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빅맥: 갱스터스 앤 골드>
1991년 12월 19일 3시 반쯤, 독일 뉘른베르크 슈파르카세 금융 그룹 지점에서 은행 강도 사건이 일어난다. 족히 190cm는 넘는 초고도비만의 40세 전후 남자가 총을 들고 나타나선 54,000마르크를 훔쳐 달아났다. 달아나며 택시를 탔는데, 그 남자가 택시 기사를 위협해 역주행하고 빨간불에도 달리고 일방통행도 어겼다. 그러다가 남자는 내리더니 달아났다. 하지만 은행의 감시 카메라에 인상착의가 비교적 똑똑히 잡혔다.
당일 뉴스로 전파를 탄 사건, 어느 경찰관이 용의자를 알아봤고 '도날트 슈텔바크'가 구속된다. 누가 봐도 감시 카메라에 잡힌 범인의 인상착의와 도날트가 너무나도 비슷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었기에 사건은 표류했고 도날트는 2년 가까이 미결수로 구금된다. 1994년 1월 25일 재판이 시작된다. 도날트는 은행 강도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인가, 억울하게 2년 동안 미결수로 지낸 피해자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빅맥: 갱스터스 앤 골드>(이하 '빅맥')는 도날트 슈텔바크의 일생을 간략하게 돌아보며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두 사건을 집중 조명한다.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그가 용의자도 아닌 진범으로 지목된 두 사건은 은행 강도 사건과 금 수송차 탈취 사건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죄목이지만, 그는 한결같이 강력하게 부인한다.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도 한둘이 아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헷갈린다.
억울한 옥살이 후 스타가 되다
도날트 슈텔바크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2년이나 지체된 재판이었던 만큼 치열한 공방전이 오간다. 당국이 그를 범인으로 확신한 건 감시 카메라의 인상착의와 증인들의 증언이었다. 사건 당시, 강도에게 위협받아 직접 돈을 건넨 여 행원과 역시 강도에게 위협받아 위험한 주행을 한 여 택시기사 모두 정확히 도날트를 지목했다.
나아가 법 의학자 코르넬리우스 박사가 감시 카메라에 잡힌 인상착의에서 '귀'를 두고 도날트와 일치한다고 했다. 이 재판의 향방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진술이었다. 한편 도날트 쪽은 사건 당시 도날트가 뉘른베르크로부터 250km 떨어진 로이나에 있었다는 명확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도날트와 함께 있었다는 이들의 진술과 증거도 있었다.
하지만 도날트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도날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데, 여하튼 그는 9년형을 받고 복역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감옥 생활 내내 독방에서 지내며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고 한다. 2001년 2월 14일 석방된 후 도날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야말로 전국구 스타가 된 것, 1991년 뉘른베르크 은행 강도 사건의 진범이 잡히며 그의 무죄가 입증되었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피해자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이다.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국가 보상금이 3천만 원 정도뿐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또 다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되다
이쯤 되면 '도날트 슈텔바크'라는 사람을 향한 연민의 정이 샘솟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실망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명명백백한 증거도 없이 무고한 사람을 구속해 감옥에 처넣은 다음 석방된 후 "알고 보니 네가 범인이 아니네? 미안해"라며 꼴랑 3천 만원을 주고 끝내 버리다니 말이다.
도날트는 사연을 팔아먹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의 기구하고도 기구한 사연을 팔아 수많은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를 진행했고, 급기야 간접 광고를 하기까지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떼 돈을 벌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사연의 큰 줄기 곳곳에 MSG를 가미해 더 기구하게 보이려고 했다는데, 그의 억울함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앞날에 또 다른 암운이 드리운다. 그 옛날 뉘른베르크 때와는 차원이 다른 사건에 연류된 것이다. 2009년 12월 15일 루트빅스부르크 근처 고속도로에서 금 수송차량이 경찰을 가장한 5명의 강도 집단에게 탈취당한 사건이었다. 머지않아 우두머리 크사타어가 붙잡혀 재판을 받았는데, 그가 다름 아닌 도날트를 정보원으로 지목한다.
누구의 말을 어디까지 믿고 또 믿지 말아야 할까
도날트 슈텔바크가 여지껏 살아온, 그러니까 1991년 사건 이전까지의 행적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 주둔했던 미군의 혼외자식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양부모를 여의고 외조부 밑에서 자랐는데, 사랑다운 사랑을 받지 못했고 동네에서도 외톨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를 기억하는 동창들은 도날트가 매우 잘 지냈다고 증언한다.
머리가 커진 도날트는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정착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왕창 벌었다고 한다. 문제는 사기, 강도, 횡령 등 온갖 불법적인 일들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25살 땐 청천벽력 같은 뇌종양 판결을 받고 실의에 빠져 마약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도날트는 일찍이 기구한 삶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1년 사건은 억울했지만, 2009년 사건은 그렇지만도 않을 수 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그는 트뤼커(반강제적으로 잡지를 판매하는 외판원 조직)의 수장이었다. 즉 갱스터였다.
도날트 슈텔바크의 삶의 기구했다는 건 사실이다. 그가 1991년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09년 사건에 연류되어 있지 않다는 건 100% 받아들이긴 힘들다. 그의 행적이 단순히 비합법적, 즉 나쁜 짓을 많이 해 왔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 그의 말을 신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의 어린 시절, 그의 감방 생활, 그의 방송 인터뷰, 심지어 현재 인터뷰에서도 거짓말이 눈에 띈다. 또한 같은 현상에 대해 너무나도 상반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주위 사람들의 증언과 일치하지 않기도 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땐 도날트 슈텔바크의 사연에 집중하다가, 끝나고 나면 혼란스럽기만 하다. 누구의 말을 어디까지 믿고 또 믿지 말아야 할까. 도날트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희대의 피해자일까, 나쁜 짓을 밥 먹듯이 하다가 또다시 크나큰 범죄에 핵심 정보원으로 가담한 범죄자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입만 산 허풍쟁이일까. 차라리 허풍쟁이라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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