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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 영국의 자랑, 죽은 후엔 영국의 수치 <지미 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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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지미 새빌: 브리티시 호러 스토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지미 새빌> 포스터.

 

'지미 새빌'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선 들어 본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름이겠지만, 영국에선 20세기 후반의 대중문화를 지배하다시피 했거니와 권력층의 핵심과 다름없는 행보를 보인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영국 미디어의 간판 BBC의 아이콘이었기에 모든 영국인의 추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테다. 유명세를 이용해 자선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기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1990년에는 기사 작위도 받았는데, 당시 그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 있었지만 대처 총리가 강력하게 밀었다고 한다. 그도 그런 것이, 그는 왕실하고도 깊이 있게 친분을 유지했는데 다이애나 왕세자비와는 매우 친했고 찰스 왕세자와는 국정을 논하는 정도였다. 지미 새빌은 단순히 국민 MC 정도가 아니었고 그 이상의 권력과 명성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미 새빌 살아생전 그를 둘러싼 수많은 성범죄 의혹이 있었다. 그중 가장 강력한 건 '아동성도착증' 의혹이었다. 모든 영국인이 좋아라 하는 지미 새빌이 아동성도착증이라니?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믿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살아생전 의혹들은 철저히 숨겨졌고 가려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2011년으로부터 1년여 후 ITV의 다큐로 진실이 폭로된다. 

 

모든 영국인에게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긴 슈퍼스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지미 새빌: 브리티시 호러 스토리>(이하, '지미 새빌')는 모든 영국인에게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긴 영국의 국민 슈퍼스타 지미 새빌의 삶을 다뤘다. 모든 이의 삶이 특별하겠지만, 그의 삶이 특별했던 건 사상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이가 사상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살아생전 영국의 자랑이었지만 죽은 후엔 영국의 수치로 전락했다. 

 

지미 새빌은 1950년대부터 DJ로 명성을 쌓은 후 라디오로 진출한 후 1960년대 TV로 진출해 1964년부터 BBC의 간판 가요 차트 프로그램 '탑 오브 더 팝스(The Top of The Pops)'를 20년간 진행했고 1975년부터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BBC의 간판 프로그램 '소원 수리사 짐(Jim'll Fix It)'을 20년간 진행했다. 영국 미디어의 수장 BBC의 간판이랄 수 있는 두 프로그램을 장기간 진행하며 그는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또 좋아하는 국민 MC로 발돋움했다. 

 

지미 새빌의 행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패셔니스타로서도 명성을 날렸고 말 많은 익살꾼으로서도 명성을 날렸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전국 곳곳에서 자선사업을 대대적으로 이끌어 내 모든 이의 존경까지 받았다. 인기, 명성, 존경까지 얻었으면 다음엔 무엇이 뒤따르겠는가? 바로 권력이다. 

 

인기, 명성, 존경 그리고 권력까지

 

지미 새빌은 폭발적이고 안정적인 인기와 명성을 바탕으로 자선사업을 벌였고 꾸준한 자선사업으로 기사 작위를 받기에 이른다. 그 전부터 영국의 핵심 권력층과 두터운 신뢰를 쌓았는데, 행정부의 수장 대처 총리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왕실에선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특히 친했다고 한다. 그녀의 소개로 찰스 왕세자와도 특별한 관계를 쌓은 건 물론이다. 

 

특히 지미 새빌의 기사 서임을 밀어 붙여서 임기 마지막 해에 성공시킨 대처 총리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은 지미 새빌의 지극히 개인적인 자선 사업 모양새가 자신의 신조인 신자유주의 노선에 완벽히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가 하면, 모든 영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던 지미 새빌로선 핵심 권력층과 친하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지미 새빌이 연설문 수정이나 정책 결정 방향에 지대하다 못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보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이쯤 되면 영국에서 지미 새빌을 대적할 자 또는 건드릴 자는 아예 없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일반 대중부터 고위급 정치 인사들까지 누구나 지미 새빌과 가까이 지내고자 혈안이었다. 한없이 좋은 이미지였던 그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 자체가 좋은 이미지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죽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 어떻게든 지미 새빌을 지우지 못해 혈안이 될 것이었다. 

 

역사적인 슈퍼스타의 완벽한 몰락

 

2011년 10월 29일 지미 새빌이 죽고 40여 일 후인 2011년 12월 7일 BBC의 탐사 프로그램 <뉴스나이트>으로 지미 새빌의 성범죄 사실이 낱낱이 드러나는 폭로가 있을 예정이었지만, BBC가 하필 지미 새빌 헌정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는 이유로 <뉴스나이트> 방송을 취소해 버린다. 그리고 10여 개월 후 BBC의 라이벌 ITV에서 <폭로: 지미 새빌의 다른 면>으로 방송되며 폭로되었고 이 파장은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다. 지미 새빌은 거의 모든 영국인을 수십 년간 속여 왔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그를 향한 의혹과 소문을 둘러싸고 문제제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지미 새빌은 교묘히 빠져나갔다. 수사가 중지되기도 했고 거액의 고소로 맞서기도 했다. 그러니 그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알 터였다. 그의 거대한 인기와 명성과 권력 때문에 실체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와 함께 50년 넘게 거대한 인기를 함께한 'BBC'도 한통속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영국을 대표하는 신뢰받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BBC는 몇 년간 내사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 지미 새빌은 BBC에서 80여 명을 성추행하고 성폭행했다. 몇몇 관계자가 그 사실을 알았지만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지미 새빌은 1970년대부터 자선 사업을 겸해 이곳저곳 병원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소녀 환자들을 추행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직접 현장을 봤다고 경찰에 진술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미 새빌은 450명에 달하는 피해 아동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 심지어 조카딸에게도 성추행을 일삼았다. 너무나 엄청나서 오히려 별다른 감흥이 없을 정도인데, 인류 역사에 남을 만한 성범죄를 저지른 건 분명하다. 그가 살아생전 누구도 해내지 못할 자선 사업을 쉬지 않고 벌인 건, 살아생전 악의 화신처럼 행한 아동 성범죄를 덮어 보려는 치졸하고 치밀한 계획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을 때, 내가 비록 악마같은 짓거리를 행했지만 천사처럼 자선도 행하지 않았냐고 항변하려고 말이다. 말같지도 않은 항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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