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37세, 남자, 광고대행사 크리에이터,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매일같이 바꿔 만나는 자유로운 영혼, 출중한 실력과 발군의 센스로 승승장구 중. 히야마 켄타로의 대략의 프로필이다. 그는 일본 최대 패션회사 유니브가 의뢰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는데, '나다운 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다양성' 키워드를 핵심으로 잡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컨디션이 급속도로 나빠진다. 프로젝트로 무리하고 있기도 하고 술도 많이 마셔 대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하루이틀이 지나도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는 게 아닌가. 더 이상 회사에 해를 끼칠 수 없어 병원으로 향하는 켄타로, 그는 병원에서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듣는다. 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TV에서 스쳐 지나가듯 접했던 시스젠더 남성의 임신말이다. 일본에서 매년 40여 명의 시스젠더 남성이 임신을 한다고 하는데 그게 설마 켄타로 본인이었을 줄이야.
켄타로는 임신 중절 수술을 위해 잠자리를 가진 날짜와 여성의 이름을 살피고 아키를 발견한다. 아키는 35세 여성으로 프리랜서 작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켄타로와 마찬가지로 결혼과 육아에 전혀 관심이 없기도 하다. 충격을 뒤로 하고 이제 임신 중절 수술만 하면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켄타로와 아키의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 갈까?
시스젠더 남성의 임신
'남성 임신'이라고 검색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례가 눈에 띈다. 미국의 트렌스젠더 남성 '토마스 비티'가 '세계 최초의 임신한 남성'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2008년과 2009년과 2010년에 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스젠더 남성이 임신한 사례는 없다.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궁을 이식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자궁을 성공적으로 이식한 사례도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은 시스젠더 남성도 극소수나마 임신한다는 가상의 설정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규범과 상식 바깥의 세계'를 그리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카이 에리 만화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바, 진중한 드라마와 덤벙이는 코미디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세계 최대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IMDb를 들여다보면 10점 만점에 1점대(2022년 5월 현재)라는 충격적인 평점이 보이는데 작품을 본 대부분의 사람이 '남성 임신'이라는 소재로 여성을 얘기하고 있는 페미니즘적인 관점이 매우 못마땅해하고 있는 것 같다. 단언컨대, 어마어마한 재미를 주진 못해도 상당한 재미와 생각거리들을 던지는 바 절대로 처참한 평점을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다. 남성 위주의 보수 분위기가 전 국가적으로 지배적인 일본에서 나온 작품이기에 극단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기를 낳느냐 마느냐
작품 속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은 투 트랙으로 나아가는데, 하나는 이야기의 진행에 관한 것으로 아기를 낳느냐 마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에 관한 것으로 시스젠더 남성의 임신이다. 켄타로는 병원에서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이를 만나 마음이 출렁이고 남성 임산부라는 점이 비즈니스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아키의 말에 흔들린다. 한편, 아키는 자신이 아닌 켄타로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게 큰일 치르지 않고 아이를 기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흔한 남자들처럼' 말이다.
그런가 하면, 시스젠더 남성의 임신이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이 작품의 핵심 주제이다. 남자가 임신을 한다는 게 '징그럽다'며 그들을 배척하는 것이다. 아키의 아빠는 임신한 켄타로를 두고 '제대로 된 남자'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이 겪는 차별을 여자와 남자의 상황을 바꿔 보여 주는 '미러링'을 넘어 역차별까지 논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고 이해하고 지식화되어도 알 수 없는 게 있다. 글로 접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남자 입장에서 여자가 받는 차별을 정확히 완전히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이 영상으로 가감없이 보여 주는 남성 임신의 모습은 이전까지와의 추체험과는 다른 차원이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만큼 이야기적 재미를 제쳐 두지 않고 심각한 주제와 함께 버무리니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
나다운 게 뭔지
이 논란거리 가득할 게 분명한 작품에 과연 누가 출연했을까 싶겠지만, 배우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메꽃 ~평일 오후 3시의 연인들~>로 소위 대박을 친 사이토 다쿠미와 우리나라에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우에노 주리가 극을 이끌고, 일본의 두 유명 중견 배우 릴리 프랭키와 츠츠이 마리코가 든든히 뒤를 받힌다. 연기로만 봤을 땐 흠잡을 데가 없다는 뜻이다.
이 작품은 여성 차별의 면면을 남성도 제대로 겪어 보고 이해해 보라는 식의 교훈을 남기지 않는다. 남성 임산부를 향한 역차별도 여지없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나다운 게 뭔지를 비롯해 '남성다움' '여성다움' 등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런 생각과 구조에 갇혀 있는 사람들, 즉 지금 이 순간의 대다수 우리들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일본 콘텐츠가 조금씩 기지개를 펴는 모양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다져진 상상력에 현실을 잘 붙일 줄 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품이 나올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이 그 표본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작품 속에서 남성 임산부를 비즈니스적 기회로만 바라보는 이들처럼 이 작품이 그저 흥미로운 소재를 이용한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다행히도, 작품은 이야기와 주제를 조화롭게 보여 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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