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신의 손>
1970년생으로 어느덧 50 줄에 접어든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 그는 2000년대 이후 이탈리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군들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며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내놓았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일 디보>, 미국·영국 아카데미와 골든 글러브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휩쓸어 버린 <그레이트 뷰티>가 대표작이라 할 만한다. 영화를 내놓았다 하면 거의 어김없이 칸 영화제에서 부르니, '칸의 아들'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경쟁 부문에 그의 영화를 초청해선 상까지 줬다. 자그마치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그리고 신인배우상)을 말이다. 쉽게 말하면, 베니스 영화제 2등상(감독상과 더불어)을 수상한 것이다. 그가 이탈리아 나폴리 태생인 점으로 미뤄 봤을 때, 이탈리아의 대표하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에서 이제야 그의 영화를 초청한 게 꽤 의아하다 하겠다.
그 영화는 다름 아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신의 손>이다. 파올로 소렌티노가 데뷔작 <엑스트라 맨> 이후 20년 만에 나폴리를 배경으로 삼아 찍은 영화라고 하니, 영화 안팎으로 얘깃거리가 많지 않을까 싶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칭송받는 마라도나가 연상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영화 내에서 어떤 '기적'이 펼쳐졌을지 궁금해진다. 소렌티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는데, 왠지 그의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누구나의 어린 시절일 것만 같다.
1984년 나폴리, 그리고 파비에토
1984년 여름의 이탈리아 나폴리, 고등학생 파비에토는 장난끼 어린 아빠와 소녀 같은 엄마 그리고 형이랑 살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듯하다. 수줍음 많은 성격에 아직 소년 티를 벗어나지 못한 애매모호한 시기, 그렇지만 축구에 열광하는 건 또래 친구들과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마라도나가 나폴리로 이적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린다.
들뜨는 마을 분위기에 덩달아 흥분하는 파비에토, 가족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데 모여 흥겨운 시간을 갖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 와중에 모종의 이유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이모와 폭력적이기 이를 데 없는 이모부를 만나고 대하는 건 여간 힘들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파비에토는 육감적인 몸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이모를 남몰래 흠모한다.
당연하게 평생 옆에 있을 것만 같던 부모님이 어느 날 자취를 감춘다. 파비에토가 어른이 되기도 전에 말이다. 그는 마라도나의 나폴리 경기를 보러 간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따라 별장에 가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가스 유출 사고가 나 버린 것이었다. 파비에토에게 정녕 신께서 손을 내민 거라고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으나, 부모님을 상실한 공허함과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을 채울 길이 없다. 그런 파비에토에게 수많은 이들이 성장의 밑거름으로 다가온다. 그들 덕분에 파비에토는 부모님 없이도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신의 손'의 의미
<신의 손>은 파울로 소렌티노의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현상, 사건, 인물 등을 바라봤기에 '문제작'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작품들이 대다수였던 반면, 이 작품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바라보고 들여다봐야 했기에 같은 톤일 수 없었다. 대신 보편성을 획득했기에 보다 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파비에토 즉, 어린 소렌티노의 눈부신 성장 드라마를 표방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인 전반부는 지극히 평화로워 보인다. 비록 곳곳에 암초 같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때마다 힘이 되어 주고 또 보듬어 주는 가족이 있다. 인생이 휘청거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와중에 눈부신 몸으로 소렌티노의 육체적 성장을 자극하는 이모가 이슈라면 이슈일 테다.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인 후반부는 전반부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방황하지 않을 수 없는 파비에토, 그런 그의 앞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나타나 성장의 거름을 뿌린다. 각기 다른 것들을 각자의 형식으로, 파비에토는 타의로 가족의 울타리를 일찍 벗어나 세상의 손에 의해서 다행히 너무 거칠지 않게 성장해 나간다. 여기서 제목 '신의 손'의 세 번째 의미가 읽힌다. 세상에 의해 성장해 나간다는 건, 신에 의해 성장해 나간다고 바꿔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독보적인 성장 드라마
대부분의 성장 드라마 앞에는 '청춘'이라는 단어가 붙기 마련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어떤 메시지를 던지든,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청춘' 앞에서 모두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 <신의 손>은 성장 드라마 앞에 청춘을 붙이지 않았다. 청춘으로서 성장을 행한 게 아니라 성장을 당한 거라고 해야 맞다. 극 중 파비에토나 극 밖 소렌티노나 성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가 아니었거니와, 타의로 우연으로 성장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정확히 들어맞는 것 같다.
이토록 특별한 그리고 독보적인 성장 드라마는 일찍이 본 기억이 없다. 그건 아마도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이 겪은 고유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테다. 그러면서도, 이토록 보통의 그리고 보편의 성장 드라마는 일찍이 본 기억이 없다. 우리 모두 이것저것 알게 모르게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서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기 때문일 테다. 한편, 이토록 여운이 남는 성장 드라마를 일찍이 본 기억이 없다. 대부분의 성장 드라마가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루며 끝나는 반면, 이 작품은 성장의 자양분을 받는 게 주된 스토리 라인이기 때문일 테다.
이 영화를 '성장 드라마'로 한정지어 일관되게 바라보려 했다. 또는, 감독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이야기 정도까지 확장해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로 단순하게 들여다보려 했던 이유는, 이 영화의 안팎을 수놓은 수많은 상징이 무의미해서가 아니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 그런 상징들은 '영화를 위한 영화'에 머물게 할 소지가 다분해서였다. 소렌티노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내비추는 만큼 '영화'를 향한 사랑이 곳곳에서 묻어났기 때문이다. <신의 손>에는 다양한 사랑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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