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라진 3톤: 브라질 중앙은행 강도 사건>
2005년 8월 8일 월요일 아침, 브라질이 발칵 뒤집힌다. 브라질 북동부 세아라주의 포르탈레자 중앙은행 금고에 보관 중이던 1억 6,500만 헤알여(당시 미국 돈으로 약 6,780만 달러, 한국 돈으로 약 620억 원)의 돈이, 8월 5일 금요일 퇴근 후 도난당한 것이었다. 무게가 3.5톤에 달했는데, 와중에 추적이 불가능한 50헤알짜리 구권만 훔치는 치밀함도 선보였다.
'왜'보다 '어떻게'에 궁금증이 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은행 금고에서 그 많은 돈을 훔쳐 사라져 버릴 수 있었을까? '터널'이 그 해답이었다. 범죄 조직은 인근 주택에서 폭 70cm의 구덩이를 4m 파 내려선 포르탈레자 중앙은행 금고까지 80m의 터널을 뚫었다. 그러곤 금고에서 돈을 꺼내 터널로 옮긴 것이었다.
영화도 이렇게 만들면 허무맹랑하다고 욕 먹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기상천외한 사건이지만, 엄연히 21세기 한복판에 브라질 세아라주의 주도에서 일어났다. 넷플릭스가 놓치고 지나갈 수 없을 테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사라진 3톤: 브라질 중앙은행 강도 사건>으로 새롭게 밝혀진 증거, 증언, 미공개 영상 등과 함께 전모를 파헤친다.
무주공산의 중앙은행 금고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대표 시리즈 <종이의 집>의 강도 행각이 연상된다. 하지만, 현실의 강도 행각이 훨씬 더 충격적이었던 건 범죄 조직을 본 사람이 없었을 뿐더러 CCTV를 비롯한 보안상으로도 범죄 조직을 전혀 포착하지 못했으며 영화나 드라마처럼 무기 하나 들고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 말인즉슨, 포르탈레자 중앙은행의 보안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나아가 브라질이라는 나라의 보안 또한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는 말과 같다. 실상 전혀 틀린 말이 아닌 것이, 보안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나라가 브라질이다. 내전, 분쟁 지역의 나라 혹은 스트리트 갱과 마약 카르텔로 유명한 멕시코처럼 '당연히' 보안과 치안이 좋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곤 브라질이야말로 세계 최악의 보안·치안 국가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포르탈레자 중앙은행 금고는 금요일 퇴근 후부터 주말 내내 무주공산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CCTV가 24시간 돌아가고 있었지만 하나의 모니터로 할 일 많은 한 명의 경비원이 확인하고 있었기에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센서도 많았는데 사각지대가 다수 존재했다. 기민하고 영리한 범인들은 금고에 도달하자마자 모든 허점을 눈치챘고 또 운 좋게도 그들이 판 구덩이와 CCTV 사이를 뭔가가 가로 막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금고에서 무사히 돈을 훔친 건 가히 운명이라 할 만하다.
세계 은행 강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사건
범죄 조직의 영리함은 3개월 전부터 발휘되었는데, 포르탈레자 중앙은행 인근 주택가의 어느 주택에 조경 회사를 차리고 광고까지 한다. 겉으론 조경 회사인 척하고 안에선 열심히 터널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정녕 제대로 작업을 한 것이, 터널 안에 공기정화용 에어컨과 전화기까지 설치해 작업 환경까지 생각해 줬다. 파낸 흙은 조경 작업 중에 나온 걸로 위장해 안전하게 타지로 옮길 수 있었다.
세계 은행 강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사건이자 브라질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강도 사건으로 기억될 포르탈레자 중앙은행 강도 사건,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순 없는 바 범죄 조직을 잡아 들이고 또 돈을 회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방 경찰은 다방면의 수사 전문가들을 모아 수사에 착수한다. 범죄에 가담한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고 또 범죄 완료 직후 각각의 돈을 가지고 뿔뿔이 흩어졌기에, 수사 방향도 다양해야 했다. 기민하고 영리한 범죄 조직에 예리하고 끈질긴 수사로 맞섰다.
브라질 각지에서 하나둘 잡히는 범죄 조직의 개인 또는 무리들, 1억 6,500만 헤알에 달하는 금액이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회수된다. 도망 다니느라 지친 그들이 준 정보에 따라 몇 개월, 몇 년에 걸쳐 주범에 다가간다. 하지만, 핵심 주범을 잡기가 쉽지 않다. 범행의 시작부터 끝 그리고 이후까지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게 눈에 보이는 것이다.
희대의 사건을 다루는 범죄 다큐멘터리가 흔히 택하는 논조는 '비판'이기 마련이다. 포르탈레자 중앙은행 강도 사건과 위에서 언급한 브라질의 보안·치안의 허술함, 부실함, 허점 등을 엮어 비판할 여지가 충분했다. 하지만, 작품은 다른 방향을 택했다. 사건의 전말, 수사의 전말, 사건과 수사의 종말 각각에 짧고 굵게 천착해 서사 중심으로 들여다봤다. 사건의 이면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려 했다기보다 사건의 표면을 최대한 넓게 훑어 보려 했다. 영화같은 사건의 성격을 최대한 이용하려 한 것인데, 괜찮은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브라질의 터무니 없는 민낯
이 사건의 진짜 끝은 따로 있다. 보안의 허술함으로 영민한 범죄 조직이 터널을 뚫고 들어와 어마어마한 돈을 강탈했다는 점이 충격적이고 또 용의자를 100% 특정했고 범인을 60% 이상 잡아들여 사실상 일망타진한 점이 특이할 만한 지점이지만, 부패한 경찰과 변호사가 범인들에게서 돈을 빼앗는 짓이 벌어졌다는 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브라질이라는 나라의 터무니 없는 민낯이 아닐까.
작품에 나오는 많은 경찰들이 자화자찬하듯 수사, 체포, 회수의 과정을 자세히 전했지만 애초에 일어나면 안 될 일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되겠다. 그런가 하면, 이 사건이 있은 후 모방범죄가 족히 수십 건 일어난다. 브라질 중앙은행까지 500미터의 터널을 뚫어 10억 헤알을 강탈하려다가 들킨 적도 있고, 브라질 남부의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은행을 털려다 들킨 적도 있다. 포르투알레그리 은행 강도 미수 사건의 주범이 브라질 최대 범죄 조직 'PCC'였는데, 검거된 조직원들 중 일부가 포르탈레자 중앙은행 강도 사건의 주범이었다.
희대의 범죄를 일으킨 이들의 비극적 최후가 눈에 띄지만, 용의자를 특정해 놓고도 잡히지 않은 이가 절반에 가깝거니와 강탈당한 돈은 1억 6,500만 헤알 중에서 3,250만 헤알밖에 회수하지 못했으니 정작 브라질한테 비극이 아닌가 싶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이 시작된 사건은, 적어도 잡히지 않고 엄청난 돈을 펑펑 써 댄 범인들에겐 희극인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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