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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인어공주 모티브로 우주의 거대 순환을 말하다 <버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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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버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버블> 포스터.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거품이 쏟아져 전 세계에 큰 혼란이 초래된다. 얼마 후 일본 도쿄 중심부에 원인 불명의 대폭발이 일어난다. 도쿄는 거대한 거품에 휩싸이고, 거품이 내린 각지에서 거품이 그친 후에도 도쿄의 거품 현상을 계속된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그 어느 과학자도 거품의 비밀을 밝혀 내지 못했고, 버려진 도쿄는 거주 금지 구역이 되었다.

 

그런 도쿄에 불법 체류 소년들이 나타났는데, 주로 5년 전 도쿄 대폭발로 가족을 잃은 고아들이었다. 그들은 거듭되는 퇴거 명령을 무시하고 중력이 망가진 특수한 환경을 이용한 위험한 게임을 즐겼는데, 생필품을 걸고 펼치는 파크루 배틀이었다. 파크루 배틀 팀 '블루 블레이즈'의 에이스 히비키는 폭발의 근원지인 도쿄 타워에서 노래가 들려온다며 그곳을 자주 찾곤 했는데, 도쿄 타워를 둘러싼 구름에는 복잡한 중력장이 존재한다. 어떤 기계로도 관측할 수 없고 비과학적인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여느 때처럼 도쿄 타워를 찾은 히비키, 하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물에 빠져 버린다. 옷이 어딘가에 걸려 허우적 거리다가 정신을 잃고 목숨이 위태로워질 때쯤, 물방울들이 모여 인간의 형상을 한 소녀가 그를 구해 준다. 블루 블레이즈 팀과 함께 살게 된 소녀 우타, 그녀는 말도 잘 못하고 옷차림도 이상하지만 나쁘지 않은 아이 같다. 한편, 그녀의 몸놀림이 파크루에 적합해 보이는데... 히비키와 우타, 그리고 폐허에 남은 아이들의 앞날은?

 

비주얼리스트

 

지난 3월 27일 '아니메 재팬 2022'에서 넷플릭스가 올해 공개 예정인 신작 애니메이션 40편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공개해 크게 주목받았는데, 와중에 넷플릭스 아니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오바라 코헤이가 "2021년 일본 넷플릭스 회원 중 약 90%가 애니메이션을 시청했고, 전 세계 넷플릭스 회원 중 절반 이상이 애니메이션을 시청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버블>인 바, 제72회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되어 최초 상영된 기대작이다. 무엇보다 감독이 그 유명한 '아라키 테츠로'로, <데스노트> <진격의 거인> <갑철성의 카바네리> 등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버블>은 그의 4번째 오리지널 작품인데, 작화와 연출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라키 테츠로 사단이 총출동했다. 

 

아라키 테츠로 하면 모두가 입을 모아 '비주얼리스트'라 칭하는데 <버블>에서도 그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단순히 '예쁘다' '멋지다'라는 단면적 수식어가 아니라 '분위기 있다'는 입체적 수식어가 어울린다. 나아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장면 하나에 내용을 암시하는 복선을 깔아 두고 해석의 여지까지 숨겨 놓은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저 장면장면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장면을 즐기면서 자연스레 영상 전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인어공주

 

<버블>의 기본 얼개는 안데르센의 슬픈 동화 '인어공주'다. 위기에 처한 인간 왕자를 구해 준 뒤 그를 사랑하게 된 인어 공주, 마녀와 거래해 목소리를 잃은 대신 두 다리를 얻어 왕자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왕자는 다른 공주를 사랑하게 되고,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물거품이 될 인어 공주는 왕자를 죽이면 인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언니들의 말을 듣지 않고 바다에 몸을 던진다. 

 

큰 틀에서 보면 인어 공주는 바다에서 와서 바다로 다시 돌아간다. 그 순환에 인간 왕자는 객체로 존재할 뿐이다. 즉, 왕자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상관 없었을 거란 얘기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다르다. 인어이자 공주라는 특수성이 스토리와 상징 등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버블>은 '인어공주'의 스토리 얼개를 가져오는 한편 '순환'이라는 주제를 작품의 핵심으로 차용했다. 

 

순환이라고 하면 주기적으로 자꾸 되풀이하여 돎 또는 그런 과정을 말한다. 작품에서 히비키와 우타는 우타가 히비키를 구해 주며 처음 만난 것 같지만, 일찍이 만난 적이 있었으니 언젠가 다시 만날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어공주'처럼 둘은 어떤 형식으로든 결국 이어지지 않을 테니 우타가 다시 거품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또한 거대한 순환의 일환이자 언젠가 또다시 만날 운명의 과정에 지나지 않을 테다. 전 우주의 순환과 일개 두 아이의 만남과 이별이 어우러져 빚어지는 이야기가 <버블>의 핵심이다. 

 

여러 가지

 

큰 틀이 아닌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히 <버블>을 들여다보면, 꽤 많은 것들이 눈에 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일 텐데,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인종을 구별하기 힘들다. 머리 색깔이 다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다양성을 부여하려 한 것 같다. 더해서 히비키는 청각 과민 장애를 지니고 있고, 우타는 겉모습은 인간 형태를 띄고 있지만 실체는 거품이다. 또한, 파크루 배틀 대회 심판을 맡고 있는 신은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으로 대체한 채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도쿄를 감싸며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시켜 놓은 거대 거품의 존재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보호막처럼 작용한다. 사회를 경험해 본 어른으로서 신은 사회 즉, 도쿄 바깥은 숨막히는 곳이라고 하는데 고아가 된 아이들이 살기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도쿄 버블은 안식처이자 말 그대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다. 중력이 망가져 버린 환경과 기막히게 조우한다. 특히 청각 과민 장애를 지니고 있는 히비키로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이 조용하고 적막한 곳이 안성맞춤이지 않을까 싶다. 

 

작품에서 거품은 아름다움의 극치이자 결정체다. 아라키 테츠로 감독의 작화 솜씨가 가장 많이 발현된 게 거품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인다. 그런데 거품이라는 게 그 모양을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 아니, 영원은커녕 찰나의 순간조차 유지하기 힘든 게 거품이다. 히비키와 우타의 우정 그리고 사랑의 모습이 그럴까, 영원할 것 같은 도쿄의 거대 거품의 존재가 그럴까, 성장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은 아이들이 그럴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거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