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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인간의 도리인가, 파렴치한 범죄일 뿐인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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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포스터. ⓒ(주)마인드마크

 

명문으로 이름 높은 '한음 국제중학교' 교장실에 학보모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영문을 모른 채 앉아 있는 그들, 곧 교장과 임시 담임 교사 송정욱이 들어온다. 교장은 '김건우'라는 학생이 같은 반 친구 4명의 이름이 담긴 편지를 송정욱에게 남긴 채 호숫가에서 의식 불명 상태로 발견되었고, 4명은 따로 모아 놓았다고 한다. 그는 송정욱을 통해 김건우의 편지를 읽게 한다.

송정욱이 읽은 편지는 일동을 경악시키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4명의 친구에 의해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도윤재, 박규범, 정이든, 강한결이었다. 각각 병원 이사장 도지열의 아들, 전직 경찰 치안감 박무택의 손자, 한음 국제중학교 학생부장의 아들, 접견 변호사 강호창의 아들이었다. 이들은 곧바로 대응에 나선다.

우선 가장 큰 파급력을 줄 건우의 편지를 없애는 게 중요했기에 교장을 시켜 송정욱에게서 편지를 빼앗는다. 그러곤 가해자인 자식들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입막음을 시킨다. 이후 이 사실이 일절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또 다른 결정적인 증거일 김건우의 핸드폰을 빼돌려 학폭에 관한 내용을 삭제시킨다. 급기야 건우가 죽지 않고 의식불명 상태로 계속 살아야 유리하다는 걸 알고는 도지열의 병원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건우는 세상을 뜨고 마는데... 과연 이 사건의 끝은?

 

학폭 영화의 모양새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 때문에 많은 영화가 개봉을 미루거나 OTT로 개봉했다. 하지만 여기 지난 4년여 동안 코로나가 아닌 별개의 이유로 개봉이 미뤄졌던 영화가 있다. 한 번 보면 잊힐 것 같지 않은 제목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도지열 역의 오달수 배우가 미투 논란으로 한동안 영화계에서 멀어져 있었고 공교롭게도 도지열의 아들 도윤재 역의 정유안 배우가 성추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며 개봉이 사실상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랬던 영화는 크랭크인한 지 5년 만에, 최초 개봉 예정된 지 4년 만에 정식으로 극장 개봉에 성공한다. 극장 개봉 한 달여 후엔 '디즈니+'에서 단독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오달수 배우의 논란이 내사 종결로 일단락되고 정유안 배우의 혐의도 경찰 조사 이후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채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가능한 개봉과 공개였지만, 영화 안팎으로 그리고 개봉 전후로 논란을 피해가긴 힘들 것이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학교폭력(학폭)'에 관한 영화의 모양새를 띄고 있다. 지독하고도 지독한 학폭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몸을 던진 학생, 그가 지목한 가해자들, 그리고 가해자들의 부모들이 주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여타 학폭 영화와 다른 게 있다면, 가해자의 부모가 영화를 끌고 가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보다 입체적인 영화가 되었고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욱더 분노하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가해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라는 입장이 많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가해자의 아버지

 

'사회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하는 짓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그 방법이라는 게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들을 없애 버리는 것인데, 교장을 회유(아니, 협박)해 유서가 될지 모를 편지를 뺏고 남의 핸드폰을 몰래 빼앗아 와서는 그야말로 직접 증거가 될 영상을 지워 버리는 파렴치한 범죄 행위까지 한다. 이게 가당키나 한 짓인지, 아무리 자식의 인생이 걸릴 만한 일이라도 눈살이 찌뿌려지지 않을 수 없다.

2500여 년 전 공자가 한 말을 되짚어 보자. <논어> 자로편 18장에서 섭공과 공자가 정직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데, 섭공은 아버지가 양을 훔쳤을 때 아들이 증언한 걸 정직이라고 하고 공자는 아버지가 아들의 죄를 숨겨 주고 아들이 아버지의 죄를 숨겨 주는 것 사이에 정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 공자의 말씀을 목숨보다 더 중요시 여겨 온 우리나라 전통에 비춰 봤을 때 아버지가 아들의 죄를 숨겨 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자 사회질서가 무너지지 않게 떠받드는 한 축이다.

하지만, 우린 실질적 법치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의 죄를 숨겨 주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어지러움보다 아버지가 아들의 죄를 숨겨 주고자 범죄를 저질러 생길 수 있는 어지러움이 훨씬 클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가해자의 아버지들은 아들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걸까. 추측건대, 아들을 최소 본인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요인과 본인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없다는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부정의 길들

 

영화가 학폭 가해자의 아버지 입장에서 서술되는 만큼 그들에게 더 다가가 보자. 소식을 처음 듣고 보인 반응은 내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부정이다. 내 자식을 내가 가장 잘 아는데, 그 착한 아이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응이다.

그런데 이내 옳지 못한 길, 정직하지 못한 부정의 길을 간다. 내 아들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선 결코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꽁꽁 감추고자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복잡다단한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이 지점과 맞닿아 있는 게 바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인 부정이다. 극중에서도 대사를 통해 비춰지는 바, 목숨을 걸어서라도 아들을 지켜 주고 싶은 게 아비의 심정이라는 것이다. 지켜 주는 방법이 범죄인 건 차치하고서라도 심정만큼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인간의 당연한 도리일 테다.

세 가지 부정의 면을 두루두루 보여 준 아버지의 상, 영화는 이 시대의 추악한 민낯을 보여 주는 대신 전통적인 사상에 입각한 아버지의 생각과 행동을 보여 준다. 시원하기는커녕 생각조차 하기 싫은 상황에 시종일관 맞딱뜨려 답답하기만 했지만 굉장히 신박한 설정이었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제목 또한 큰 몫을 차지했다. 정말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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