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씨 비스트>
바다에 인간을 산 채로 잡아 먹는 괴물이 사는 시대, 인간 세계에서는 바다 괴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을 최고의 영웅으로 칭송한다. 제이콥은 최고의 사냥꾼들이 총집합한 인에비터블호의 차기 선장감으로 맹활약한다. 최강의 바다 괴물 레드 블러스터를 잡고자 크로우 선장 이하 모든 선원들이 똘똘 뭉쳐 항해하던 중, 블러스터의 움직임을 포착하지만 뒤에 있는 다른 배가 브리클백이라는 바다 괴물에게 습격당해 위기에 처한다. 인에비터블호는 다른 배를 구하고 브리클백을 죽여서는 뿔을 잘라 귀환한다.
인에비터블호를 성대하게 맞이하는 시민들, 하지만 왕실의 분위기는 이상하다. 왕과 왕비가 말하길, 인에이터블호는 블러스터를 잡는 임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었다. 하여, 왕실 제독이 이끄는 배가 직접 블러스터를 잡을 거라고 선포한다. 크로우 선장이 발끈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으려던 찰나, 제이콥이 나서서 결과가 어떻든 왕실에 좋을 대결로 무마시킨다. 왕실 제독의 배보다 사냥꾼들의 인에비터블호가 먼저 블러스터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달라는 것이었다.
바다 괴물 사냥꾼으로서의 자존심과 명예 그리고 생존을 위해 블러스터를 잡고자 항해를 시작하는 인에비터블호, 얼마 가지 않아 사냥꾼의 여식으로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던 소녀 메이지가 몰래 배에 탑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이콥은 반대하지만 크로우 선장은 찬성한다. 얼마 가지 않아 블러스터와 맞딱뜨리는 인에비터블호, 하지만 역시 최강의 바다 괴물이다. 순식간에 위기에 처하고, 가까스로 인에비터블호는 살아남지만 제이콥과 메이지는 블러스터에게 먹히고 만다. 과연, 그들의 운명은?
넷플릭스에 입력된 디즈니의 DNA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20년 넘게 몸담으며 <뮬란> <곰돌이 푸> <주먹왕 랄프 1, 2> <주토피아> <겨울왕국 1, 2>에 관여하고,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에 빛나는 <볼트> <모아나> 그리고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수상에 빛나는 <빅 히어로 6>을 연출한 '크리스 윌리엄스'가 넷플릭스로 적을 옮겨 내놓은 첫 작품이 <씨 비스트>다.
<씨 비스트>는 2시간가량 되는 애니메이션 치고 긴 편인 러닝타임 동안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이야기가 수려하고, '인간과 비인간 간의 우정' '미지와의 조우' '만들어지는 가족' '만들어진 역사' 등의 꽤 수준이 있는 소재들이 인상 깊으며,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든 무조건 멈춰야 한다'라는 전인류적인 아니, 전생물적인 평화 메시지를 확고하게 전하는 작품이다.
아이가 보면 너무나도 재밌어 할 것 같은 것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를 사실적으로 그렸기도 하거니와 바다에서의 전투 장면도 박진감 넘치고 한 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서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꿔 가는 모습 등이 생각거리를 던져 주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어른이 보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는 것이, 이야기 전개가 식상한 듯하지만 매우 매끄럽고 영화가 던지는 소재와 주제 등이 상당히 고차원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적 '바다 괴물'이 알고 보니?
인간에게 해만 끼치고 인간을 다치게 하며 인간을 산 채로 잡아 먹는 등 완벽한 적으로 너무나도 완벽한 '바다 괴물'이 알고 보니 순하고 착하다는 설정의 이야기는 그동안 꽤 많이 봐 왔다. 다분히 인간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선을 넓혀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메시지의 일환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제이콥, 메이지 콤비와 레드 블러스터의 조우는 전혀 이질감이 없다.
한편, 인간은 미지의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인간으로선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알기 힘든 바다 생물이 대표적일 텐데, 바다 괴물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최강의 바다 괴물이라 일컬어지는 레드 블러스터와 눈앞에서 조우하는 건, 두려움의 끝이자 친밀감의 시작이라 하겠다. 미지와의 조우는 많은 걸 변화시킬 수 있다.
극중에서 제이콥은 고아로 자랐고 메이지는 고아로 자라고 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을 거둬 기른 이를 향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제이콥에겐 인에비터블호의 크로우 선장일 테고 메이지에겐 보육원을 후원하는 왕과 왕비일 테다. 그런데 믿기 힘든 모험을 거치며 진실을 알게 되고 그들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게 된 제이콥과 메이지는 서로에게 의지해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제이콥과 메이지가 모험을 거치며 알게 된 진실은 왕국의 모든 이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을 테다. '만들어진 역사'라니, 모두가 어렸을 때부터 익히 알았던 씨 비스트와 인간 사이의 이야기 골자가 모두 거짓이라니, 씨 비스트가 먼저 인간 세상을 습격해 어쩔 수 없이 인간이 반격해 씨 비스트를 죽이려는 과정에서 인간도 다치고 죽었던 것이라니 말이다. 제이콥 등 바다 괴물 사냥꾼은 왜 목숨 걸고 바다에 나가야 하는 것이고, 메이지의 부모님은 왜 죽었어야 하는가? 근본적인 물음에 가닿지 않을 수 없다.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변화
<씨 비스트>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바다 괴물에게 목숨을 잃은 부모님을 둔 메이지의 변화다. 그녀는 바다 괴물 사냥꾼을 절대적인 영웅으로 생각하며 그들처럼 되는 게 꿈인 소녀이지만, 직접 바다 괴물과 조우하고 바다 괴물과 함께 모험을 겪으며 완전히 달라진 심적 변화를 체험한다. 길진 않지만 그동안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변화지만, 그녀는 받아들인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변화된 양상이야말로 올바른 것이라고 확신하곤 사람들한테 퍼트리기로 마음먹는다. 물론, 그 전에 태생 사냥꾼 제이콥을 설득시키는 게 가장 어려웠을 테다. 또한, 인간이라면 치를 떨 게 분명한 레드 블러스터를 설득시키는 것도 어려웠을 테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이가 가지는 최고의 무기인 선입관이나 차등 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으로 인간 어른과 바다 괴물 모두를 설득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라서 보여 줄 수 있는 이야기였고 전할 수 있는 메시지였다. 어른 대상이었으면 메시지를 이렇게 대놓고 드러내지 못해 꽁꽁 숨기거나 애둘러 보여 줬을 텐데 말이다. 덕분에 아이도 청소년도 어른도 모두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고 생각 거리도 풍부하게 전해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애니메이션이라면 정녕 언제든 대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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