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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피노체트는 희대의 살육자 아닌 하찮은 도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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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공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공작> 포스터.

 

금으로부터 50년 전, 1973년 9월 11일 남미 칠레에 큰일이 있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육군 총사령관이 이끄는 군대가 산티아고의 대통령궁을 습격했다. 즉 쿠데타를 일으킨 것인데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의 전복이 목표였다. 칠레 역사상 첫 사회주의자 대통령으로 급진적인 개혁을 성공적으로 실행해 나가고 있던 중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이다. 피노체트는 미국에 넘어갔고 말이다. 결국 아옌데는 자살하고 피노체트는 이듬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대통령이 된 피노체트는 칠레 역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폭압적인 탄압을 이어간다. 그 때문에 100만 명 이상이 해외로 도피했고 10만 명 이상이 연행되었고 3만 명 이상이 해외로 추방당했으며 4만 명 이상이 불법 구금되어 가혹행위를 당했고 3천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그런 한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들여왔다. 그야말로 나라를 송두리째 바꿔 버린 것. 칠레 역사에 둘도 없는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피노체트다.

당연하게도 피노체트는 그동안 수많은 콘텐츠에 단골손님으로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쿠데타 5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공작>이 그 작품으로 칠레가 자랑스럽게 내놓는 차세대 거장 '파블로 라라인'의 신작이다. 그는 전기 영화 <네루다> <재키> <스펜서> 등으로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쳤다. 이번에도 역사에 길이남을 유명 인물이 주인공이다.

 

죽고 싶다는 뱀파이어는 왜 다시 사냥에 나섰나

 

250년 전 프랑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간 클로드 피노슈는 루이 16세의 장교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걸 깨닫는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해치고 신분을 숨긴 채 프랑스 대혁명을 맞는다. 이후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하지만 일생을 반혁명에 투신할 것을 결심한다. 시간이 흘러 남미의 칠레에 나타나 이름을 바꾸고 장군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된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가짜 장례식을 거쳐 아무도 알지 못할 곳에서 아내와 살고 있다.

피노체트는 진심으로 죽고 싶다. 그에게 덧씌워진 불명예를 더 이상 참아내기 힘들다. 하지만 불멸의 뱀파이어니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뱀파이어가 신선한 피를 찾아 사냥을 나갔다고 한다. 누가 봐도 피노체트가 아닌가? 아내도 깜짝 놀라 바람 피우고 있는 집사에게 조언을 구한다. 남편이 죽으면 돈도 전부 아내 것이고 또 맘 편히 집사와 사랑할 수 있지 않나. 남편은 도대체 왜?

그런가 하면 피노체트의 5남매가 일제히 부모를 찾아온다. 아버지는 도대체 왜 다시 사냥을 나간 걸까? 돌아가시지 않으면 자신들에게로 돌아올 유산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은 힘을 모아 일을 꾸민다. 회계사로 변장한 퇴마사 수녀를 몰래 데려와 아버지에게 덧씌워졌다고 믿는 악마를 퇴치하고자 한 것이다. 과연 피노체트와 그에게 몰려드는 이들의 앞날은?

 

막장 가족극 형태의 블랙 코미디

 

영화는 현재를 배경으로 한 흑백의 블랙 코미디다. 외형은 막장 가족극 형태인 바, 뱀파이어이기에 영원히 살 수 있지만 죽을 거라고 천명한 아버지 피노체트가 왜 다시 사냥을 시작해 불멸을 이어가는지 불만에 가득 찬 인간 자식들이 몰려들어 벌어지는 이야기다. 와중에 인간 부인과 뱀파이어 집사가 나오고 자식들이 초청한 퇴마사 수녀도 나온다. 그들은 다시 얽히고설켜 종잡을 수 없다.

이 가족을 구성하는 면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의외로 비극적이다. 심하게 결여되거나 과장된 부분들이 눈에 띈다. 돈에 환장했다거나 문란하다거나 범죄에 무심하다거나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면서 찬양하고 잘 알면서 존경하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비웃긴다. 세상에 둘도 없는 막장 가족인 주제에 아닌 척 또 진중한 척을 해대니 말이다. 아버지의 유산이 아니면 한자리에 모이지도 않을 가족이다.

비극적이지만 비웃기기도 한 피노체트 가족의 면면, 이 영화의 외형도 완벽한 블랙 코미디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재미가 있을까? 서사적 재미 말이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이야기로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없는 편이다. 그나마 피노체트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보면 나름 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알면 알수록 깨알같이 숨어 있는 이야기의 파편들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졸음이 쏟아질지 모른다.

 

피노체트는 하찮은 도둑일 뿐이다?

 

이 영화의 외형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완벽한 블랙 코미디인 이유는 피노체트 덕분이다. 감독은 피노체트라는 사람을 완전히 꿰뚫어 보고 영화를 만들었다. 칠레 현대사를 수많은 이의 피로 시뻘겋게 수놓은 그를 피에 굶주린 뱀파이어로 둔갑시켜 놓은 것 자체가 알맞다. 근데 살아 있는 젊은 여자의 피여야 효과가 있고 남미 사람과 노동자의 피는 맛이 형편 없고 개 비린내가 난다나 뭐라나… 참으로 불편한 뱀파이어다.

나아가 집사와 갈등이 생겨 말싸움을 할 때 집사가 말하길 그는 '밤의 짐승'이자 '도둑'이다. 반면 피노체트는 '밤의 왕'이자 '살육자'이고 싶다.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뭐? 짐승? 도둑? 그는 화가 난다. 영화는 그렇게 피노체트를 희화화하고 폄하한다. 나름 고귀한 목적의 정치적 학대로 역사를 뒤흔든 위인이 아니라, 그저 하찮은 도둑일 뿐이라고 말이다.

끊임없이 지나가는 시간, 지나간 역사를 완벽하게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올바르게 판단하는 건 가능할지 모른다. 영화 <공작>이 피노체트를 하찮은 도둑이라고 한 건 완벽한 판단은 아닐지 모르나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수많은 민중의 고혈을 짜내 훔쳐 철저히 자신의 주머니에 챙겼다. 결코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여러 면에서 이 영화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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