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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야구에서 4할 타자는 왜 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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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백인천 프로젝트>


백인천 프로젝트 ⓒ사이언스북스

야구는 수많은 스포츠 종목중에서도 독보적인 기록 스포츠이다. 경기의 모든 측면에게서 기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름을 쪽 뺀 단백질 덩어리마냥 재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객관적이다 못해 야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 기록때문에 야구팬들은 야구에 열광하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는 투수와 타자의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시작되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크게 차지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야구하면 제일 먼저 미국 메이저리그가 떠오를 것이다. 1869년 시작되어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는 전 세계 야구를 선도하며 세계 최고 리그로 군림하고 있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진기록이 쏟아져 나왔고, 그럼에도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계속해서 기록은 경신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깨지지 않는 기록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그 중 야구팬들의 집중적 관심을 받고 있는 기록이 바로 '4할'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1941년 테드 윌리엄스가 기록한 0.406이,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원년인 1982년 백인천이 기록한 0.412가 마지막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약 8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4할 타자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 수많은 야구팬들이 그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하고 연구하기도 했고, 어느 정도 정설로 굳어진 설도 있다.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자기 관리 부실과 심리적 압박 등 타자의 기량 하락, 그리고 투수의 전문화와 기량 향상이 4할 타자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이다. 백인천만 보자면, 그는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에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선수이기 때문에, 원년 당시 실업야구 수준에 불과했던 한국 프로야구에서 충분히 4할을 쳐낼 수 있었다." 


4할 타자는 왜 사라졌는가? <백인천 프로젝트>


그런데 이 질문과 분석을 과학적으로 풀어보겠다고 나선 이가 있으니, 바로 유명한 뇌과학자인 '정재승' 교수이다. 그는 2011년 말에 느닷없이 트위터에 질문을 올린다. "한국 프로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왜 사라졌는지 연구하고 싶은데, 데이터를 어떻게 구하나요?"(49쪽)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연구는 '백인천 프로젝트'라 명명되고 58명의 야구팬들이 모여 4할 미스터리를 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1년여의 여정이 <백인천 프로젝트>(사이언스북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사실 4할 타자의 멸종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세계적인 진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에 의해서 그 시작과 끝을 봤다고 보면 된다. 그는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은 타자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야구의 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33쪽)하며, 미국 프로야구 통계를 모조리 분석해 결론을 이끌어냈고 관련된 책을 냈다. 그의 결론에 의하면, 4할 타자의 멸종은 타자 능력의 하락이나 투수 능력의 상승에 있지 않고 야구 선수들의 실력은 평준화될 것이라고 한다. 


즉, 끝없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은 계속해서 실력이 상승해 상향 평준화 되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준화된 타율은 0.260에 불과하다. 그런고로 0.400이상의 타율은 어쩌면 한계 너머의 먼 곳인 것이다. 반면, 0.100이하의 타율도 먼 곳에 속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굴드의 가설이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통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확히 들어 맞는 다는 것이다. 비록 역사는 1/5에 불과할지언정, 미국 프로야구의 통계와 마찬가지로 상향 평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초반에는 많은 4할 타자가 나왔다고 하는데, 한국 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에 빗대자면 아직 초반에 불과하니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이 남을 것이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 시작 때부터 설정된 완벽한 틀로 설명이 가능하다. 즉, 메이저리그에서 오랜 세월 최적화된 틀이 고스란히 전혀졌다는 것이다. 이는 곧 선수들의 평준화를 의미한다. 그래야만(팽팽해야만)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하는 책


자, 4할 타자의 미스터리를 풀려던 '백인천 프로젝트'는 끝이 난 모양이다. 책에서도 전체 1/10에도 해당되지 않는 30여쪽에서 연구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백인천 프로젝트'의 연구는 그렇게 2장 43쪽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더 이상 책을 볼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프로 야구에서 4할 타자는 다시 나오기 힘들다. 이것은 굴드 가설을 한국 프로 야구 데이터를 가지고 확인한 것이다."(본문 속에서)


그렇다면 3장부터 시작해 5장, 프롤로그까지 나머지 300쪽이 넘는 분량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고백하건대 이 부분부터 나는 책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 정확히는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3장은 야구팬이자 정치부 기자가 쓴 '백인천 프로젝트'의 전과정이다. 이미 연구 결과를 알아버린 이상, 큰 재미와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다음 4장은 과학 잡지 기자가 쓴 과학과 야구에 관한 글이다. 먼저 굴드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 '백인천 프로젝트'의 시민 과학 그리고 집단 지성에 관한 글로 이어진다. 그 다음은 야구 통계에 대한 자세하다면 자세하다 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알 필요는 없는 부분을 설명한다. 야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로써는 조금 지루했다는 점을 시인한다. 


그렇게 꾸역꾸역 5장에 도착하니, 전현직 선수들과의 인터뷰가 나온다. 4할에 가장 근접한 선수들. 그들은 모두 '4할 타자'의 가능성을 일축한다. 대부분 많은 경기 수와 함께 투수의 향상된 능력을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이어 야구 전문가들이 나온다. 그들이 하는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책은 끝이 난다. 5장이 자그만치 책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백인천 프로젝트'가 알고자 했던 4할 타자 미스터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직접적 관련은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역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책의 구성때문이다.  


'백인천 프로젝트'는 야구와 과학의 만남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4할 타자의 미스터리를 연구함과 동시에 집단지성의 가능성으로 넘어간다. 4할 타자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고, 이는 미국 프로야구를 분석해 4할 타자가 더 이상 나올 수 없다는 가설을 세운 굴드의 가설을 통해서였다. 그렇게 '백인천 프로젝트'는 끝났고, 책도 4장까지로 '백인천 프로젝트'의 모든 걸 보여주며 끝났다. 거기까지라면 그래도 괜찮았던 것이다. 


5장의 의미는 찾을 수 없다. 4할 타자의 미스터리, 야구와 과학의 만남, 집단 지성의 가능성을 모두 해결했음에도 그만큼의 분량을 또 넣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느낌이 애매모호했다. 본질은 사라지고 현상만 남았다고나 할까?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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