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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천재적인 감각 총집합! <라스트 나잇 인 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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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 포스터. ⓒUPI 코리아

 

60년대에 심취해 있는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 엘리, 할머니 하고만 사는 그녀는 런던에 있는 예술 대학교에 합격해 시골을 떠나 수도로 상경한다. 그곳은 런던 소호, 곧바로 기숙사에 들어가지만 룸메이트 조카스타가 무리를 지어 못 살게 구는 등 적응하지 못해 머지 않아 나와 따로 방을 얻는다. 비록 오래된 집이기도 하고 네온사인이 끝없이 비춰 여간 어지럽지 않지만, 엘리 마음엔 쏙 들었다.

낯설지만 편안한 곳에서의 첫날밤, 엘리는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실제 같은 꿈을 꾼다. 그녀는 어느 클럽에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가수의 꿈을 가지고 있는 샌디와 혼연일체가 된다. 샌디는 클럽 매니저 잭에게 가서는 당돌함과 실력을 어필한다. 꿈에서 깬 엘리는 다음 날 수업에서 꿈 속 샌디의 옷을 스케치한다.

그날 밤과 다음 날 밤 연이어 들뜬 채 잠이 든 엘리, 그런데 샌디가 완전히 다르게 변해 있었다. 스트립 댄서와 다름 없는 복장을 하고 메인도 아닌 백댄서로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는 도망가려 하다가 샌디와 마주치고, 샌디는 잭에게 끌려간다. 그러곤 어느 순간 하숙집으로 돌아온 엘리가 본 건 샌디와 어느 중년 남성이었다. 샌디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내 줄 수밖에 없었던 걸까. 현실로 돌아온 엘리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더 이상 꿈을 꾸기도 싫은 와중에 현실에 꿈 속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에드가 라이트의 스타일

 

10대 때부터 영화를 만들고 30대에 접어들자마자 장편 영화 데뷔작 <새벽의 황당한 저주>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에드가 라이트 감독, 이후 피와 아이스크림 3부작 일명 '코르네토 3부작'을 잇달아 내놓아 제작자에게 피해는 가지 않는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한때 빛났지만 지금은 그렇고 그런 감독으로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이나 <앤트맨> 각본에 참여하며 메이저급 영화의 작업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던 차에 2017년 <베이비 드라이버>로 다시 한 번 비상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다.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과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음악의 사용법이 빛나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연출로 다시 한 번 자리를 공고히 한 에드가 라이트는, 4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느낌 충만한 영화를 들고 왔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필모 최초의 본격 미스터리 호러물이라고 할 만한 <라스트 나잇 인 소호>, 큰 틀에서 전작과 비슷한 듯한데 감각적인 연출력과 영화를 관통하는 음악의 사용법을 한껏 드러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촬영 감독 정정훈의 영상미가 돋보인다. 196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배우들과 2020년대 현재를 이끌고 있는 배우들의 만남은 또 어떤가? 이 모든 요소를 적절하게 배합해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에 얹혀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어 냈다.

 

1960년대와 2020년대

 

에드가 라이트 감독 작품을 어느 정도 알거나 얼핏이나마 들여다본 이에게 이 영화의 연출과 음악적 감각을 굳이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다. 독보적인 역량을 갖추고 오랫동안 한우물만 파고 있는 감독의 작품 면면을 굳이 자세하게 들여다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에게 예의가 아니거니와 그를 잘 알거나 잘 알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도 예의가 아닐 테다.

다만, 이번 작품의 경우 눈에 띄는 것들이 있어 그 방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상미'라는 단어로 뭉뚱그리기에 아쉬운데, 밋밋하기 짝이 없는 무채색의 2020년대 런던과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원색 조합의 1960년대 런던이 대비되며 눈을 끌어당긴다. 그런가 하면, 현실과 다른 꿈 속 세계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들을 영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이게 바로 내가 직접 겪고 있지만 또 타인의 몸으로 겪기도 하는, 형용할 수 없는 꿈 속 세계다.

이 영화를 이루는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이 눈에 띈다. 감독이 작정하고 의도한 듯, 1960년대 대표 배우와 2020년대 대표 배우를 배치시킨 것이다. 두 주인공 엘리와 샌디는 <조조 래빗>의 토마신 맥켄지와 <퀸스 갬빗>의 안야 테일러조이가 맡았다. 현시점 최고의 유망주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다. 그런가 하면, 엘리의 할머니와 집주인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주위를 도는 수상한 할아비지 역은 각각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 리타 터싱햄과 대영제국 훈장을 받은 다이애나 리그 그리고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 테렌스 스탬프가 분했다. 1960년대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콘들이자 세계적으로 전설적인 존재들이다.

 

다양한 이야기들

 

주지했듯, 한껏 힘을 준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합하고 적재적소에 투입해 예측하기 힘든 스토리에 얹혀 여러모로 '좋은' 영화를 만들어 냈다. 여기서 좋은 영화라 함은, 어떤 식으로든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화라 하겠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영화를 구성하는 기본적이고 단면적인 요소들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하거니와 입체적인 요소들이 배가시켜 준다.

엘리의 시골쥐 이야기, 꿈 속의 1960년대에서 영감을 받아 성공으로 다가가는 이야기, 급박해지는 꿈에 따라 현실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이야기, 정신 건강 이상에 따른 행동이 계속되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전해지는 가학적이고도 슬픈 이야기까지. 보통 마지막 반전이 기존의 모든 이야기를 뒤짚어 버리곤 하는 데, 이 영화에선 마지막 반전이야말로 기존의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짜맞추는 역할을 한다. 즉, 영화의 모든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치밀하게 직조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히 천재적인 스토리 감각이다.

비록, 영화는 북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철저하게 대중의 외면을 받았지만 평단에겐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아무래도 에드가 라이트 특유의 유머가 녹아들 수 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그의 필모 유일한 비(非) 코미디 장르의 영화였다. 그럼에도 그의 필모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기에, 그를 향한 애정이 더해지면 더해졌지 덜 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거장으로 거듭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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