잘한 선택들은 계속 쌓여 결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여 세실리아가 안타깝다. 그녀에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악랄한 선택의 순간들이 마냥 그녀의 것, 남의 것이 아닌 것 같아 치가 떨리기도 한다. 그녀는, 아니 우리는 왜 치명적인 일들을 끊임없이 겪어야 하는가? 왜 삶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가? 태초의 원죄 때문에?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해서? 그래서 누군가는 종교에 귀의해 신에 죄를 사하여 줄 것을 빌고 누군가는 과학에 매진해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의 파훼법을 찾는다. 둘 다 아니라면 인문학을 공부하며 세계와 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 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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