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혼자 사는 사람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대표 영화 학교 'KAFA' 즉,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정규과정으로 연출, 촬영, 애니메이션, 프로듀싱 과정을 제공한다. 봉준호, 장준환, 최동훈 감독을 비롯해 한국영화의 대들보 같은 인재 수백 명을 배출했다. 이들의 작품은 최소한의 작품성을 담보로 하니,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다 하겠다.
현재까지 37기 졸업생을 배출한 연출 정규과정, 홍성은 감독은 34기 졸업생이다. 그녀는 2018년 단편 <굿 파더>로 주목받고 2021년 드디어 장편으로 데뷔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그 작품인데, 코로나 시대 독립영화로선 충분한 성공의 기준인 1만 명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비대면이 주를 이루는 지금에 어울리는 작품이자 생각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주연 배우가 단연 눈에 띄는데, 공승연 배우다.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으로 일찍이 '얼짱'으로도 유명했던 바, 영화계엔 늦게 발을 내딛었지만 광고, 드라마, 뮤직비디오, 뮤지컬, 연극, 방송, 라디오, 홍보대사까지 미디어에 있어서 안 해 본 게 없을 정도로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그런 그녀가 작은 영화를 통해 얼굴을 내민 건, 아주 영리한 선택인 것 같다.
진아는 혼자 살고 혼자 생활한다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는 진아,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다른 직원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한다. 다양한 이유로 문의해 오는 사람들을 상대할 때 감정을 섞지 않는 것이다. 단연 그녀가 실적 1위이다. 탑 실적에게 떨어진 선물, 다름 아닌 신입사원 훈련 및 관리이다. 그녀에게 일주일간 신입사원 수진을 훈련시키고 챙겨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진아에겐 아버지가 있다. 엄마는 지난달에 돌아가셨다. 17년 전에 바람 나 이혼한 아버지가 2년 전에 돌아와 엄마랑 다시 살게 되었는데, 지난달에 엄마가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변호사를 써서 진아에게 귀속될 엄마의 유산을 자기 앞으로 돌려놓으려는 게 아닌가? 진아는 엄마 핸드폰으로 걸려 오는 아버지의 전화가 신경 쓰인다.
진아는 혼자 밥 먹고 혼자 담배 피며 집에서도 다른 방들을 놔 두고 방 하나에만 모든 물품을 우겨 넣고는 마치 원룸처럼 생활한다. 그러곤 언제나 핸드폰에 이어폰을 연결한 채 핸드폰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집, 아니 방에서도 언제나 TV를 켜 놓는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옆집에서 살던 젊은 남자가 죽었다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일주일 전에 말이다. 그런데 진아는 옆집 남자를 똑똑히 봤다. 그가 죽었다는 일주일 전 이후에도 말이다. 어떻게 된 걸까?
지금 이 시대의 이 순간을 조명하다
2010년대 들어 '혼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다양한 이유로 1인 가구가 주요 가구 형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비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중인데, 2020년대 들자마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이제는 비대면이 주요 삶의 형태로 떠오르면서 '혼자'는 너무도 당연한 시대 정신이자 시대 과제가 되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의 이 순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조명하는 작품이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조망하는 작품이 아니다. 하여, 굉장히 '아플' 수 있는데 그게 다름 아닌 우리네 사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여러 생각을 전한다. 영화엔 주인공 진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녀의 아버지도 혼자 살고 죽고 없는 옆집 청년도 혼자 살았고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청년도 지금은 혼자 살고 신입사원 수진도 회사에선 혼자 지낸다.
영화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하며 '왜' 혼자 지내게 되었는지 또는 지내는지 묻지 않고 '어떻게' 혼자 지내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다. 주인공 진아조차 조금 또는 많이 특이한 혼자 사는 삶의 형태에 사연을 부과하지 않는다. 시대의 산물을 개인에게 돌리려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대신 영화는 소소하나마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이렇게 한 번 살아가 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대안을 제안하다
이 시대를 규정짓는 개념이 '고독'뿐만은 아니다. '연결'이라는 개념도 첨예한 이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쉽게 연결이 가능한 시대 아닌가. 하여, 누구는 고독에 천착하고 누구는 연결에 천착한다. 두 개념은 마치 서로 철천지 원수인 양 치명적인 장점과 단점을 열거하며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중요한 건 '균형'일 텐데 말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게 '균형'이 아닌가 싶다.
진아의 경우 고의적으로 고독 또는 고립을 택하고, 극중 모든 인물이 혼자 생활한다. 하지만, 진아와 다른 인물들이 철저하게 차이 나는 점이 있는데 타인과 어울리는 데 스스럼이 없다는 것이다. 어울리고자 당연한 듯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모습들이 이상하고 부정적으로 보이는데, 다분히 진아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기 때문일 테다. 이상할 것도 부정적일 것도 없다, 혼자 살면서도 타인과 어울릴 수 있고 타인과 어울리면서도 혼자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균형'의 거창하지 않는 소소하지만 적확한 모습이다.
영화 말미, 영화가 제안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대안은 눈물 한 방울 이상 흘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무슨 말인고 하면, 우린 그토록 메말라 있었다는 얘기다. 가뭄으로 메마를 대로 메말라 갈라진 논에 지나가는 비가 아주 반가운 것처럼 말이다. 당연했던 게 당연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굳어진 때, 역행하는 순간에 맞딱뜨리면 많이 힘들 것이다.
이 영화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진아의 입장에선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행과 성장, 서로 반대되는 개념의 두 이야기를 잘 버무려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킨 게 감독의 재능이겠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국 독립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이런 영화,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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