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진 속의 소녀>
1990년 4월 늦은 밤, 미국 중부 오클라호마주의 오클라호마시티 한적한 도로 옆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금발 머리의 젊은 여자로,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보냈지만 오래지 않아 사망한다. 진찰해 보니 몸에 오래된 멍과 상처가 있었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남편 클래런스 휴스가 오더니 그녀의 이름은 토니아 휴스고 털사에서 스트리퍼로 일하며 마이클이라는 어린 아들이 있다고 했다. 한편, 토니아의 스트리퍼 동료들은 친모를 찾아 전화로 알렸는데 그녀가 말하길 딸은 20년 전에 죽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럼 그녀는 누구일까?
토니아가 죽고 클래런스의 손에 맡겨진 마이클,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동료들은 마이클을 클래런스에게 맡겨 둘 수 없었다. 하여, 사회 복지국에 의해 마이클은 엄마가 죽은 지 하루만에 오클라호마주 촉토에 있는 위탁 가정으로 보내졌다. 2살 생일 직후였다. 마이클은 잘 성장해 갔지만 종종 아빠를 만나러 가야 할 때면 치를 떨며 싫어했다. 와중에 DNA 검사를 통해 클래런스가 마이클의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이클은 클래런스를 만나러 가지 않아도 되었고 새로운 가족과 함께 편히 지내면 될 것이었다.
1994년 9월 12일, 한 남자가 숲속 나무에 묶여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마이클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이었는데, 클래런스가 학교에 처들어와선 총으로 교장을 위협해 마이클과 함께 납치한 것이었다. 그 후 교장은 숲속 나무에 묶어 놓고 마이클만 데리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사건은 FBI의 손에 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클래런스 휴스는 프랭클린 플로이드였다. 그는 납치, 강도, 폭행, 강간, 탈주 등을 실행에 옮긴 범죄자였고 수많은 가명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출소 후 보호 관찰 중에 말 없이 사라져 17년 동안 도주 중에 있기도 했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사진 속의 소녀>는 기구하고도 기구한 일생을 보낸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구하다는 말로 그녀의 일생을 오롯이는커녕 조금도 표현해 낼 수 없는 건, 그녀의 삶이 척박하고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다. 그 짧은 생을 일별해 보면 가슴 아프기 짝이 없다. 도대체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작품은 그녀, 그러니까 토니아 휴스로 알려진 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녀의 살아생전 동료들이 그녀의 친모에게 전화해 보니 '토니아 휴스'는 20년 전 갓난아기 때 죽은 이름의 소유자가 아니었던가? 그럼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의 진짜 이름은? 곧 그녀의 고등학교 절친이었던 제니가 증언한다. 그녀는 '샤론 마셜'이었다. 또한 1984년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조지아주 포리스트파크에 있었다. 오클라호마주는 동남쪽 끝에 있고 조지아주는 중남쪽에 위치해 있다.
샤론은 외모와 능력 면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특출났는데, 따돌림 받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성품까지 완벽했던 것이다. 그녀는 조지아 공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말할 수 없이 행복해 했다고 제니가 전한다. 하지만 샤론은 임신을 하고 말았고 조지아 공대를 갈 수 없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야 했는데 대학교까지 가면 아버지를 돌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비참한 인생의 시작
한편, 토니아가 죽은 후 마이클을 납치한 클래런스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는데 제니가 말하길 그들은 부부 사이가 아니고 부녀 사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건 또 무슨 얘기일까? 클래런스 휴스는 원래 워런 마셜이었고 토니아 휴스는 원래 샤론 마셜이었는데, 이름을 바꾸고 1989년 뉴올리언스에서 결혼한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어야 했을까? 거기엔 역겨운 사연이 도사리고 있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샤론 마셜, 그러니까 본명 수잰 세바스키의 부모가 결혼해서 그녀를 낳고 이혼한 후 엄마가 홀로 아이들(아이가 셋 있었다)을 키울 수 없어 사회 복지국에 도움을 청하기에 이른다. 교회를 찾은 수잰의 엄마 샌드라, 그곳에서 어느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하지만 남자는 결혼 직후 본색을 드러내고 아내를 위협했다. 하루는 샌드라가 아기 기저귀를 사려다가 부도수표를 내는 바람에 한 달간 철창 신세를 졌는데, 그 사이에 남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 버렸다. 그리고 두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수잰만 데리고 갔다.
수잰을 데리고 간 샌드라의 두 번째 남편이 바로 워런 마셜이자 클래런스 휴스이자 프랭클린 플로이드라는 자다. 샌드라는 살아 있는데 당시를 후회스럽게 회고하고 있다. 괴물로부터 아이를 지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수잰이 사라졌을 때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사라진 수잰보다 눈앞에 있는 두 아이라도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래도 정식으로 결혼까지 한 남자가 데리고 간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을까? 비참한 한 인생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루밍 성범죄의 전형
클래런스는 법적 아버지로 수잰을 15년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착취할 대로 착취했다. 그는 그녀를 샤론 마셜로 개명시키고 자신도 워런 마셜로 개명해 겉보기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부녀 사이로 탈바꿈했다. 항상 총과 칼을 소지한 채 샤론을 육체적·정신적으로 협박해 성폭행을 일삼았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그루밍 성범죄의 전형이다. 너무도 어린 시절부터 육체적·정신적으로 길들여졌기에 샤론으로선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워런은 샤론이 아이를 낳으면 입양 보내 돈을 챙기는 한편, 영민하고 예쁜 외모의 샤론이 대학을 가지 않고 스트리퍼로 일하며 몸을 팔게끔 종용하기도 했다. 샤론의 절친 제니가 놀러왔을 때는, 총으로 위협해 제니와 샤론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든 후 제니가 보는 앞에서 샤론을 강간했다. 그리고 주지한 바와 같이 워런은 딸 샤론과 결혼까지 한다. 가해자의 역겹기 짝이 없는 행위들은 죽음으로도 사죄하기 힘들 것이고, 피해자의 끔찍하지 그지 없는 삶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받기 힘들 것 같다.
많은 범죄 다큐멘터리의 시선이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향하는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가해자의 이야기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일 테다. 그런 반면, 이 작품의 시선은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향하는데 단순히 피해자의 이야기가 도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자신은 힘겹게 살아갔지만 그녀가 남긴 유산은 많은 이에게 남겨져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입양 보내야 했던 친딸이 그녀를 오롯이 이해한 채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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