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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특정 상황에서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충격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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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아주 평범한 사람들: 잊힌 홀로코스트>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아주 평범한 사람들> 포스터.

 

한나 아렌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 상급돌격대지도자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직접 지시를 받고 6백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 학살의 실무 총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전범 재판을 취재하며 철학적 깨달음을 얻는다. 이른바 '악의 평범성'으로, 악하기는커녕 평범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아이히만이 본인의 생각은 접어둔 채 오직 명령에 따라 수백만 명을 학살한 사실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누구나 악을 지니고 있다는 것.

여기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과정에서 '악의 평범성'을 또 다른 사례로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가 우리를 찾아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아주 평범한 사람들: 잊힌 홀로코스트>다. 크리스토퍼 로저트 브라우닝 교수의 기념비적인 저서 <아주 평범한 사람들>(1992년 초판 이후 3판까지 출간)을 원작으로 했다. 사회 하층 계급 출신의 평범한 남성들은 어떻게 수만 명을 학살하고 죽음의 수용소로 강제이주시켰는가.

19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인력이 바닥난 나치 독일, 계속 커지는 제국의 영토를 다스리고자 인력을 충당한다. 그중엔 가정이 있고 나이 많은 중년 남성도 포함되었다. 대다수는 나치에 동조하지도 유대인에 지나치게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더구나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직업을 가졌다. 그들은 101예비경찰대대로 편입되어 아무것도 모른 채 이동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찍 모인다.

대대장 트라프 소령이 전하길 유대인 남자, 여자, 아이들 1,500명을 총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명령을 전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때 소령이 제안하길 누구라도 이 일이 내키지 않으면 빼주겠다고 한다. 본인의 선택으로 10명 조금 넘게 열외되었고 그들은 흔히 생각하듯 끔찍한 보복 처벌을 받지 않는다.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인 바 유대인 학살 명령을 따르지 않을 선택지가 주어졌다는 점이 의외다. 신기하기까지 하다. 아이히만의 '오직 명령'에 따른 학살에 반하는 사례인 것이다.

 

악마와 다를 바 없어야 하는데, 평범하다

 

다큐에도 출연한 원작자 크리스토퍼 브라우닝 교수의 말에 따르면, 홀로코스트로 죽은 600만 명의 유대인 중 죽음의 수용소 가스실에서 죽은 숫자가 300만 명, 감금 상태에서 죽은 숫자가 100만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200만 명을 총살 부대가 죽였다는 것이다. 뿔 달린 악마이나 괴물이 아니라면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직접 대면한 채로 사람을 정녕 끝없이 죽일 수 있을까?

하지만 종전 후 전범 재판에 끌려온 아인자츠그루펜(나치 친위대의 민간인 학살 전문부대로 인종말살만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지휘관들의 면면을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자못 당황스럽다. 흔히 무식해서 말이 안 통하고 술과 여자와 도박에 환장한 살인 기계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많이 배운 중산층으로 아주 세련되었고 또 학식까지 있는 자들이었다. 악마 또는 괴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중에 오토 올렌도르프라는 이가 있다. 아인자츠그루펜 D의 지휘관으로 한 해 동안 600명에게 9만 명을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그야말로 극악무도의 절정. 하지만 그를 두고 거의 모든 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잘생겼고 말도 잘했으며 솔직했고 매력적이었다. 흔히 생각할 만한 못생기고 나이 많고 정신 나갔으며 병적이고 가학적이면서 바보 같은 부정적응자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충격적이다. 악마면 악마다워야 하고 괴물이면 괴물다워야 한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하다. 나 그리고 우리와 그 그리고 그들 사이를 철저하게 선 긋고 구분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런데 나와 그가 결코 다르지 않고 우리와 그들이 똑같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사실이고 받아들이기 싫은 사실이다.

 

괴물의 잠재력 vs 의식적인 결정

 

101경찰예비대대는 상급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 총살 작전을 시작한다. 심각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남긴 첫 작전을 지나 몇 차례는 기억에 또렷하게 남을 만큼 생생하다. 직접 대면하고 죽인 유대인 얼굴들이 하나하나 생각날 정도다. 그런데 이후 작전들은 흐릿하다. 점차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 일을 우리가 한다.' '겁쟁이라면 거부해도 되지만 동지가 대신해야 한다.'라는 두 가지로 극심한 부담감을 느끼며 학살을 계속해 나간다.

가해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가 한 끔찍한 일을 정당화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해 나갈 수 없었고 하고 나서도 삶을 영위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누군가는 더러운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인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 일은 내가 남들보다 잘한다' 등. 즉 그들은 아무 생각 없는 학살 기계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알고 또 잘 이해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한편 대대는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살인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된 그룹, 작전에 참여하라고 하면 시키는 대로 했지만 스스로 빠져나오거나 더 많이 하진 않은 그룹, 그리고 거부자들. 거부자들이 흥미로운데, 대대의 한 부대는 불과 며칠 만에 훈련받던 곳으로 돌아가 버린다. 하지만 그들이 결코 영웅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정부가 방법을 찾아내 어떤 식으로든 유대인 학살에 가담시켰기 때문이다.

101경찰예비대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130여 경찰대대 중 4번째로 높은 살인율을 자랑했다. 특출 난 신념에 따라 행동하거나 이념에 이끌리지 않아도 학살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즉 특정 상황에서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괴물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스스로를 통제하고 의식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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