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공포영화 <컨저링>
1970년대는 공포영화의 전성기였다. 당시 나온 <악마의 씨>(1968년), <엑소시스트>(1973년), <오멘>(1976년) 등은 4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 변하지 않는 힘을 과시하고 있다. 이 공포영화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오컬트' 영화라는 것이다. 오컬트란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적·초자연적 현상이나 지식을 말한다. 오컬트에 깊이 빠지면 악마 숭배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오컬트 영화에는 흔히 악마가 출현한다.
오컬트 영화에서의 악마는 판타지틱한 면모가 거의 없다. 누군가는 오컬트 자체를 판타지, 즉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천사와 악마가 나와서 우주의 운명을 걸고 싸우거나 하지 않는다. 오컬트 영화가 실제로 있을 법한 또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섬뜩함을 안겨준다.
<컨저링> ⓒ워너 브라더스
공포영화의 원류를 되살리다
공포영화는 1980년대에 들어서 하드코어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13일의 금요일>(1981년), <나이트메어>(1984년)을 필두로, 살인마가 나와 마구잡이로 잡아 죽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화끈하고 뒤끝없는 하드코어가 점차 대세로 자리잡아 갔다. 반면 뭔가 껄적지근한 뒷맛을 남기는 오컬트는 파이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는 TV가 보급되면서 시각적인 자극에 적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올해 여름, 쏘우 시리즈로 유명한 '제임스 완' 감독이 <컨저링>으로 공포영화의 원류인 1970년대 오컬트를 완벽히 되살려냈다. 영화 배경 또한 이에 맞게 1971년.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로드아일랜드의 해리스빌. 딸 넷과 아들 하나를 둔 페론 부부는 꿈에 그리던 새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 기쁨도 잠시 첫 날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컨저링>의 한 장면 ⓒ워너 브라더스
기르고 있는 강아지는 끌고 들어오려 해도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다가 다음날 영문 모를 이유로 죽고 만다. 집안의 모든 시계가 3시 7분에서 멈춰있는 기이한 현상이 계속되기도 한다. 한편, 아이들이 놀다가 우연히 찾게 된 지하실은 그 자체로 공포심을 자극한다. 하룻밤을 보내자 기이한 일은 더욱 증가한다. 간밤에 딸아이 하나의 몽유병이 재발하고, 다른 딸아이 하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다리가 끌어당겨지기도 한다. 또한 아내의 다리에 영문모를 멍이 들어 있다. 죽은 강아지에 이어 죽은 비둘기가 발견된다. 갑자기 날아와 창문에 부딪혀 죽고 만 것이다. 아직까지는 별 일 아닌 듯 지나간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같은 현상들이 더욱 심하게 되풀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자리를 비우고 아이들 넷을 학교로 보낸 후 아내는 알 수 없는 소리들에 이끌려 지하실을 살펴보다가 갇히게 되고 만다. 아무도 없는데 문이 저절로 닫히고 어디선가 공이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페론 가족은 형용할 수 없는 공포심에 초자연 현상 전문가 워렌 부부를 찾아가 부탁한다.
집에 방문하게 된 워렌 부부. 하지만 알 수 없는 현상들은 그들과 상관없이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워렌 부부는 이를 악령의 소행이라 판단하고 행동에 옮긴다. 집안을 샅샅이 감시하고 그 실체를 찾아내 엑소시즘(퇴마)을 행하기로 한 것이다. 과연 그들은 이 증오로 가득찬 악령을 퇴치할 수 있을까? 그 집에 숨겨진 지독한 비밀은 무엇일까? 엄마와 자식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악령들로부터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렇듯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아니, 세 파트라고 할 수 있겠다. 페론 가족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워렌 부부의 정체를 설명하는 간단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먼저 페론 가족이 이사를 와서 겪게 되는 괴기스러운 경험들, 그리고 워렌 부부와 일행이 찾아와서 겪게 되는 경험들.
<컨저링>의 한 장면 ⓒ워너 브라더스
이 영화가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이유
영화는 워렌 부부가 방문을 하고 나서부터 공포의 원인과 실체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즉,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무서운 장면들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전반부 페론 가족의 체험이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이렇게 전반부와 후반부의 오묘한 결합으로 공포는 극에 다다른다.
이 영화에서 공포는 어떻게 다가올까? 1980년대 이후 영화는 영상으로 엄청난 진보를 이룩한다. 주지했듯이 공포영화도 그 진보에 편입했고 시각적인 것에 치중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2010년대를 사는 우리들은 시각적인 공포에 너무 익숙해져 있게 되었다. 깜짝깜짝 놀라고, 진저리를 치고, 눈을 찌뿌리게 하는 공포영화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다 보니 적응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컨저링>은 포스터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시각적 자극으로 공포를 유발하는' 무서운 장면이 없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소리와 움직임과 더불어 고답스럽지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이 심장을 쫄깃하게 하고 머리털을 곤두서게 한다. 후반부에서 그 실체가 밝혀졌을 때도 공포스럽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실체가 밝혀지기 전의 앞날을 알 수 없을 당시의 상황이 훨씬 더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컨저링>의 한 장면 ⓒ워너 브라더스
시대를 반영하는 공포
모든 인기있는 콘텐츠가 그렇듯이, 영화도 시대를 최소한 어느 정도는 반영한다. 얼마전 일본을 넘어 한국까지 이레적인 돌풍을 일으켰던 애니매이션 <진격의 거인>이 대표적일 것이다. 또한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콘텐츠도 여지없이 인기를 끈다. 얼마전 개봉한 한국 영화 <숨바꼭질>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컨저링>의 경우는 어떨까? 공포영화로는 이례적인 인기를 끌며 1999년작 <식스센스>의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그건 주지했던 '앞날을 알 수 없는 공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자연스레 시대를 반영하고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물론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작금 시대는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한다.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도 예민해져 있어 조그마한 충격에도 휘청거린다. 그뿐이랴? 우리나라는 60년 넘게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보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존의 너무나도 화려하고 난잡하게 피가 튀기는 공포영화보다 이 영화가 훨씬 더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이는 마음에 더 와닿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만큼 깊숙이 와닿은 진정한 공포였다.
이처럼 이 영화는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그것도 집에서 일어난), 앞날을 알 수 없는 공포에 기반한 공포영화이다. 새삼 감독의 연출력이나 각본의 탄탄함, 연기자들의 연기력, 카메라 워킹의 탁월함을 따져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 모든 걸 잊게 할 극도의 공포가 시종일관 휘감을 테니까. 이건 어느 누군가의 공포가 아니다. 언젠가 자신이 체험하게 될 공포가 될 수도 있다. 이 영화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것일 수 있다.
'신작 열전 > 신작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바웃 타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 (14) | 2013.12.31 |
---|---|
<우리 선희> 공감가다 못해 소름끼치는 장면들의 연속 (13) | 2013.12.27 |
<슈퍼피쉬> 끝없는 여정의 종착지는 어디? (4) | 2013.09.27 |
<관상>, 실없는 웃음과 예정된 비극의 종착점 (8) | 2013.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