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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공연

죗값을 치른 이 살인 가해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보이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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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공연 리뷰] <보이 A>

 

뮤지컬 <보이 A> 포스터. ⓒ스튜디오 단단


모종의 죄를 지어 '보이 A'라는 이름으로 교도소에서 10년 넘게 복역한 에릭, 24살이 되어 모범 복역수로 보호관찰관 테리의 도움을 받아 가석방되어 세상 밖으로 나간다. '잭'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잭은 새로운 직장에서 동료이자 친구 크리스를 만나고 월급으로 저축도 하면서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 하지만 어김없이 그를 찾아오는 건 A, 잭이 어린 시절 함께 범죄를 저지른 친구이자 당시 그의 분신과도 같은 사람.

잭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A가 나타날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와 함께 놀러 갔다가 교통사고 현장에서 어린아이를 구해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잭에게로 향하니, 머지않아 그의 과거가 드러난다. 동급생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도 모자라 재판정에서 웃으며 모두를 경악에 빠뜨린 장본인.

한편 사람 좋아 보이는 테리에게도 남모를 아픔이 있다. 꽤 오래전 이혼을 하고 아내와 아들 제드 얼굴도 못 보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제드가 나타나더니 집에서 좀 머물면 안 되냐는 게 아닌가. 서먹서먹하지만 제드를 받아들이는 테리, 하지만 테리는 매일같이 잭을 걱정할 뿐이다. 그런 테리를 바라보는 제드는 잭을 향한 분노가 차오른다.

잭과 크리스, 그리고 A는 어떻게 될까? 그런가 하면 테리와 제드는 어떻게 될까? 무엇보다 10여 년 전 잭과 A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들은 무슨 일을 왜 저질렀던 걸까?

 

실화, 소설, 영화 그리고 뮤지컬까지

 

1993년 영국 리버풀에서 끔찍한 유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쇼핑센터에서 실종된 2살 아이가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알고 보니 범인이 10살 된 두 아이였다. 그들은 왜 또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세간에 큰 충격을 안긴 이 사건으로 영국은 CCTV 천국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더불어 '인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실화는 2004년 조나단 트리겔이 <보이 A>라는 제목의 소설로 만들어 다시 한번 소개되었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최고의 데뷔작으로 크게 화제를 뿌렸다. 그리고 2007년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동명 영화로 만들어져 베를린영화제 특별 심사위원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쉽지 않은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남기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2023년에는 국내에서 드디어 동명의 뮤지컬 <보이 A>로 만들어져 초연에 성공했다. 진작에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공연으로 재가공되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이야기인데, 어린 나이에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 10년 넘게 모범적인 수감 생활 끝에 출소한 청년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을 거라 짐작한다. 그는 어떻게 사고하고 또 행동해야 하며, 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가해자의 이야기, 가해자에 의한 이야기

 

가해자, 그중에서도 살인자에게 사연을 부여하지 말자는 여론이 그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을 테니 들여다봐야 한다는 여론을 압도하고 있다. 저지른 잘못의 강도가 차원을 달리하니 말이다. 제아무리 죗값을 치렀다고 해도 감안할 여지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구든 교화될 수 있고 새출발할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많을 테다. 그런 와중에 이 작품 <보이 A>는 살인죄를 저질러 복역하며 죗값을 치른 후 가석방한 청년이 주인공으로, 그가 살인을 하기까지의 사연이 주요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고 있다.

어린 시절 소심하고 친구도 없고 부모의 관심 밖으로 내몰린 에릭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형한테 성폭력을 당하고 사는 A와 우연히 친구 사이가 된다. 이후 A에게 급속히 동화된 에릭은 별생각 없이 이것저것 해 보다가 급기야 해선 안 되는 짓을 저지른다. 10살에 불과한 어린 나이이기에 정신줄을 제대로 붙잡지 못했을 거라 추측되지만, 그리고 피해자인 여 동급생이 먼저 그들에게 해선 안 되는 말을 했다지만, 과연 그들의 행동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소규모 뮤지컬은 1인 다역은 물론 무대 중앙의 문 하나가 수많은 장치로 활용된다. 문을 열 때마다 교도소, 기차 안, 옷장, 직장, 야외, 거실, 레스토랑, 방 안 등이 자유자재로 펼쳐진다. 따로 또 같이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며 잭이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기만의 감옥에 갇혀 있는 걸 상징하기도 한다. 그에게만 보이는 친구 A는 고독과 아픔과 죄의식의 망령이다.

 

용서 그리고 구원까지

 

이 작품이 나아가려는 방향에는 용서와 구원이 있다. 잭은 십수 년 전의 피해자 안젤라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하고, 테리는 오랫동안 방치한 채 들여다보지 않은 아들 제드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하며, 제드는 신상을 털어 파멸에 이르게 하려 했던 잭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모두 행위의 이유가 존재한다. 타인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겠지만 당시의 자신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말이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는 건 참으로 어렵다. 막상 해 보면 알겠지만, 먼저 자신부터 용서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웬만한 사람이 하기 힘든 게 바로 그것이다. 인정하고 직시하긴커녕 어떻게든 부정하고 회피하려 한다. 그 이후 자신을 용서하고 당사자한테 용서를 구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잭은 과연 그 단계까지 나아갔을까? 그 단계를 건너뛰고 타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혹여 그랬다면 모든 게 꼬일 수 있다.

구원은 당사자가 온전히 용서했을 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그리고 당연히 구원을 바라는 건 안 될 말이다. 구원은 종국엔 나의 영역이 아닌 그의 영역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용서를 구하는 데까지만 나아갈 뿐 용서를 하고 구원을 받는 데까진 나아가지 않는다. 거기까지 보여주는 건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을지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굉장히 똑똑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을 보니 자연스레 영화, 소설, 실화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디테일들 덕분에 각각 완전히 다른 작품인 것 같다. 심지어 실화까지도. 그런데 공통적으로 아쉬운 건, 가해자 아닌 피해자의 사연은 어딨는가 하는 점이다. 최소한 가해자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사연을 소개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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