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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우주에서 신을 몰아낸다는 바람은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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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 없는 우주>


<신 없는 우주> ⓒ바다출판사

고백하건대, 나는 과거 교회를 다녔었지만 지금은 무신론자이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 무신론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의 존재는 믿지만 어느 종교에 귀의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신께 기도를 드린다. 추석쯤 되어 보름달이 뜨면 어김없이 소원을 빌기도 하고. 


앞으로 어찌될 지는 모르지만, 교회를 다니다가 말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하느님을 믿으면 천국을 가고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협박(?)하는 길거리 전도사들의 말 때문이다. 그들 딴에는 위한답시고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믿었던 신도 믿기 싫어질 판이다. 


반면 그리 듣기 싫지 않은 말도 한다. "신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와 같은 말이 그렇다. 사실 여부를 떠나 종종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낄 때가 있다. 물론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할 것이다. 신을 향한 믿음과 불신, 이것은 비단 이런 작은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거대한 논쟁이 되어 있었다.


창조론 vs 무신론


또 한 번 고백하건대,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유명한 책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를 아직 읽지 않았다. 1993년 초판 발행 이후, 리처드 도킨스를 세계적인 명사 반열에 올림과 동시에 리처드 도킨스로 하여금 창조론과 무신론(진화론) 논쟁 최전선 투사로 자리매김하게 한 이 책을 아직 보지 않았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내가 무식한 건지 진짜 책이 없는 건지, 창조론에 대한 정통한 책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쪽만 읽고 그것이 정답인 양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나름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던 내가 실수 아닌 실수를 저질렀다. "리처드 도킨스가 지구에서 신을 몰아냈다면, 빅터 스텐저의 이 책으로 우주에서 신을 몰아냈다."는 어마어마하게 도발적인 타이틀을 내세우며 출간된 <신 없는 우주>(바다출판사)를 읽게 된 것이다. 


막상 읽기 시작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바둑으로 치자면 아마 18급이 프로에게 도전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 책이 이전에 나왔던 무신론 책들보다 월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나의 머릿속에 든 지식과 정보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여하튼,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신을 철저히 검증한다. 


신가설의 부재 논증


저자는 증거의 부재 논증을 이용해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먼저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 존재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를 찾는다. 그런데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논증의 정확성을 위해서인지, 1장을 통째로 할애해 상당히 지루한 논증을 위한 논증을 설파한다. 자신이 얼마나 탄탄한 논리 위에서 논증을 진행하는지 보라는 식이다. 그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신의 문제에 대해 가설적인 모형을 세우고, 경험적 데이터와 대조하여 그 모형을 시험하는 과학적 과정을 적용해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논증을 하나 소개한다. 그것은 창조론파에서 신의 존재를 뒷받침할 때 쓰이는 가장 유명한 논증으로, 일명 '설계 논증'이라 한다. 우주, 특히 지구상의 생물은 상상할 수 있는 자연의 메커니즘으로 생겨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러며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기에, 신앙인들은 그 설명이 신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반박한다. 


"아무도 문제의 현상을 지금 당장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자연적으로 묘사할 수 없음을 보여 주지 못하는 한, 최소한 과학적 논증으로서는 그 자체로 실패작이다. 신은 과학이 자연적이거나 물질적인 과정들만을 근거로 해서는 현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없어서 그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증명되어야만 나타날 수 있다"(본문 속에서)


불쾌한 마무리 


저자는 비과학적인 종교의 주장을 과학적 논증으로서는 실패라고 말한다. 이는 어불성설이 아닌가? 로마에 가서 한국의 법을 들이대면 그게 맞는 것인가? 의식했는지, 저자는 여기에 대해 살짝 언급하고 지나간다. '과학이 모든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주장이 과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하는 주장과 논증 방법이 '종교 활동'을 포함한 일상 생활에서 흔히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종교에서도 자신의 논증 방법과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고 장광설을 펼친다. 저자의 논증 방법은 상대의 주장을 모조리 반박하면서, 또 자신의 방법이 과학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보는 내내 헷갈리게 하는 부분이었다. 


여기에 결정타로 상당히 불쾌한 마무리를 선사한다. 나는 이 책을 단지 창조론의 반대하는 무신론의 아주 객관적인 지표를 읽기 위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마무리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종교와 '아름다움'을 주는 과학이다. 


종교를 부정적으로 이용한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인지, 종교 자체가 나쁘다는 것인지 모호하게 표현한다. 아무리봐도 전자의 사례를 주로 들고 있는데, 결론은 종교가 나쁘다고 하지 않는가? 이어서 굳이 건들지 않아도 될 듯한 부분까지 파고든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삶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에 대한 논의. 내가 보기엔 이 주장에 대한 논의까지는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한 과학이 선사하는 영감과 아름다움. 역시나 종교가 선사하는 영감과 아름다움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이어서 처절히 부정하고 있다. 만약 종교에 비해서 과학이 좋지 않은 부분이 나오면, 물귀신 작전을 쓰기도 한다. 객관적이고 타당한 과학적 논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저명한 물리학자에게 말하기에는 심할지 모르겠지만, 극단적으로 말해서 길거리 전도사들이 말하는 바와 다른 게 무엇인지? 끝까지 과학이 자랑하는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호기롭게 시작해 빈약한 마무리를 보여준 책이다. 


신 없는 우주 - 6점
빅터 J. 스텐저 지음, 김미선 옮김/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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