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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흥행과는 거리가 먼 중년 여성 감독이 건네는 말들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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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오마주>

 

영화 <오마주> 포스터. ⓒ트윈플러스파트너스

 

흥행과는 담을 쌓은 영화 감독 지완, 이제 막 개봉한 세 번째 영화 <유령 인간>의 관객수 20만 명이 꿈이지만 1000만 명 돌파가 우스운 영화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집에는 대학생 아들 보람이 있는데 엄마 영화는 재미없다며 보지도 않는다. 남편 상우는 아내의 영화에 관심 있기는커녕 돈 좀 벌어 오라고 지완을 나무란다. 

 

지완은 우연한 기회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큰 돈은 안 되지만 굉장히 의미 있는 일로, 한국 제2호 여성 감독인 홍재원 감독의 첫 번째 작품이자 1962년작 <여판사>의 소실된 사운드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지완은 <여판사>의 대본을 찾는 한편 홍재원 감독의 여식을 찾아가 홍재원 감독의 1962년 일기를 받아온다. 거기에 오래된 사진이 있었다. 

 

<여판사> 대본을 입수한 지완, 하지만 대본과 영상이 맞지 않는다. 대본에 있는 내용이 오롯이 영상에 있지 않는 걸 보니 편집 과정에서 삭제한 것 같다. 그런데 맥락이 영 맞지 않는다. 소실된 사운드뿐만 아니라 소실된 내용도 복원하는 게 맞지 싶다. 지완은 오래된 사진 속 세 여인을 찾아 여정을 떠난다. <여판사>를 제대로 복원시킬 수 있을까? <유령 인간> 흥행은 어떻게 될까? 그녀는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을까? 

 

영화 <오마주>가 오마주하는 것들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존경'의 의미를 갖는 단어다. 일반적으론 오마주의 대상이 되는 작품의 핵심 요소나 표현 방식, 매력 등을 가져와 활용해 원작을 향한 존경심을 표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다분히 주체가 오마주를 행하는 당사자가 아닌 오마주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이라는 점에서 표절 따위와는 결이 180도 다르다고 하겠다. 

 

신수원 감독의 신작 <오마주>는 한국 제1호 여성 시나리오 작가이자 한국 제2호 여성 감독, '환갑이 지나도 다람쥐처럼 영화계를 누비고 다닐 거'라는 예상과 달리 나이 오십도 못 되어 현장을 떠난 홍은원 감독을 향한 '오마주'다. 동시에 이젠 사운드도 부분부분 소실되고 필름도 부분부분 소실되어 버린 그녀의 첫 번째 연출작 <여판사>(1962)를 향한 '오마주'다. 

 

영화는 홍은원 감독이 60년 전에도 힘겨워했지만 여전히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힘든 이 시대 여성 영화인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한편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잘려나간 필름과 소실된 사운드처럼 사라진 것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하자면, '자넨, 끝까지 살아남아'라고 말이다. 

 

홍은원, 지완, 그리고 신수원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는 발굴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채 10년도 되지 않은 2015년에 우연히 발굴되어 2016년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공식으로 상영되었다. 하지만, 이후 그녀의 이름과 그 영화의 이름이 일반대중으로까지 가닿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 영화 <오마주>가 홍은원(영화 속 '홍재원')이라는 이름과 그녀의 영화 <여판사>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오마주> 속 중년 여성 감독 지완은 홍재원 감독의 삶에 동질감을 느낀다. 홍재원 감독처럼 지완 역시 세 번째 영화를 찍고 더 이상 영화판에 있기 힘들어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는데, '되'와 '돼'를 헷갈리는 지경이 되어 버려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할 수가 없다.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버티는 게 무슨 소용인가? 꼭 영화여야만 할까?

 

지완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홍재원 감독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신수원 감독도 시공간을 뛰어넘어 영화 속 지완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1967년생 중년 여성 감독 신수원, 꾸준히 좋은 작품을 내놓으며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타는 등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아쉽게도 흥행에서는 큰 빛을 보고 있진 못하다. 아무리 독립영화라고 하지만 웬만큼 돈이 많아야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게 영화판 아닌가. 신수원 감독은 자신의 처지 또는 감정을 영화에 녹아 내며 영화 속 지완을 응원하고 나아가 60년 전 홍은원 감독에게 존경을 전한다. 

 

소실된 사운드와 잘려나간 필름의 의미

 

영화 <오마주>가 오마주하는 건 비단 영화인뿐만이 아니다. 영화 그 자체도 오마주하고 있는 바, <여판사>의 소실된 사운드와 잘려나간 필름의 존재를 통해서다. 소실된 사운드는 대본을 찾아 성우가 채워 넣으면 큰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지만, 중요한 장면이 대본에는 있지만 영상에는 없는 건 영화인으로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많지 않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직접 발품 팔아 사라진 필름을 찾으려는 지완, 결단코 찾아 내 홍재원 감독이 원래 만들고자 했던 <여판사>를 오롯이 살려 내는 건 다름 아닌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같은 여성 감독이라는 동질감으로서뿐만 아니라 여자가 담배 핀다고 잘려 내진 장면을 살려 내는 건, 그녀가 앞으로 계속 '흥행과는 거리가 먼 중년 여성 감독'으로 버티고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겠다. 

 

누구나 힘든 건 매한가지다. 각자 살아오고 살아갈 환경에서 나름의 말 못할 고충들을 안고 있다. 영화 <오마주>는 신수원 감독이 우리 모두를 향해 보편적 메시지 '그러니까 살아'를 전하는 메신저와 다름 아니다. 물론 홍은원 감독과 그녀의 영화 <여판사> 그리고 이 시대 영화인들과 사라져 버린 필름들을 향해 존경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와닿는 건 영화 속 지완의 평범한 일상이겠다. 그녀는 조금씩,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가고 또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