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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송태섭의 이야기로 다시 시작하는 '슬램덩크' <더 퍼스트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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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더 퍼스트 슬램덩크>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NEW

 

1990년대 초중반 일본과 한국 양국의 만화계, 아니 문화계 전반을 지배했던 <슬램덩크>는 21세기가 한창인 지금도 여전히 크나큰 인기를 끌고 있거니와 영향력도 끼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앙케이트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만화 순위 최상단에 위치했고, 역시 최근에 모바일 게임으로 재탄생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신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화, 각본, 감독으로 찾아온 게 크다. 궁극의 인기 만화답게 그동안 극장판이 없었던 건 아니나, <슬램덩크> 연재가 한창이던 1994년~1996년 공개한 네 편의 구극장판들은 길지 않은 분량으로 원작에선 짧게 스쳐지나가듯 다룬 에피소드를 자세히 다룬 정도의 의미였다. 

 

그런가 하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구극장판의 기조, 즉 원작에선 크게 다루지 않은 에피소드를 자세히 다룬다는 기조를 따르지만 원작이 끝난 지 참으로 오래되었다는 시기도 시기고 원작자가 직접 각본과 감독 그리고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까지 사실상 모든 걸 챙겼다는 점에서 감화가 새롭다고 하겠다. 신극장판의 진주인공은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도 아니고 송태섭이다. 의외라면 의외이겠으나 <슬램덩크>의 팬들 입장에선 너무나도 기다렸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송태섭의 이야기, 그리고 산왕전


일본 오키나와, 초등학생 송태섭에겐 중학생 형 송준섭과 여동생 송아라가 있다. 어느 날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 전체가 실의에 빠진다. 하지만 형 준섭은 태섭과 가족들을 보살핀다. 출중한 농구 실력으로 학교 농구부에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준섭은 종종 태섭과 1 대 1 게임을 하며 놀아주기도 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준섭마저 잃고 만다. 태섭은 자기와 1 대 1 게임을 하다 말고 친구들과 낚시를 나가는 준섭에게 울고 불고하며 저주를 퍼부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는 자책감을 가지고 있다.

태섭은 괜찮은 실력으로 학교에서 농구를 시작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형 준섭의 이야기와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농구를 포기하고 만다. 북산 고등학교로 전학 온 태섭, 정대만이 이끄는 일진 무리와 얽혀 더없이 힘들어한다.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 볼 시간이다. 그러던 차 형 준섭, 농구 그리고 엄마와 다시 조우하며 농구를 향한 열의를 불태운다. 그에게 농구 말고 남은 게 무엇이란 말인가.


한편, 북산 고등학교는 지역 예선을 뚫고 인터하이 32강에서 전국 최강 산왕 공업고등학교와 맞닥뜨린다. 제아무리 북산 고등학교 역사상 최강의 멤버가 모였다고 해도 이겨 내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상대다.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 서태웅, 강백호 5인방은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 것인지?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한계를 뛰어넘는다고 해서, 꺾이지 않는 투지를 견지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까? 인생에 다시없을 기회를 꽉 붙잡고 영광의 시대를 마음껏 즐길 시간이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조화와 균형

 

'슬램덩크' 신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주지했듯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작화, 각본, 감독을 도맡아 오랫동안 작품 전체를 진두지휘한 결과물이다. 어떤 식으로 나왔든, 얼만큼의 퀄리티로 나왔든 상관없이 원작 팬들은 환희에 찰 게 분명하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예상대로였다. 원작을 대표하는 경기인 산왕과의 인터하이 32강전을 그대로 가져왔거니와 원작을 대표할 만한 장면과 대사가 다수 포함되어 있기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흐를 정도의 희열로 가득 차 있다. 한편, 원작에선 전혀 다뤄지지 않았거니와 비중도 가장 떨어지는 '송태섭'을 전면에 배치해 그의 사연이 경기 중간중간 회상으로 들어가며 작품의 반 이상을 차지하니 마냥 익숙하지 않고 새로운 감성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조화와 균형이 참으로 적절했다. 

 

물론, 바로 그 지점 때문에 경기만 오롯이 또는 송태섭의 이야기만 오롯이 집중하고 감상하는 게 힘들었을 수도 있다. 경기 흐름이 뚝뚝 끊기는 맛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너무나도 잘 알 만한 산왕전의 익숙함을 흔드는 한편, 송태섭의 새로운 회상씬이 갖는 의미들이 산왕전과 의미 있게 연결되는 맛으로 치환되길 바라는 원작자이자 신극장판 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바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기가 끊기긴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원작을 봤든 보지 않았든,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반드시 원작 <슬램덩크>를 보길 바란다. 또 다른 감동을 느낄 테다. 그리고 다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면, 남다른 디테일을 접할 수 있을 테다. 충만해지는 감상법이다. 

 

가슴을 뛰게 하고 먹먹하게 하고

 

<슬램덩크>가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지만 원작을 접하지 못한 이가 많을 것이다. 원작이 나온 지 자그마치 30년 가까이 흘렀고 1996년 이후엔 관련된 그 어떤 영상 콘텐츠도 나온 바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신극장판이 개봉했으니, 원작을 제대로 접하지 않은 이가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들에게도 충분히 '먹히는' 콘텐츠일까? 

 

모르긴 몰라도, 원작을 제대로 접하지 않은 이에게도 충분히 '먹힐' 것이다. 그들의 가슴도 뛰게 할 것이고 그들의 가슴도 먹먹하게 할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감성 터치'일 텐데, 이 작품이 제대로 해내지 않을까 싶다. 산왕전을 즐기며 가슴이 뛸 테고, 송태섭의 회상씬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질 테다.

 

현장감이 중요한 산왕전에선 바탕에 3D를 깔아 입체감을 부각시켰고, 회상씬에선 만화책의 질감을 살려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부각시켰다. 따로 또 같이, 적절하게 감성을 터치하려 했다. 단순히 원작 팬의 절대적이고 확고한 노스텔지아에 기댄 게 아니라 만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완벽에 완벽을 기한 것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본다. '슬램덩크' 앞에 붙인 '더 퍼스트(THE FIRST)'를 눈여겨본다. 일종의 선언처럼 보인다. <슬램덩크>가 다시 시작되는데 이 작품이 그 첫 번째 결과물이라고 말이다. 언젠가는 '더 세컨드(THE SECOND)'가 찾아올 거라고 말이다. 그때 다시 가슴 먹먹해지고 또 가슴 뛸 준비가 되었느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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