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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수명 이식이 가능한 시대, 낙원인가 지옥인가 <패러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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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패러다이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패러다이스> 포스터.

 

생명공학 회사 에온의 시간 기증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공여한 수명에 따라 풍부한 보상이 주어진다. 다만 18세 이상만 기증이 가능하고 DNA 호환성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건강을 해치지 않는 최소한의 시술을 실시한다. 기부한 수명에 따른 풍요로운 인생을 보장하고자 한다.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진보일 것이다.

시간 기증 매니저 또는 공여자 스카우터가 찾아다니는 이들은 주로 가난한 어린 친구들이다. 그들의 수명을 가져와 돈 많은 노인한테 큰돈을 받고 판다. 겉으론 '기증'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말이다. 베를린에 있는 으리으리한 에온 본사 앞에는 '내 시간의 주인은 나!'라는 피켓을 든 시위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막스는 올해의 기증 매니저로 뽑힌 유능한 인재다. 그런데 아내 엘레나와 함께 처가에 다녀왔더니 집이 불에 타버렸다. 알고 보니 촛불 때문이었다. 아내의 실수. 문제는 집을 사는 데 250만 유로를 대출했다는 것. 은행은 전액 조기상환을 요구할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시피 한 부부, 와중에 엘레나가 담보를 하나 설정했었다는 사실. 바로 수명이었다. 그렇게 엘레나의 수명 38년이 250만 유로로 전환되고 막스는 에온 본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데….

 

수명 이식이 가능했다면 어땠을까

 

지난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채 60세도 되기 전에 췌장암으로 사망했을 때 세상이 크게 들썩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건 물론 인류 역사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업적을 이룩한 인물이 이리도 빨리 져 버리고 말았나 하는 안타까움으로 말이다. 세기의 천재도 수명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위인이 평균 수명에 한참 모자라는 나이에 하직하고 말았다. 누군가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수명 이식이 가능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독일 영화 <패러다이스>가 정확히 그 생각과 결을 같이 한다. 시간 이식의 창시자이자 에온 본사 CEO 조피 타이센이 말하길, 나이가 아니라 인간이 사회에 공헌하는 기간을 결정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나아가 나이와 죽음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나이와 죽음을 지배하는 세상을 탈바꿈하겠다는 포부를 설파하고, 완전한 자유로 가는 최후의 도약을 실천하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얼핏 인간 본위의 위대한 진보적 생각인 듯하다. 가난한 사람이 수명을 내놓고 큰돈을 받으면 세상에 조금 더 평등해지지 않을까. 위대한 사람들의 수명을 늘리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 어찌할 수 없었던 수명까지 좌지우지하니, 결국 인간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일면 무섭지만 잘만 이용하면 좋을 것도 같다.

 

수명 기증인가, 수명을 훔치는 행위인가

 

과연 그럴까. 인류를 혁신적으로 진보시키는 기술이 으레 그렇듯 수명 이식 기술에도 당연히 명과 암이 있을 것이다. 당장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챗GPT만 봐도 엄청난 논란이 뒤따르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에겐 기회일 테고 누군가에겐 위기일 테다. 와중에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이용하는 이들이 있고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이들이 있다.

영화 속에서 조피 타이센은 현재와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수혜자 명단에 추가한다. 에온 소속 과학자 15명이 수명 기증을 받아 크로노 클리닉에서 회복 중으로, 오랫동안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의료진이 새 삶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런데 아담 그룹이 저지른 표적 테러로 학자들이 모두 죽었다. 수명 이식 기술의 암을 상징하겠다.

아담 그룹의 수장이 말하길, 수명 기증은 평등의 원칙을 해치는 사회 구조를 만든다. 수명을 재화로 만드는 자들은 인간도 재화로 만든다. 인간을 가축으로 격하한다는 것이다. 그는 수명 기증을 수명을 '훔치는' 행위로 규정했다. 돈 많은 이들이 그들 입장에서 푼돈을 들여 가난한 이들의 수명을 훔친다. 수명이 길어진 부자들은 더더욱 돈이 많아질 테고, 수명이 짧아졌지만 돈이 생긴 기존의 가난한 이들은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이었다.

 

누구한테는 낙원, 누구한테는 지옥

 

<패러다이스>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사실 너무 범상한데 영화의 내용과 메시지를 복기하면 범상치 않아지는 것이다. 극 중 에온이 패러다이스, 즉 낙원을 지상에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수명 이식 기술을 전 세계로 퍼뜨리려는 것인데, 돈 많은 누군가에겐 무조건 낙원일 테다. 문제는 가난하지만 어린 누군가다. 에온의 주요 타깃이 그들인데, 그들이야말로 낙원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라고 광고한다.

광고가 아닌 가스라이팅이다. 숨을 쉬지 못해 당장 산소가 필요한데 막상 산소를 주입하면 더 빠르게 숨을 쉬지 못하게 될 환자에게 산소를 주입시켜 준다며 혹하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당장 꽤 큰돈이 생겨 좋을 테지만, 그 돈은 반드시 필요한 곳에 쓰일 테고, 이미 지나가 버린 인생의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돈밖에 없겠지만, 이미 그만한 돈은 없는 상태다.

신박하다는 말을 이런 데 쓸 수 있을까. 앞뒤 꽉 막혀 보이는 독일의 영화답게 SF의 외형임에도 액션다운 액션 또는 스릴러다운 스릴러 없이 사회철학적인 메시지로 점철된 서사가 눈에 띈다. 그럼에도 충분히 볼 만할 정도로 흥미롭다. 다가올 날이 머지않은 것 같은 근미래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그 미래에 다다르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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