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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각본 없는 드라마' 1984년 한국시리즈의 최동원 <1984 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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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1984 최동원>

 

다큐멘터리 영화 <1984 최동원> 포스터. ⓒ영화사 진

 

한국 프로야구가 돌아오는 2022년이면 40주년을 맞이한다. 각 부분의 '역대 최고'를 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쌓였다고도 할 수 있을 테다. 야구는 엄연히 기록의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각본 없는 드라마로 가슴을 두방망이치기도 하며,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간절한 염원으로 바꿔 놓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를 논해 보면 선동렬, 최동원, 박찬호, 류현진이 눈에 띈다.

 

이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최동원'일 것이다. 그는 비록 다른 레전드에 비해 선수생활을 오래하지 못했지만, 남긴 업적과 임팩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몇몇 기록은 한국 프로야구가 앞으로 100년을 넘게 이어진다 해도 절대로 넘어서지 못할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중 하나가 바로 '1984년 한국시리즈의 최동원'이다. 

 

2011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뜬 최동원의 10주기에 맞춰 '1984년 한국시리즈의 최동원'을 중심에 둔 다큐멘터리 <1984 최동원>이 우리를 찾아왔다. 최동원이라는 사람의 인생과 최동원 선수의 선수생활 모두를 뒤로하고 1984년 한국시리즈의 최동원에만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그의 '라스트 댄스'를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 최동원

 

1984년은 한국 야구에 프로를 들여온 1982년 이후 3년째 되는 해로 지금의 한국 프로야구 시점으로 보면 말도 안 되고 믿기도 힘든 것들이 많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게 '투수 혹사'인데,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장명부 투수가 한 해 동안 400이닝이 훌쩍 넘게 던진 게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이 1984년의 최동원이었는데, 284.2이닝을 던졌다. 정규시즌에서 이미 혹사의 전설과 함께 기록의 전설을 만든 최동원, 하지만 팀은 한국시리즈가 쉽지 않았다. 1진과 2진의 실력 차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때는 1984년 한국 프로야구 후기 레이스 막바지, 최동원의 롯데 자이언츠는 2위 OB 베어스에 근소한 차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추후 남은 경기에 따라 충분히 뒤바뀔 수 있었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 시스템은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바로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것이었다. 전기는 삼성이 우승을 차지한 상태, 후기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때에 공교롭게도 삼성이 롯데와 맞붙었다. OB는 해태와 맞붙었고 말이다.

 

각각 2경기씩 남겨 있던 상황에서 같은 팀과 2연전을 붙었는데, OB가 해태에 2경기를 모두 잡는다 해도 롯데가 삼성에게 1경기만 이겨도 롯데가 우승할 수 있었다. 이때 삼성이 상대적 약체 롯데를 한국시리즈 상대로 낙점하고 그 유명한 '져주기 게임'을 감행한다. 결국, 롯데의 찝찝한 후기 우승. 삼성을 등에 업고 우승해서는 한국시리즈에서 다름 아닌 삼성과 붙어야 했다. 언론과 여론은 삼성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 삼성도 그 어느 때보다 반드시 우승해야 할 이유가 있었고 롯데도 만만치 않은 이유가 있었다. 

 

각본 없는 드라마, 1984년 한국시리즈

 

너무나도 유명한 1984년 한국시리즈의 결과는 4승 3패로 롯데의 우승, 단연 주인공이었던 최동원은 자그마치 5회 등판, 4승 1패(4완투, 3완투승, 1완봉승), 40이닝 투구, 평균자책점 1.80을 기록했다. 당시 삼성의 전력이 완벽한 상향 평준화로 거의 모든 등록 선수가 타 팀을 압도했던 반면 롯데는 베스트 멤버만 그러했고 최동원만 고고히 홀로 빛나고 있었기에, 팀 자체의 기적이기도 했다. 물론 최동원이 없었다면 애초에 얘기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삼성에는 역대급 원투 펀치 김시진과 김일융이 있었고, 롯데에는 역대 최고의 원펀치 최동원 그리고 임호균이 있었다. 철저한 투수 분업화가 되어 있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를 들여다보면 5번 등판한 최동원을 비롯해 삼성의 김시진과 김일융도 만만치 않은 3번 등판 기록을 세웠다. 공교롭게도 최동원이 김시진과의 맞대결에서 3번을 이겼고 김일융에겐 1번을 이겼다. 그런가 하면, 당대 최고 중 하나였던 김시진은 최동원과의 맞대결에서 3번 모두 지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온갖 극적인 요소가 완벽히 들어맞는 스포츠 경기를 보고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이보다 더 1984년 한국시리즈 그리고 최동원에 부합하는 말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다시 보지 못할 최동원의 혹사 어린 호투를 중심으로, 3차전에서 김시진이 복숭아뼈에 공이 맞아 금이 갔음에도 6차전에 다시 나와 열심히 뛰었지만 지고 말았다든지, 7차전 직전 호우로 경기가 연기되며 하늘이 롯데를 도운 점이라든지, 7차전 후반부에서 롯데가 지고 있을 때 그동안 힘을 못 쓰던 유두열이 역전 쓰리런으로 사실상 팀을 승리로 이끈 점이라든지.

 

아쉬움을 뒤로 하는, 한국 스포츠 다큐멘터리의 진일보

 

이 작품 <1984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를 오롯이 되살리기 위해 방송국 아카이브는 물론 최동원 선수 유가족과 일반 청중이 가지고 있는 미공개 영상까지 수소문 끝에 취합해 디지털로 복원하는 열의 끝에 탄생했다. 거기에 부산 출신의 롯데 자이언츠의 열렬한 팬으로도 유명한 조진웅 배우가 내레이션을 맡고, 대한민국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유명한 신대철이 음악을 맡으며 작품의 격을 올렸다. 무엇보다 1984년 한국시리즈 당시 삼성의 김시진과 이만수, 롯데의 강병철 감독과 임호균 등의 레전드들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명백히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아 있으니, 먼저 1시간 30분 남짓한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 오롯이 담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많은 얘기였다는 점이 있을 테다. 이를 테면, 작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나왔던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의 경우 장장 10화에 걸쳐 500여 분을 할애해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왕조 시절뿐만 아니라 그의 선수 삶을 거의 완벽히 재조명해 내며 큰 이슈를 뿌린 바 있다. 최동원 정도라면 불멸의 1984년뿐만 아니라 선수협을 결성하려다가 실패하고 롯데와의 좋지 않은 끝맺음이나 라이벌 선동렬과의 대결 같은 이야기 등 그의 삶을 재조명할 거리가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싶다. 시리즈로 만들어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1984년 한국시리즈 직전 삼성의 '져주기 게임'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또는 않은 바도 아쉽다. 명백한 승부조작으로 지금이라면 만인의 지탄 끝에 팀의 운명뿐만 아니라 프로야구계 전체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일 텐데, 이 작품에선 한국시리즈를 향한 여론의 방향이 삼성 아닌 롯데 쪽으로 기울었다는 걸 보여 주려는 의도 정도로 그친 점이 걸렸다. 

 

그럼에도 한국 프로야구 40주년을 앞에 두고 자타공인 역대 최고의 투수 최동원을 1984년 한국시리즈를 중심으로 들여다본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겠다. 그것도 영화로 만들어져 극장 개봉까지 할 수 있었다니 말이다. 한국 스포츠 다큐멘터리의 진일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