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914년 7월 28일 시작되어 1918년 11월 11일에 끝난 '제1차 세계대전', 개전한 지도 종전한 지도 100년을 훌쩍 지난 옛날 이야기다. 최초의 세계대전, 역사상 최악의 전쟁, 제국주의 전쟁,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은 만큼 제1차 세계대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우리나라에게는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발표한 '민족자결주의'에 힘을 얻어 3.1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옛날 이야기로만 그칠 게 아닌 것은 21세기 한복판에 들어선 지금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전쟁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지 않았던 옛날과 달리 세계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지금, 나라와 나라가 맞붙은 전쟁은 전 세계에 큰 파급력을 뿌린다. 경제, 정치, 안보는 물론 사회, 문화 측면에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전쟁 영화는 매년 절대적으로 만들어진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경각심을 불어넣어도 모자른 게 바로 전쟁의 심각성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 전쟁 그리고 아랍 지역의 전쟁들은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았고 미국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에 여러 장르로 만들어져 왔던 반면, 제1차 세계대전 영화는 많지 않다. 오히려 최근 들어 모습을 보였는데, <1917> <저니스 엔드> <워 호스> 등이 대표적이다. 고전 명작들로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광의 길> 등이 있다. 1950~60년대 작품들이라 최근 작품들과는 현격한 시간 차이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작품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있다. 소설, 영화,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크게 성공했고 호평을 받았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소설은 1929년 출간되었고, 영화는 이듬해 1930년 흑백영화로 미국에서 만들어졌는데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최초로 석권하며 역대 최고의 전쟁 영화로 남아 있다. 1979년에는 역시 미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을 석권하며 역대급 전쟁 드라마로 남아 있다. 그리고 또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독일에서 2022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만들어져 세상에 선보였는데, 공개된 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이미 명작 반열에 우뚝 섰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전장으로 향하는 젊은이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북독일, 17살 파울 보이머는 참전에 반대하는 부모님의 서명을 위조해 참전하는 데 성공한다. 친구들 세 명과 함께 최전선으로 가게 되었다. 황제와 조국과 신을 위해 전장으로 나아가 파리로 진격하라는 장군의 위대한 연설(또는 가스라이팅)을 듣고 감화된 젊은이들은 기세 좋게 출전한다. 하지만 첫날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더니 참호 안은 물바다, 적과 대적하기 전에 물에 빠져 죽을 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세차게 이어지는 적군의 포격, 벙커에 숨어도 발악적으로 무섭기는 매한가지다. 급기야 벙커가 무너져 버린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파울, 와중에 친구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게 전쟁이구나 하고 실감한다. 시간이 지나 이듬해 1918년 11월, 독일군 사령부는 휴전 협정을 준비한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몇 만 몇 십만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어 가고 있다. 고작 몇 백 미터의 땅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한편, 파울은 전우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떠나보내면서 살아남아 있다. 곧 전쟁이 끝날 거라는 소문이 돌지만 명령이 떨어지는 건 돌격뿐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와중에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만 있을 때 적군과 눈앞에서 마주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와 독일 사령부에서는 빠른 듯 지지부진한 휴전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전쟁이 끝나기는 하는 걸까,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참혹한 전쟁, 잔잔한 전쟁
2022년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전장에서의 두려움 가득한 긴장감과 현실적이기 그지없는 박진감이 조화를 이루는 한편, 장군의 연설에 감화되어 한껏 기대에 차서 전선에 투입된 젊은이가 변해 가는 과정이 일품인데 거기에 전쟁을 거시적으로밖에 보지 않는 고위 관료와 장성들의 잔잔한 일상이 대조를 이뤄 크게 다가온다. 과연 이것이 전쟁이라는 것인가.
이 영화는 그동안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처럼 할리우드가 아니라 독일에서 만들어졌다. 독일 입장에서 그려진 반전 소설을 독일에서 영화로 만든 것인데, 독일이라는 나라 특유의 무뚝뚝하고 정직한 감성이 영화 전반에서 묻어난다. 무슨 말인고 하면, 전장의 참혹함을 다룰 때면 연출이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은 듯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 주려 했고 전장 뒤 고위 관료와 장성들의 일상 또는 협상 때를 다룰 때면 그야말로 하품 나올 만큼 잔잔하게 보여 주려 한다. 극과 극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다루니 그 자체로 극적인 게 아이러니하다.
전쟁에서의 죽음은 영웅시되기 마련이다, 일면 그래야 한다. 우리나라 영토와 국민을 지키고자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적군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제 갓 군복을 입고 전장에 투입된 젊은이들이 뭘 어떻게 적군과 싸우겠는가? 그들의 죽음은 거의 '개죽음'일 게 분명하다. 치열하게 싸우기는커녕 그저 돌격하다가 혹은 공포에 벌벌 떨다가 혹은 후퇴하다가 죽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젊은이들의 쓸데없고 황망한 죽음
그렇다, 이 영화가 보여 주고 말하고자 하는 진짜는 젊은이들의 쓸데없고 황망한 죽음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정치적이며 속물이기까지 한 기성세대 기득권 윗선이 세상물정 잘 모르고 환상에 가득한 젊은이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몬다. 일단 온갖 감언이설로 내몰고 나면 그들 대부분에게 기다리고 있는 건 후퇴 없는 죽음뿐이다. 어찌 동서고금 시대와 장소와 상황을 막론하고 똑같은 양상이 계속되는지 씁쓸할 뿐이다. 바뀌지 않는 것인가.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는 건 비단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만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게 매일같이 쉬지 않고 전투를 벌일 수는 없는 법, 병사들도 쉬면서 일상을 영위할 때도 있다. 이 영화에도 역시 그런 장면들이 나오는데, 의외로 그때 병사들이 황망하게 죽어 가기도 한다. 특히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말이다. 명작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전쟁이 사실상 끝났을 때 우수한 병사들이 황망하게 또 황당하게 죽어 나간다. 그런가 하면, 한국 영화 <고지전>에서도 휴전 직전까지 고지를 탈환하고자 전투를 펼치다가 병사들이 '쓸데없이' 죽어 나간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보여 주는 참상도 다를 바 없다.
그들의 '영웅적인 죽음' 덕분에 서부 전선이 이상 없었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아니, 그들의 '개죽음'이라도 서부 전선이 이상 없는 데 일조했다면 나았을까. 문제는 그들이 죽어 나가든 말든 서부 전선은 이상이 없었을 거라는 점이다. 누가 젊은이의 죽음에 책임을 질 것인가. 어떻게 젊은이의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 무엇이 젊은이를 위한 것인가.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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