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안나라수마나라>
하일권 작가는 웹툰계에서 일정 정도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제목만 들어도 웬만하게 웹툰 보는 이라면 알 만한 작품들이 즐비하다. <삼봉이발소> <3단합체 김창남> <두근두근두근거려> <안나라수마나라> <목욕의 신> <방과 후 전쟁활동> <스퍼맨> <병의 맛> 등, 중편 정도의 길이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후 빠르게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기에 부담 없이 두루두루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확실하다.
다만, 캐릭터성이 확실하진 않고 색감이 화려하진 못하다. 하여, 스토리와 연출로 부족한 캐릭터성을 커버하고 쨍하지 않은 파스텔톤으로 화려하지 못한 색감을 커버한다. <안나라수마나라>가 대표적인데, 전반적으로 무채색의 흑백이 주를 이룬다.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다크스러운 판타지 장르에 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와 주제를 웹툰스러운 연출로 적절하게 엮어 냈다.
수많은 웹툰이 연극,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으로 미디어 믹스되고 있는 와중에 하일권 작가의 작품들이야말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그의 작품들이 미디어 믹스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두근두근두근거려>가 '오디오 시네마'라는 형식으로 재탄생된 것과 <안나라수마나라>가 연극으로 재탄생된 것 정도다. 그런 와중에 드디어 <안나라수마나라>가 드라마로 재탄생되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우리를 찾아왔다. <구르미 그린 달빛> <이태원 클라쓰> 등의 김성윤 감독이 연출을 맡아 기대감을 높였다.
'안나라수마나라', 진짜 마술의 주문일까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윤아이, 아빠는 장난감 공장을 운영하다 부도를 내는 바람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엄마는 집을 나가 버려 홀로 여동생 윤유이를 부양하고 있다. 학교를 끝마치고 알바를 하며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같은 반 짝은 검사장 나진만의 아들 나일등인데, 잘생기고 번듯하며 공부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엄친아다. 그런데 수학만큼은 윤아이가 1등을 차지하고 있다.
동네에 오래된 폐 유원지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기거하는 마술사에 대한 소문이 기괴하다. 사라지는 마술로 사람을 진짜로 사라지게 했다는 둥, 몸을 반으로 자르는 마술로 사람 몸을 진짜로 반으로 잘랐다는 둥, 마술인지 마법인지 헷갈릴 정도의 소문이 돈다. 하필 그 마술사와 우연히 마주친 윤아이 그리고 나일등은 인생이 조금씩 변화해 가는데...
한편, 'ㄹ(리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술사에게도 숨겨진 사연이 있는 것 같다. 반친구 서하윤이 사라진 것에 그가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고, 야심한 밤에 그가 입은 것과 똑같은 마술사 옷을 입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으며, 그를 종종 찾아오는 임산부도 눈에 띈다. 그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리을은 "당신은... 마술을 믿습니까?"라며 묻고는 "안나라수마나라"라고 주문을 외우듯 마술을 시전하는데, 윤아이와 나일등은 꿈에서나마 겪을 것 같은 환상적인 장면의 주인공이 된다. 아니, 실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게 '진짜' 마술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리을, 그리고 윤아이와 나일등에게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어른과 아이의 뮤지컬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는 다양한 키워드와 얽힌 이야기를 전한다. 이름과 다르게 나이와 맞지 않게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윤아이와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이 되지 못하고 '아이'의 세상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은 리을, 직접 보고 겪고도 믿기 힘든 마법같은 '마술'로 인생이 뒤바뀌어 버릴 정도의 충격을 받은 나일등, 리을의 마술이 진짜라는 걸 '믿고' 싶은 윤아이.
'뮤지컬 드라마'의 형식을 빌려 다양한 이야기를 이채롭게 전하고자 한다.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에서는 처음으로 해 본 것이라고 하는데, 적절하고 깔끔했다. 80%를 일반적인 드라마 형식으로 채우고 20% 정도만 뮤지컬 형식을 차용한 것이니 만큼, 뮤지컬이 주가 되는 콘텐츠 특유의 오글거림 또는 과도한 텐션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뮤지컬은 분위기를 설명하고 띄우는 수단이자 도구로 제 역할을 다했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색감을 자랑한다. 다크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한 무채색의 원작과 180도 대비되는 외향인데, 기본 스토리와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뮤지컬 형식과 함께 화려한 색감을 주무기로 가져 가려는 것 같다. 원작이 10년도 더 전의 오래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는 원작 웹툰을 생각나지 않게 할 정도의 힘을 가졌다. 고민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바, 원작은 원작대로 재밌게 볼 것이고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재밌게 감상할 것 같다.
"당신은... 마술을 믿습니까?"
<안나라수마나라>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를 뽑자면, 제목인 '안나라수마나라'일 텐데 항상 그 앞에 세트로 나오는 대사가 있으니 "당신은... 마술을 믿습니까?"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믿고 싶거나, 믿어야 한다거나, 믿지 못하거나,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거나. 모든 이가 믿음 앞에서 나름의 선택을 견지하고 있다.
자칭 '진짜 마술사' 리을은 자신도 모르지만 마술을 믿고 싶어 하는 이들, 이를테면 윤아이와 나일등에게 환상적이거나 환멸적인 세상을 잠깐이나마 선사한다. 현실이 시궁창인 윤아이에겐 환상적인 세상을 선사해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게끔 했고, 현실이 환상적이라고 주입받으며 살아왔던 나일등에겐 환멸적인 세상을 보여줘 알을 깨고 나와 앞으로 나아가게끔 했다. 리을 덕분에 윤아이와 나일등은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따로 또 같이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리을은? 어떻게 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안나라수마나라>는 윤아이와 나일등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리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이야기는 보다 복잡할 것이다, 조금 더 아플 것이다. 윤아이의 말마따라 어릴 땐 마술이니 산타니 하는 것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믿고 싶었고 그래서 믿을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머리가 커지고 마음이 쪼그라들면서 그것들이 있을 자리가 사라져 갔다. 어른이 되었어도 그 자리를 다시 마련할 수 있을까? <안나라수마나라>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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