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오오쿠>
일본 도쿠가와막부 시대, 동쪽 끝 어느 산골에서 남자아이가 곰에게 물려 죽는다. 이후 집안의 큰형부터 시작해 남자들이 죽어 나간다. 온몸에 퍼진 붉은 발진이 곪고 부풀어 죽은 것이었다. 젊은 남자의 경우 열에 여덟이 목숨을 잃었는데 여자는 멀쩡했다. 이내 마을에서 마을로, 그리고 서쪽 지방으로 퍼졌다. 이 전염병은 '적면포창'으로 불리며 나라 전체에 뿌리내렸다.
80년의 세월이 흐르며 남성이 여성 인구의 4분의 1 수준을 유지했고 여성이 모든 노동력을 책임지게 되었다. 사창가에서 남자를 얻었는데, 하늘에 별따기였다. 특권층만 가능했다. 결국 쇼군의 자리도 4대 때부터 여자가 지위를 물려받았다. 관료화된 무사 사회라 남자와 여자의 역할 전도가 어렵지 않았다. 미남 3천 명이 기거한다는 여인 금제의 남자들만의 성 '오오쿠'야말로 쇼군 최고의 사치였다.
때는 1716년 4월, 7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츠구 시대 에도다. 남자는 좋은 집안에 장가가서 아이를 줄줄리 낳는 게 최고의 삶이라고 한다. 하타모토 가문의 유노신에게 좋은 혼담이 들어온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고 오오쿠에서 일하겠다고 한다. 돈도 벌 수 있으니 집안에서 반대할 게 없었다. 오오쿠로 향하는 유노신,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도쿠가와 막부 시대 남녀역전 대체역사
일본의 에도 막부 시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 대에 이르러 '오오쿠'라는 금남의 공간이 자리 잡는다. 이에미츠가 여자 혐오증으로 남자를 가까이 하자 후사를 만들고자 이에미츠의 유모 출신 여걸 카스가노 츠보네가 나서서 정비했다. 최대 3천 명까지 기거했다고 하니 여러모로 어마어마한 공간이었을 듯하다. 이 해괴망측해 보이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콘텐츠로 만들어졌는데 1960년대부터였다고 한다.
드라마,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까지 없을 것 빼고 다 있다시피 한데 와중에 눈에 띄는 작품은 다름 아닌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오오쿠>다.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대상에 빛난다. 실제 역사에서 남자와 여자를 역전시킨 LGBTQ 대체역사물이다. 즉 오오쿠가 금남의 공간이 아닌 금녀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아울러 쇼군도 4대 때부터 남자가 아닌 여자가 자리를 물려받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오오쿠>는 요시나가 후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이 애니메이션이 원작의 첫 번째 미디어믹스는 아닌 것이, 이미 수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다. 그중 올해 초 공영방송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가 큰 화제를 뿌렸고 곧 시즌 2에 돌입한다는 소식이다. 애니메이션 또한 인기를 끌어 시즌 2 제작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성 평등 후진국 일본에서의 화제와 인기
일본이 성 평등에 있어 전 세계적인 후진국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일례로 국제기구 '세계경제포럼'이 지난 6월에 발표한 젠더 격차 지수에서 0.647을 기록하며 146개국 중 125위를 기록했다. 2006년 조사 시작 이래 최저치다. 한편 우리나라는 0.680을 기록하며 105위를 기록했고 중국은 0.678로 107위였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3개국 한중일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일본에서 <오오쿠> 같은 작품이 나와 원작의 큰 인기와 더불어 2차 저작물들까지 인기몰이를 하니, 신기하면서도 다행이다 싶다. 이런 작품이 환기·정화해 주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최악으로 치닫지 않겠는가? 진지하기 짝이 없는 '남녀역전' 대체역사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야기를 정교하게 짜 맞춰 보여주니 말이다.
주지했다시피 이 작품은 굉장히 정교하다. 남녀가 역전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니 포함시켜도 정통 역사물로 손색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다뤄지지 않는 부분이나 재미를 위해 각색된 부분을 제외하곤 실제 역사를 거의 있는 그대로 다룬다. 다만 남녀가 역전되면서 그에 따라 바뀐 설정이 있는데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를테면 여자 쇼군이니 임신과 출산을 고민한다든지 에도 막부 시대 때 일본의 쇄국 정책이 일본 외부로 여자 쇼군의 정체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든지.
이 작품이 무던한 서사를 갖춘 이유
극 중 오오쿠는 어항과 다름없는 곳이다. 3천 명에 이르는 남자들은 사육당하는 신세다. 쇼군 권력의 증거이자 핵심이기도 한 바, 남자들을 가둬 놓고 소중한 '씨'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검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오오쿠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희고 아름다운 얼굴과 영리한 처세술이다. 그러니 오우쿠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다들 마음은 어둡다.
남녀가 역전되어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욕망에 사로잡혀 할 짓 못할 짓 구분 못하는 이가 있는 반면,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볼 줄 알고 또 통제할 줄 알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건 물론 이타적 행위를 하는 데 거리낌 없는 이도 있다. 그에 비해 똑똑하거나 멍청하거나 눈치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예쁘거나 못생겼거나 하는 것들은 부가적인 차이점들이다. 즉 남자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의외로 무던한 서사를 갖춘 게 바로 그 이유에서다. 적면포창과 남녀역전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뒤로하고 이후 진행에선 인간군상에 중점을 잡고 자못 소소한 이야기들이 자리 잡고 있는 바, 남녀가 역전되어도 다르지 않다고 똑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못 훌륭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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