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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그녀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이유 <더 노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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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더 노비스>

 

영화 <더 노비스> 포스터. ⓒ영화사 진진

 

대학에 갓 입학한 '알렉스'는 조정부에 가입한다. 그녀는 가장 취약한 과목인 물리학 시험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두세 번 문제를 풀 정도의 열정을 가졌는데, 조정부에서도 그 열정을 분출하기 시작한다. 조정부 특성상 연습을 로잉머신으로 하는데, 선생님이 당부하는 '팔, 상체, 다리'를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이다. 

 

조정부 신입에는 에이스가 있는데, 고등학교 때 다른 두 종목에서 주전이었던 '에이미'로 1군에 들어가 전액 장학금 타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얘기를 듣고 이번엔 '장학금'을 되새기는 알렉스다. 그녀는 그야말로 눈물 콧물 쏙 빼는 건 물론 손에 피가 나고 토하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로잉머신을 탄다. 에이미를 넘는 한편 1군에 들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알렉스는 1군과 함께 실전 훈련에 돌입한다. 지금 하는 훈련보다 훨씬 힘들고 고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알렉스는 시켜만 주면 뭐든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물론 에이미도 함께였다. 그런데 정작 에이미나 알렉스보다 훨씬 더 실력 좋은 신입 레이첼이 있었다. 그녀는 돈 많은 집안의 딸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지녔는데, 에이미나 알렉스처럼 노력파가 아닌 천재파였다. 에이미한테서 그녀의 얘기를 듣고 알렉스는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알렉스는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초보 경주마처럼

 

열정과 노력,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보완적 상관관계에 있는 것들이다. 열정 어린 노력으로 얻은 실력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테다. 하지만, 제아무리 좋은 것도 너무 과도하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할 때도 있듯이 열정 어린 노력이 너무 과도하면 광기 어린 강박의 형태를 띌 수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열정적으로 노력하는데 목표 지점에 가닿을 수 없을 때 더욱 그럴 것이다.

 

영화 <더 노비스>는 광기 어린 강박의 형태로 나타난 어느 대학 신입생의 과도한 열정의 노력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그녀는 주위에서 아무리 말려도 또 도와 줘도 눈과 귀를 닫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 목표를 정하고선 경주마처럼 오직 앞만 보고 전력질주하는 것이다. 뒤쳐지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흔히들 말하는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오직 경쟁 상대를 이기기 위한 싸움이다. 

 

제목 'The Novice'는 초보자, 풋내기, 초보 경주마 등의 뜻을 갖는데, 이 영화에서는 즉 알렉스는 '초보 경주마'와 가장 결이 맞는 것 같다. 초보자 내지 풋내기가 갖는 열정적인 노력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경주마는 전역하기 전까지 오직 경주만을 위해 살고 부상으로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전역하면 말고기가 되어 버린다. 알렉스가 보이는 광기 어린 강박은 그녀가 스스로를 경주마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고선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것이다. 

 

자의적 강박에의 광기

 

영화 포스터에도 떡하니 보여 주고 있는 바, <더 노비스>를 두고 '조정에 관한 <위플래쉬>'라느니 '물 위에 펼쳐진 <블랙 스완>'이라느니 한다. 분명히 두 명작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최고를 향한 강박으로 한계를 뛰어넘는 광기의 노력에 집착하는 모습이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 노비스>는 두 영화가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다. 그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한계다. 

 

그 점이 뭔고 하니, 두 영화가 외부의 자극으로 강박에의 광기를 발산하는 것과 다르게 이 영화는 주인공 알렉스 스스로 강박에의 광기를 발산한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뭔가를 했을 때야말로 '진짜'라고 하는데, 알렉스는 스스로를 진심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래서 훨씬 더 무섭다. 그녀가 잘못된 방법과 신념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한껏 쫄깃하다. 

 

반면, 맥락이 잘 잡히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따라 '그녀는 도대체 왜 그렇게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을까?' 하는 물음이 따라다녔다. 알렉스가 직접 이유를 말해 주긴 했는데 썩 와닿진 않았다. 다른 모든 걸 제쳐 두고 '최고를 향한 강박으로 한계를 뛰어넘는 광기의 노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영화의 목적인 것 같았다. 그 자체가 스토리, 캐릭터, 분위기, 메시지, 미장센 등을 장악했다. 그러니 한계가 분명한 작품이라 하겠다. 

 

심재와 좌망에 관해서

 

강박으로 한계를 뛰어넘고자 집착하는 모습이든, 광기 어린 노력이든 타인의 자극에 의한 게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으니 문제될 건 없을 것이다. '너무 열심히 한다'고 뒤에서 은근히 욕을 할지언정 그 누구도 대놓고 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나친 강박과 집착과 광기는 다름 아닌 스스로에게 피해를 준다,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다. 

 

하여 알렉스에게 추천하고 싶은 수행 방식이 있다. 장자는 '심재'와 '좌망'이라는 이름의 수행 방식을 선호했다. 심재란 마음을 완전히 텅 비운다는 뜻이고, 좌망은 내가 나로부터 떨어져 나 자신을 관망하듯 바라본다는 뜻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자신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처럼 실천이 쉽진 않겠지만 지극히 맞는 말이고 꼭 해야 하는 바다. 알렉스가 타인의 자극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자극을 받아 강박에의 광기를 발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과연 에이미 같은 명명백백한 경쟁자가 없었다면 그녀가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였을까? 결코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결국 알렉스도 자의적이 아닌 타의적 자극으로 강박에 시달렸던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는지 완전히 또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알렉스를 응원한다. 영화 속 그녀나 현실 속 그녀가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을 만큼만 노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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