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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제2차 세계대전 향방을 결정 짓는 작전의 막전막후 <민스미트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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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민스미트 작전>

 

영화 <민스미트 작전> 포스터. ⓒ스튜디오 산타클로스

 

제2차 세계대전이 현대 인류의 많은 걸 뒤바꿔 버린 만큼 여전히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나오는 영화로도 그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제2차 대전을 다룬 영화는 그동안 수없이 많이 나온 바, 이제는 조금씩 추세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무슨 말인고 하면, 전투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딛히는 이야기가 아닌 현장 밖에서 또는 현장을 둘러싸고 이뤄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부쩍 늘어난 것이다.

 

이를 테면 최악의 오폭 비극을 다룬 <폭격>, 뮌헨 회담의 막전막후를 다룬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 제2차 대전의 잊혀진 전투인 '스헬더강 전투'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더 포가튼 배틀>, 제2차 대전 아닌 제1차 대전 당시 수많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여정을 떠난 졸병의 이야기를 다룬 <1917>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최근 2년 동안 나온 전쟁 영화다. 15년여 전에는 독일 내부의 히틀러 암살 작전을 다룬 <작전명 발키리>도 나왔다. 

 

영화 <민스미트 작전>도 위의 영화들과 결을 같이 한다. 총알이 빗발치고 폭탄이 터지고 살점이 솟구치는 전장이 아닌, 목숨에 위협을 느낄 만한 요소가 전혀 없는 안전한 곳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전쟁'을 다뤘다. 그들이 행하려는 건 수만 명의 목숨을 좌우하고 전쟁의 성패까지 달려 있는 너무나도 중요한 작전으로,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 

 

히틀러를 속여라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3년 1월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연합국 정상들은 당해 7월 10일 시칠리아 침공을 합의한다. 영국의 주장이 다분히 관철된 침공으로, 처칠으로선 최소한의 피해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야 했다. 비밀기구 20인위원회가 열리고 M15 소속 공군 중위 찰스 첨리가 기만 작전을 제안한다. 해군 정보부 소속 이웬 몬태규 소령이 공조해 극비로 '민스미트 작전'에 돌입한다. 

 

작전의 골조는 1급 기밀문서를 가지고 사망한 영국군이 히틀러에까지 가닿아 연합군이 시칠리아 아닌 그리스를 침공할 거라고 오판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첨리와 몬태규는 오염된 노숙자 시신을 찾아 윌리엄 마틴 소령이라는 이름과 신분을 부여한다. 그러곤 그에게 누구도 가짜인 걸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치밀하고 정교한 이야기를 부여한다. 

 

몇 개월 동안 준비한 끝에 결국 내부 결재를 받아 내고 본격적으로 작전을 시행하려는데, 작전에 합류한 M15 소속 진 레슬리를 둘러싼 두 요원의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된다. 첨리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정작 진은 몬태규와 잘 지내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상부에서는 몬태규의 동생이 러시아 스파이일 수 있다고 의심해 첨리로 하여금 몬태규를 사찰하게 한다. 몬태규도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과연, 작전은 작전대로 잘 진행되면서 몬태규와 첨리와 진을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도 잘 풀릴 것인가?

 

작전 안팎의 상당한 긴장감

 

<민스미트 작전>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정녕 실화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작전이 통한다고?' 하는 의심 어린 눈초리 때문이 아닌, '어떻게 이런 작전을 생각해 내선 실제로 옮길 수 있었을까?' 하는 선망 어린 눈길 때문이다. 족히 수만 명의 목숨을 살리고 전쟁의 향방까지 결정 짓고자 치밀하고 치열하게 작전을 입안하고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한 결과를 알기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타 보통의 첩보 영화에서는 관객이 상황의 전모를 대략이나마 알고 있다. 첩보의 두 주체 또는 주체와 객체가 영화의 주인공급으로 나오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롯이 작전을 펼치는 영국군의 입장만 나오고 또 대변할 뿐이다. 독일군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알 도리가 없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실화이기에 이미 과정과 결과까지 훤히 알고 있음에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의 답답함 어린 긴장감이 상당하다. 실화는 실화고 영화는 또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영화에 또 다른 긴장감을 불어넣는 건 다름 아닌 작전의 핵심 수행자 세 명의 관계 형성인데, 작전은 작전대로 프로답게 수행하면서도 사람인지라 미묘하게 흐르는 감정의 파동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 감정의 중심엔 '호감 이상의 어떤 것'과 '의심'이 자리잡고 있다. 몬태규와 진 사이에 흐르는 호감 이상의 감정을 바라보는 첨리의 의심 어린 눈초리 말이다. 그 또한 긴장감이 상당하다. 

 

왜 이제야 찾아왔나

 

한편, 이 흥미롭고 놀랍고 위대한 작전의 초안이 되는 '송어 메모'의 주인공을 전 세계인이 익히 알고 있으니 바로 '이언 플레밍'이다. <007 시리즈> 원작자로 유명한 그 말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밀정보국 M16 소속 장교로 영화에선 민스미트 작전의 총책임자이자 해군 정보부장·정보국장인 존 갓프리의 부관으로 나온다. 윈스턴 처칠도 나오지만 이언 플레밍이 반가운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007 시리즈>가 실제로 그의 정보장교 시절에서 모티브를 따왔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눈여겨 봐야 할 게 있다면, 감독과 배우들이다. 존 매든 감독 하면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단연 맨 앞에 오는데, 1998년작으로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장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7개 부문을 휩쓴 바 있다. 여러모로 논란이 많았으나, 작업은 무난히 좋은 편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콜린 퍼스가 몬태규 역으로 중심을 잡고 영국의 두 명배우 매튜 맥퍼딘과 켈리 맥도날드가 각각 첨리와 진 역을 맡았다. 연출과 연기가 이 영화의 또 다른 미덕이라 하겠다.

 

왜 이제야 만들어져 찾아왔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흥미진진한 실화 바탕의 영화 <민스미트 작전>, 조금 긴 러닝타임 때문인지 산만한 부분도 있었고 감정선이 흩트러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재밌게 감상하기에 충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작전들의 막전막후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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