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
'틴더'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있다. 2012년에 시작한 미국의 글로벌 소셜디스커버리 앱인데, 온라인 상으로 연인을 찾을 수 있도록 중개한다. 수많은 온라인 데이팅 앱이 범람하는 가운데 틴더는 부동의 전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데, 많은 이가 이용하는 만큼 많은 논란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뒤따른다.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복잡한 게 관계가 아닌가.
틴더의 공동 창업자 휘트니 울프 허드는 틴더의 공공연한 성추행과 성차별로 회사에 소송을 제기하며 퇴사해 '범블'이라는 데이트 앱을 만들기도 했고, 2018년에는 미국에서 결혼한 커플의 1/3 이상이 틴더 같은 데이트 앱으로 성사되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여지없이 '사기'가 등장했는데, 이른바 '틴더 사기꾼'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는 틴더 사기꾼 '사이먼'의 글로벌하고 치밀하며 파렴치하고 낯짝 두껍기 짝이 없는 사기 행각의 전모를 피해자들과 함께 추적한다.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신들린 편집 기술로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사기 과정을 자못 흥미롭게 풀어내는데, 아니다 다를까 2019년에 공개되어 에미상 논픽션 부문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했던 <인터넷 킬러 사냥: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의 제작자 펠리시티 모리스가 연출했다고 한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범죄 다큐인 것이다.
데이트 앱 사랑꾼과 사기꾼
노르웨이 출신으로 영국 런던에서 지내는 29세 세실리에는 온라인 데이팅으로 진정한 사랑을 찾길 희망한다. 틴더로 수년째 왼쪽(비매칭) 오른쪽(매칭)으로 스와이프하며 남자를 물색하고 또 만나서 관계를 이어갔지만, 진정한 사랑을 찾긴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이상형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이를 만났다. 이스라엘 출신의 28살 사이먼이었다.
그는 번듯한 얼굴에 정장이 잘 어울리고 또 잘 입으며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많고 사람들이 좋아요도 많이 해 주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일이면 일, 파티면 파티, 여가면 여가 모두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누구나 꿈꾸는 인생을 살고 있기에, 세실리에로서는 만나만 봐도 재밌겠다 싶었다.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했고, 곧바로 사이먼한테서 연락이 왔다. 이후 일사천리로 가까워진다.
문자하고 전화하고 만나며 급격히 친해진 둘, 연인이 된 건 물론 급기야 같이 살 집도 마련한다. 전용기, 고급 호텔, 고급 식당, 고가 선물 등이 이어진다. 낭만 어린 판타지의 실현이다. 알고 보니 LLD 다이아몬드 CEO로 다이아몬드의 왕이라 불리는 아버지한테 천문학적인 돈을 물려받은 억만장자란다. 글로벌한 회사인 관계로 출장이 잦다고 하고 또 다이아몬드 업계가 굉장히 무서워서 보안이 생명이라고 한다. 때때로 심각한 위협이 뒤따른다고도 한다.
그러던 어느 때 실제로 그에게 심각한 위협이 당도한다. 경호원은 피투성이가 되고 그는 신변 보안 때문에 신용카드를 쓸 수 없다. 그래서 사이먼은 세실리에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한다. 억만장자이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쌓은 '신뢰'가 있으니 당연히 돈을 빌려 준다. 하지만, 돈을 빌리는 횟수와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것도 모자라, 세실리에를 향한 사이먼의 감정이 식어 가는 듯하다.
사기꾼의 노림수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듯이, 누가 봐도 너무 잘생기고 너무 번듯하고 너무 잘 살고 너무 살가운 사이먼은 완벽한 사기꾼의 전형과도 같다. 하지만 그의 실체를 알아차리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꿈에나 그리던 판타지들이 실현되는 등 그의 온라인상의 번듯함들이 실제로도 그대로 나타났거니와 피해자들은 당장이라도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게 잘못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거늘, 사기꾼 가해자는 피해자의 바로 그런 점을 노린다. 감정도 갈취하고 돈도 갈취하는 짓인데, 돈도 돈이지만 감정을 메마르게 하고 감정의 불씨를 꺼뜨려 버리며 감정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돈은 어떤 식으로든 메울 수 있지만 감정은 메우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지 않은가.
사이먼의 경우, 피해자가 세실리에 하나뿐이 아니었다. 작품에만 3명이 나오는데, 세실리에에게 사기를 칠 때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사기를 친 스웨덴 출신의 페르닐라가 있다. 그녀와는 처음엔 친구로 지내다가 나중엔 같이 살 집을 마련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또 네덜란드 출신의 아일린이 있는데 이미 한참 전부터 진지하게 사귀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틴더로 만났다.
그야말로 전 유럽적인 범죄다. 기본적으로 영국과 스웨덴과 네덜란드의 세 국가를 넘나들고 출장 간다는 명목 또는 놀러간다는 명목으로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그리스 등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사기꾼의 진짜 모습
결국 빛 독촉에 시달리다가 카드사에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세실리에, 사이먼의 본명이 '시몬 하유트'라는 걸 알게 되고 검색해 보니 2015년에 핀란드 여성 3명을 상대로 수만 유로를 사취하다가 붙잡혀 징역 3년 형을 받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녀는 사이먼이 사기 행각을 더 이상 이어나가지 못하게 하고자 언론을 이용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노르웨이 최대 신문사 VG를 찾는다. VG 기자들은 본격적으로 사이먼을 추적해서 전모를 기사화시킨다. 틴더 사기꾼 사이먼의 진짜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미 피해액이 엄청나게 불어나 있는 상태이다. 세실리에는 25만 달러, 페르닐라는 수만 달러, 아일린은 14만 달러에 달했다. 사이먼은 이 3명의 피해자들 각각에게 사취한 돈을 각각에게 쓰기도 했고 또 다른 여자에게 쓰기도 했다. 그 또 다른 여자는 아직 사기를 당하기 전이었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사기를 쳤을 것이었다.
결국 또 잡혀서 징역을 살게 된 사이먼이지만, 오래지 않아 풀려나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사이먼이 그동안 사기 친 금액만 해도 1천만 달러에 이른다고 하니, 너무나도 어마어마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그럼에도 사이먼이 그들의 돈을 사취(거짓으로 속여서 빼앗다)한 것이지 갈취(강제로 빼앗다)한 게 아니니 만큼, 사이먼의 형량도 낮았고 또 형량보다 빨리 풀려났던 게 아닌가 싶다.
반면 작품의 세 피해 여성들은 모두 여전히 막대한 빛을 갚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들 스스로 사이먼에게 돈을 넘긴 만큼 사라진 돈을 보존하는 방법이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지경이 또 어딨을까 싶다. 그럼에도 틴더로 진정한 사랑을 찾고 있다고 하니 이보다 더 답답한 지경이 또 어딨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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