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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나치 독일 하 퀴어 커뮤니티 해방구를 둘러싼 이야기들 <엘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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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엘도라도: 나치가 혐오한 모든 것>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엘도라도> 포스터.

 

1934년 6월 30일 아침, 나치 독일의 돌격대(SA)의 참모장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에른스트 룀'이 친위대(SS)에 의해 전격적으로 체포된다. 그는 히틀러가 부여한 여름휴가로 테겐지 호수의 호텔 방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었다. 룀뿐만 아니라 돌격대와 독일 국방군 내 반항 세력과 그 밖의 반 나치 세력이 모조리 체포되었다.

훗날 '장검의 밤'이라 부르는 이 사건은 장장 3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히틀러를 위시한 괴벨스, 힘러, 괴링 등이 저지른 친위 쿠데타였다. 히틀러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세력을 뿌리째 뽑아 버린 것이었다. 1천여 명이 체포되었고 90여 명이 총살당했다. 히틀러 정권에서 국가가 승인한 최초의 대량 학살이었다.

룀의 경우, SA 산하로 분류되던 SS의 수장 하인리히 힘러와의 힘싸움에서 밀린 경향이 크다.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룀의 '동성애' 성적 취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는 베를린의 퀴어 나이트클럽 '엘도라도'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만인이 알 만한 퀴어였는데, 장검의 밤 이전까진 모두가 알고도 쉬쉬했다. 그러던 중 동성애 처단에 앞장서 온 힘러에 의해 숙청당한 것이었다. '엘도라도'가 눈에 띈다.

 

성적으로 가장 자유로웠지만 가장 억압적이었던 시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엘도라도: 나치가 혐오한 모든 것>은 1920년대 후반 베를린 구석의 퀴어 커뮤니티 해방구이자 나이트클럽 '엘도라도'를 중심으로, 역사상 성적으로 가장 자유로웠지만 가장 억압적이었던 시대를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드레스 퀸 등 모든 종류의 퀴어들이 모여 자유를 만끽하며 즐기고 사랑했다. 룀은 만천하에 자신이 게이임을 밝히고 나치 제복을 입은 채 출입했다.

룀은 엘도라도에서 만난 게이 벨보이 칼 에른스트를 포섭해 돌격대 대원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그에겐 남성성이 폭발하는 돌격대에서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당시 나치 독일에는 남성 동성애금지법인 175조가 존재했는데, '남성 간의 간음은 금고에 처한다'라는 조항이었다. 하지만 룀은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나치 독일의 핵심 준군사조작이자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당군이기도 한 SA의 사실상의 수장으로 군림하며 당국의 동성애 범죄화를 피해 갔다.

한편 엘도라도에선 다양한 퀴어들이 사랑에 빠졌다. 트랜스젠더 여성 샬럿이 자신과 비슷한 느낌의 토니와 만나고, 스타 테니스 선수이자 게이 고트프리트가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 마내시를 만난다. 고트프리트는 리사와 살고 있었기에 셋이서 기묘하지만 자연스러운 관계를 형성한다. 그런가 하면 엘도라도에는 성 연구가 마그누스 허슈펠드도 드나들었다. 그는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 단체를 만든 이다.

 

나치 독일의 퀴어를 향한 전례 없는 박해

 

힘러는 "동성애는 모든 업적을 무너뜨리고 국가의 토대를 파괴한다. 자녀를 많이 출산하는 이들만이 세계 강국이 되어 세계를 제패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동성애에 맞서 싸워야 하며, 그게 아니면 독일의 멸망과 게르만의 끝을 볼 것이다."라고 하며 동성애 근절에 앞장섰다. 룀을 비롯해 SA와 독일 국방군 핵심 세력을 숙청하고 SS와 게슈타포는 물론 독일 경찰의 수장이 된다.

이후 나치 독일의 퀴어를 향한 전례 없는 박해가 시작된다. 의심 가는 사람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잡아들여 강제 노동수용소로 보내 버린다. 그곳에서도 따로 '특별' 취급하여 유대인을 비롯한 타 분류보다 훨씬 잔혹한 대우를 받는다. 나치 독일 통치 기간에 10만여 명이 독일 동성애 금지법에 따라 기소되었고 그중 5만여 명이 성공적으로 기소되었으며 5천에서 1만 5천 명 정도가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엘도라도에서 사랑을 꽃핀 퀴어 커플들에게도 크나큰 여파가 닥친다. 샬럿과 토니는 영원히 헤어졌고 고트프리트와 마내시는 오랫동안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지했다시피 룀은 숙청당했고 허슈펠드도 몸을 사려야 했다. 결정적으로 엘도라도 자체가 문을 닫아 버렸다. 그곳을 드나들던 수많은 이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고 숨고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퀴어 커뮤니티 해방구이자 나이트클럽

 

엘도라도는 퀴어 커뮤니티로서 문을 닫은 후 아이러니하게도 나치 독일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당대 가장 급진적인 성적 자유의 해방구가 한순간에 역사상 가장 억압적인 무리의 소유로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자유라는 게 얼마나 취약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자유를 쟁취해 영유하기는 너무나도 힘들지만 자유를 뺏는 건 너무나도 쉽다.

엘도라도는 현재 고급 유기농 마켓으로 바뀌었다. 인간 정신의 해방을 꿈꾼 곳이 인간 몸의 해방을 꿈꾸는 곳으로 바뀐 걸까. 드래그 퀸이 공연하던 곳에서 비싼 아보카도를 산다니, 인간세상이 무상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나 보다 싶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동성애 박해가 비단 나치 독일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서독은 175조를 빌미로 10만여 명의 동성애자를 기소 고발했고 절반가량이 금고형을 받았다. 이른바 나치판 175조는 1969년에 개편되었고 1994년에 이르러서야 대체법 없이 폐지되었다. 어처구니없이 황당한 반전이다. 나치 독일이 기소한 동성애자가 10만여 명이었는데, 전쟁 후 서독이 기소한 동성애자가 10만여 명이었다니….

세상이 점점 '올바르게'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그중 퀴어를 대하는 방식과 시선과 관점이 달라진 게 가장 주요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주의해야 할 게 있다. '그동안 충분히 급진적으로 많이 바뀌었으니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말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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