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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대만의 정치 현실을 진중하면서도 쾌활하게 <인선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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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인선지인: 웨이브 메이커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선지인: 웨이브 메이커스> 포스터.

 

대만 총통 선거가 10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시간, 집권당 민화당의 현 총통 쑨링셴과 야당 공정당의 대표 린웨전이 맞붙는다. 주임 천자징과 부주임이자 대변인 웡원팡이 주도하는 공정당 홍보부가 열일한다. 현 정부, 즉 민화당이 하는 일을 하나하나 캐서 꼬투리를 잡고 물어지는 한편 공정당과 린웨전을 따로 또 같이 띄우려 한다. 와중에 교수를 거쳐 입법위원장을 거쳐 국회의장까지 역이한 미중년 스타 정치인 자오창쩌가 민화당의 부총통 후보가 된다.

웡원팡은 유력한 정치가 가문의 딸로 일전에 커밍아웃을 한 채 위원 선거에 나섰다가 모종의 이유로 폭행 사건에 휘말려 아쉽게 낙선하고 말았다. 그 일로 아버지와 서먹서먹해졌고 당 본부에서 선거 캠프 직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천자징에겐 프리랜서 그림 일을 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는데, 너무 일에만 매달린 나머지 아내와의 관계가 심각하게 틀어진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선거 일보다 훨씬 어렵다.

한편 공정당 홍보부 신입 장야징은 어느 유력 정치인과 일전에 몸과 마음을 나눴다가 그에게 찍힌 나체 사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가 절대로 돌려주려 하지 않으니 언제 어느 사이트에 버젓이 유통될지 모르는 노릇이다. 그런가 하면 자오창쩌의 딸 자오룽즈는 우연히 알게 된 아버지의 외도로 괴로워한다. 외부에서 보면 한없이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그렇게 이미지메이킹하려는 부모를 이해할 수도 또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대만의 정치 드라마, 선거 캠프인들 이야기

 

대만의 정치 체계는 한국과 거의 유사하다. 대통령에 해당하는 총통과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입법위원을 국민이 직접 뽑고, 총통이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행정원장을 입법원 동의 없이 임명할 수 있다. 또한 총통이 사법, 감찰, 고시의 주요 삼권 수반을 입법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삼권분립이 아니라 오권분립이 되어 있지만 사실상 총통 중심제다. 더군다나 양대 정당 중국국민당과 민주진보당이 입법원을 장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 지수가 세계 10권 안에 들 정도로 튼튼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선지인: 웨이브 메이커스>는 대만 총통 선거를 준비하는 캠프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룬다. 제목과 부제가 눈에 띈다. 제목 인선지인(人選之人)은 '사람을 가려 뽑게 해주는 사람들' 즉 선거 캠프인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부제 웨이브 메이커스 역시 선거 캠프인을 뜻하는데, 당선시키고자 하는 이가 마음껏 타고 다닐 수 있게 파도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에는 <웨스트윙> <하우스 오브 카드> 등 진중한 명작 정치 드라마가 많다. 반면 한국과 일본에도 정치 드라마가 종종 나오지만, 진중하지 못하거나 다른 장르가 덧입혀지는 경우가 많다. 이 대만 드라마 <인선지인>은 진중하지만 유쾌하고 경쾌하고 상쾌했다. 보기 힘든 유형이었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정치인을 당선시키고자 고군분투하는 막후 이야기

 

이 드라마의 특장점은 주지했듯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 본인이 아닌 그를 당선시키고자 막후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작품은 그들 하나하나의 사연에 집중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삶에서 나름의 사연이 대서사시처럼 펼쳐져 있을 텐데, 여기에선 선거 캠프 직원으로서의 사연이 펼쳐진다.

웡원팡은 유력한 지역 정치인 아버지 밑에서 정치를 시작해 위원 선거까지 나가 승리가 점쳐졌지만, 자신의 성적 지향을 가지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한 아버지의 측근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가 선거에서 지고 말았다. 이후 그녀는 당본부 홍보팀으로 들어갔는데, 다시 선거에 나설 것인가? 천자징은 일 잘하고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믿을 만한 선거 캠프의 중간 관리자다. 하지만 가정 일은 거의 손대지 못하고 프리랜서 아내에게 일임한다. 결국 아내가 폭발하고 마는데, 다시 잘해 볼 수 있을까? 천자징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장야징은 한때 유력 정치인의 내연녀였다. 물론 그 정치인은 지금도 유력하고 앞으로 더 유력해질 예정이다. 하지만 장야징의 나체 사진을 찍어놓고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들 사이를 폭로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장야징은 그저 사진만 돌려받고 싶을 뿐이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자신의 나체 사진을 어느 사이트에서 보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신입 직원은 사회 운동가로서 시위 활동을 이어가는 대학 후배들을 볼 낯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괴롭다. 개인적으로 직급이 낮으니 대단한 일은커녕 하찮은 일만 하고, 정치적으로 당의 활동이 너무 계산적이고 실질적이지 않은 것 같아 실망이 쌓여 가고 있다.

 

민주주의, 선거, 그리고 연대의 모습

 

대만과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 대동소이하다. 모든 걸 바꿀 만한 궁극의 권력 한 자리를 차지하고자, 정책 대결보다 상대방의 흠결을 캐는 데 주력하고 유권자와 나라의 앞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개인적인 일이 생길 때마다, '대선을 위해' 잠시 묻어 두고 '대선 후로' 미룬다. 모든 게 대선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대선이라면 모든 게 용인되고 또 용서된다.

웡원팡과 린웨전의 대화가 눈길을 끈다. 웡원팡이 능력 있는 사람이 뽑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중은 왜 그렇게 보는 눈이 없냐고 말하니, 린웨전이 그게 민주주의라고 능력으로 뽑히기도 당으로 뽑히기도 얼굴로 뽑히기도 하는 거라고 말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해 준다. 다양성과 다원화 자체를 끌어안고 나아가는 게 민주주의다.

선거가 중요한 건 사회를 이루는 중요 의제들이 모조리 양지로 끌어 올려져 격렬한 토의를 거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도 환경 문제, 언론 문제, 사형 제도 등과 심지어 반려견 목줄 문제까지 다룬다. 더불어 사내 성희롱, 가사 분담, 성소수자 등은 캐릭터들의 사연으로 다룬다. 그럼에도 결국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상대방이 저절로 무너져 선거에서 이긴다니, 현실적이기 이를 데 없다. 사회 의제들을 수면 위로 올렸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하는 것인가.

현실적 판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건 '연대'의 모습이다. 장야징과 웡원팡과 린웨전 그리고 자오룽즈가 서로를 따로 또 같이 감싸 준다. 모두 여성, 연대를 여성들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여성들의 연대는 특별하고 또 힘이 있다. 그들의 연대를 응원하며 한편으론 부럽다. 그리고 결국 사람이다. 정치야말로 사람이 사람을 위해 행하는 가장 고귀한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정치를 가까이 해야 비로소 세상이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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