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빌리지>
카몬 마을, 수려한 경관과 함께 '노'(가면을 쓰고 공연하는 일본 전통 1인극) 축제로 유명했다. 하지만 10여 년 전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며 완전히 달라졌다.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건 물론이다. 그 과정에서 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반대하다가 마을 사람들에게서 배척당하고 살인을 저지른 후 방화를 일으켜 자살한 이가 있었으니, 유우의 아버지다. 그 때문에 유우는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며 왕따인 채 살아왔다.
도박으로 막대한 빚이 있는 어머니 때문에 마을에서 떠나지 못하고 폐기물 처리장에서 일하고 있는 유우 앞에 어릴 적 절친 미사키가 나타난다. 도쿄로 떠났다가 돌아와 폐기물 처리장의 홍보를 맡았다고 한다. 유우는 자신을 진심 어린 공감으로 위로해 주는 미사키에게 마음을 열고, 미사키는 이른바 ‘카몬 환경 센터 견학 프로그램’으로 실추된 마을 이미지를 되살리고자 잘생긴 유우를 가이드로 추천한다.
마을의 역적에서 한순간에 마을의 영웅으로 우뚝 선 유우, 얼굴이 환하게 폈다. 어머니도 정신을 찾은 듯하고 미사키와 가깝게 지내는 건 물론이다. 그런데 마을 촌장의 막돼먹은 아들이자 어릴 적부터 유우의 동년배로 그를 괴롭혀 온 토루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는 깡패와 짜고 몰래 저질러 온 불법 폐기물 매립을 유우 등에게 시켜왔는데, 그 사실을 까발리는 한편 평소 흠모했던 미사키에게 몹쓸 짓을 하려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유우는 폭발해 앞뒤 가리지 않고 토루에게 달려드는데… 유우는 지옥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일본 영화계 차세대 간판의 최신작
일본 영화계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만한 차세대 간판 중 하나가 '후지이 미치히토'다. 그는 일본 아베 정권을 정권 조준한 2019년 <신문기자>로 유명한데, 이후 2022년 동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후 <야쿠자와 가족>이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내놓는가 하면 최근엔 <남은 인생 10년>이라는 감성 짙은 로맨스 영화를 내놓기도 했다. 차기작은 <끝까지 간다> 리메이크판이라고 한다. 앞으로 그의 작품들을 넷플릭스에서 자주 접할 것 같다.
후지이 미치히토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빌리지>는 일본에선 올해 4월에 극장에서 개봉했고 4개월 후 한국에서 공개되었다. 시골 마을이라는 단순한 뜻을 가진 제목, 그러하기에 마을에 큰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말 못 할 사연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것들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사람 하나쯤, 가족 하나쯤은 가볍게 파탄 내 버릴 만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어느 마을의 변천사를 담았다. 흥망성쇠의 연대기라고 해도 좋겠다. 절경과 축제로 유명했던 마을에 몇몇 기득권층의 바람대로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오고 수많은 이가 오가는 가운데 다시 옛 영광을 되찾았다 싶었던 차에 완전히 묻어두려 했던 사건의 망령이 되살아난다. 이 마을이 할 줄 아는 건 묻는 것밖에 없다. 폐기물을 묻고 사람을 묻고 기억을 묻고…
폐기물을 묻고 사람을 묻고 기억을 묻는다
카몬 마을을 일본이라는 나라에 치환해도 큰 무리가 없지 싶다. 기득권층이 모든 걸 쥐고 흔드는 가운데, 새로운 시대를 열어 이끌어 가야 하는 젊은 현세대는 구세대 기득권 때문에 저질러진 용서받지 못할 짓으로 연대 피해를 받고, 젊은이들이 뭐라도 해 보려고 하면 기득권이 이용해 먹으려고 달려드니, 궁극적인 발전이 없다. 겉이 번지르르한 만큼 속은 썩어 가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 심각한 건 '매립'이다. 폐기물을 매립해 마을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겠다는 일차원적인 외면의 이유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바다 밖으로 드러난 빙산이 1 정도라면 바닷속의 빙산은 99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야간에 아무도 몰래 실시하는 불법 폐기물 매립, 그리고 마을 사람들 모두의 생각을 한데 모으게끔 희생량을 만들고 그와 관련된 기억을 철저히 숨기는 것.
앞으로 나아가려면 지나간 것은 묻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게 거짓으로 숨겨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나간 것도 지나간 것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받아들이며 또 해결할 건 해결하고 그 토대 위에 새로운 것과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여 쌓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질 것이다. 카몬 마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중충하고 기괴한 영화의 정서적 핵심
영화는 마냥 우중충하다. 해가 진 후에는 물론이거니와 햇빛 찬란한 한낮에도 어둡기 짝이 없다. 폐기물 시설 덕분에 경제적 활황기라고 하지만 암울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을의 속사정을 분위기로 표현하고자 어둡게 한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유우와 미사키가 다시 만나 사랑을 꽃피우며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하는 모습을 그린 부분은 웬만한 로맨스 영화 못지않은 분위기다. <남은 인생 10년>이라는 걸출한 로맨스 영화를 연출한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의 다채로운 역량이 돋보인다.
중간중간 가면과 가면극이 나오는데 일본인이 아닌 사람이 보면 한없이 기괴하다. 넷플릭스라서 다행히 해당 부분들을 스킵할 수 있는데, 도저히 지켜보기 힘들 정도다. 가면, 동작, 말, 음악 모두 기괴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가면이야말로 영화의 정서적 핵심과 맞닿아 있다. 유우가 어린 시절 보고 감명했던 가면을 쓴 영웅의 1인극 말이다.
누구라도 가면을 쓰고 영웅 행세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불법 폐기물 토대 위의 폐기물 쓰레기라는 사상누각에서 거짓이라는 가면을 쓰고 영웅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허울뿐인 속 빈 개살구라면 차라리 낫다. 쓰레기도 없고 거짓도 없으니 말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나의 과거는 거짓되지 않았나, 두 발 딛고 있는 나의 현재는 쓰레기 천지가 아닌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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