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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한때 뿌리내렸던 그곳이 사라질 때 <봉명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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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봉명주공>

 

다큐멘터리 <봉명주공> 포스터. ⓒ시네마달

 

1973년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에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반포주공아파트'라는 한국 최초의 주공아파트 대단지를 지은 후 전국적으로 주공아파트가 무수히 지어졌다. 고로 1980년대까지 지어진 주공아파트를 '1세대 주공아파트'라고 명명할 수 있겠는데, 서울을 비롯해 여전히 전국적으로 상당히 남아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의 '봉명주공' 1, 2단지도 전국의 수많은 주공아파트 중 하나로, 각각 1983년과 1985년에 지어져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2022년 6월 현재 1단지는 철거가 완료되어 '청주 SK뷰 자이'로 재건축될 예정이고 2단지는 재건축 계획만 잡혀 있는 상태다. 사라져 갈 운명의 아파트, 아파트를 터전으로 살아온 이들의 운명은 어디를 향할까. 

 

다큐멘터리 영화 <봉명주공>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봉명주공아파트'가 주인공이다. 재건축으로 사라진 또는 사라질 아파트, 그리고 그런 아파트와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주력한다. 여기서 '사람'이 아니라 '것'이라고 한 건, 이 작품이 보여 주고 또 전하고자 하는 바가 아파트 또는 사람 또는 환경 요소 개개가 아니라 총체적인 의미에서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재건축으로 사라질 것들을 담다

 

2020년 봄, 봉명주공아파트 단지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사전에 약속된 진행 절차대로, 봄이 되기 전 모두가 이주를 마쳤다. 우뚝선 거대한 나무가 한순간 잘려나가 쓰러져 버리니, 지난 40여 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고 하는 것 같다. 충분히 섭섭해하고 지난 시간과 인사를 나눴다고 하지만 옛것이 자취를 감추는 모습에 허망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기도 하다. 

 

시간을 약간 거슬러 올라 2019년 여름, 이주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이다. 단지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자연 환경이 기가 죽지 않았으며 생기 있고 조화롭게 각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머지 않아 이곳은 지금의 모습이 완전히 사리지고 완전히 다른 것들과 사람들이 대체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봉명주공>은 사라질 것들을 카메라에 담는 데 여념이 없다. 자연 환경 조성의 1등 공신이라고 할 만한 식물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고 동물들의 모습과 동물들이 내는 소리 그리고 아파트, 마지막으로 사람들이다. 사람과 동물은 하다 못해 다른 곳으로 갈 수야 있지만, 식물은 뿌리째 뽑아서 옮기지 않는 이상 베어지고 파헤쳐질 것이다.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들

 

재개발·재건축되어 어쩔 수 없이 터전을 옮겨야 하는 일련의 모습이 결코 남 일 같지 않다. 1980년대 후반에 지어진 빌라에서 30여 년 동안 살았는데, 지금 그 동네에 가 보면 근처 상당수가 재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섰고 남은 빌라들도 대다수 재개발이 시행·준비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몇 년 전에는 역시 8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아파트에서 산 적도 있는데 그 아파트는 현재 재건축이 확정되었다. 

 

재개발·재건축 하면 경제와 정치가 가장 앞에 선다. 그 다음이 그곳의 주민들이다. 그런데, <봉명주공>은 한 발 더 나아가 그곳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고 생각했어야 하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선이다. 신선하거나 참신한 게 아닌, 그렇다고 을씨년스럽다거나 황폐한 게 아닌, 거리를 두면서도 따뜻한 시선이다. 

 

봉명주공 단지의 주민들도 다수 나온다. 재개발·재건축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으시는 분,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아 불안하신 분,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전하시는 분, 40여 년 동안 이 집 덕분에 아들딸 기르며 잘 살아왔다고 고마워하시는 분 등 그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니, 신기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왠지 모르게 찡해진다. 

 

봉명주공을 떠받든 나무들

 

작품이 화면에 가장 많이 그리고 오래 담은 건 다름 아닌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이다. 젊은이 무리가 와서 봉명주공 단지의 몇몇 식물을 가져가기도 하는데, 아니 살려가기도 하는데 그냥 놔 두면 머지 않아 삽과 곡괭이와 포크레인 등으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봉명주공만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단지 안이 마치 조그마한 수목원 또는 식물원 같다. 참으로 다양한 식물이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봉명주공의 상징처럼 그리고 봉명주공을 떠받들 듯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아름드리 나무들은 몇몇만 뿌리째 뽑혀서 어디론가 보내고 대부분은 뿌리 위에서 잘라 버린다. 짙은 초록색을 자랑하는 대다수 식물도 마찬가지일 텐데, 잘라진 나무는 다시 촘촘히 나뉘어 나름의 쓰임을 얻고 땅속의 뿌리는 뽑혀서 버려지든 그 위를 시멘트로 덮어 살 수 없게 뻗어나갈 수 없게 만든다. 

 

재건축의 과정을 대략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여 줌에도 전에 없는 충격을 받았다. 이 작품은 결코 시사고발이나 사회비판적인 시선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 작품에 여백도 굉장히 많아,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시선과 여백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고 기억하고 또 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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